2009. 1. 9. 20:09

[위기 극복 기업 9편] 캐논 / 캐논을 카피하라! 캐논에 포커스를 맞춰라! 불황에도 잘 나가는 비결이 캐논에 있다

[위기 극복 기업 9편] 캐논 / 캐논을 카피하라! 캐논에 포커스를 맞춰라! 불황에도 잘 나가는 비결이 캐논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을 겪었다. 이 시기에 이른바 일본의 간판기업인 소니, 도시바, 히타치 등이 창사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캐논은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도요타와 함께 일본의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전기·전자 부문 부동의 1위 소니를 제쳤고, 도요타가 매출에서 하강 곡선을 그릴 때도 캐논은 줄곧 성장세를 이어 왔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과거 불황을 딛고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한 캐논의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에서 ‘캐논 배우기 붐'이 불고 있다. 도요타를 제치고 캐논이 ‘벤처마킹 대상 넘버원'이 되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실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7년 기준으로 매출액은 4조 4,800억 엔, 순이익이 4,900억 엔에 달하는데, 2005년부터 3년 연속 일본 기업 중 순이익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도요타가 매출에서 하강 곡선을 그릴 때도 캐논은 줄곧 성장세를 이어 왔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을 겪었다. 이 시기에 이른바 일본의 간판기업인 소니, 도시바, 히타치 등이 창사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캐논은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도요타와 함께 일본의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훗카이도대학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창업자가 1945년 소규모 렌즈공장을 사들여 카메라 생산을 시작한 것이 캐논의 시초다. 그리고 캐논은 창사 58년 만인 2003년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웠던 일본 전기·전자 메이커 부동의 1위 기업이었던 소니를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때문에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불황을 벗어난 캐논의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캐논의 부활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993년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도 경영 일선에서 뛰고 있는 미타라이 후지오(Fujio Mitarai, 72) 회장이다.


미국식 성과주의와 일본식 종신고용제 접목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은 일본 경영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들고 왔다. 미국의 수익중시 경영과 일본의 평생고용제도를 함께 도입한, 이른바 ‘하이브리드(hybrid) 경영'이다.

두 개념을 혼합시킨 배경이 있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캐논USA 부사장 등을 거치며 일본의 최고경영자로서는 드물게 서구식 경영수업을 오랜 기간 받았다. 1995년 캐논 최고경영자로 부임한 뒤 20년 이상 배워 왔던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미국처럼 수익에 기반한 영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주에 대한 이익 환원, 종업원의 생활 안정, 사회에 대한 공헌, 자기자본 축적이라는 미국식 경영이념을 들여왔다. “이 네 가지를 수행하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며 과감하게 기업문화를 바꿨다.

그렇다고 일본식 경영을 배제한 게 아니다. 그는 종업원의 고용을 최우선으로 하며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했다', ‘고용 유연성이 부족했다'는 등 비판이 제기됐지만 종신고용제를 고집했다. 복사기 생산라인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1,200명의 근로자가 필요 없게 됐을 때도 이들을 해고하지 않고 다른 부서로 재배치한 것이 좋은 예다. 그는 “인력을 키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니 쉽게 해고하는 것보다는 함께 가는 게 낫다”고 줄곧 말해 왔다.

고용을 최대한 안정시켰지만 성과지향형 인사평가 시스템도 확실하게 운영했다. 엄격한 기준으로 승진과 급여에 철저하게 실적에 따른 차등을 두자, 임금격차가 크게 날 지라도 종업원 사이의 갈등은 없었고 대기업이 겪는 관료주의화도 없었다. 말하자면 ‘실력 종신주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는 “기술개발, 회계 투명성 같은 세계 공통의 영역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지만 문화적, 정서적 특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로컬화가 필수”라는 논리로 기업을 이끌어 갔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국 기업에서 효과를 거둔 방식이 한국에서 통한다는 법이 없다”며 “각각의 실정에 맞는 모델을 찾아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적자 안 나도 경쟁력 없으면 퇴출

고용을 보장하니 직원들이 안정감을 갖고 행복하게 일하게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캐논이 위기를 극복한 두 번째 비결은 선택과 집중을 확실하게 했다는 데 있다.

카메라로 시작한 캐논은 복사기에 이어 1990년대 반도체 제조장치 사업까지 확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장기 불황기에 주종인 카메라는 물론 다른 사업부문도 경쟁에 시달렸다. 적자를 기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은 ‘세계 제일의 사업만을 모은 기업을 만들자'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곤 취임 3년째인 1997년부터 PC사업, 액정표시장치(LCD) 등에서 손을 떼면서 철저하게 사업영역을 조정했다.

“PC는 중앙처리장치(CPU) 싸움인데 우리처럼 CPU를 조달해 쓰는 회사에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핵심부품과 핵심기술 없이는 제조업에서 이기기 어렵다. 캐논이 카메라 사업이 강한 것은 렌즈공학에서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995년부터 캐논이 손을 뗀 사업만 일곱 건에 달한다. 하지만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컴퓨터 프린터용 버블젯 기술은 개발까지 10년이 걸렸지만 일본 내 시장 점유율 수위를 다툴 만큼 성장했다. 그 결과 사무기기 부분이 총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만들었고 디지털카메라는 세계 1위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 자리잡아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중시하는 사풍도 캐논의 장점이다. 캐논은 벤처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개발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봤다. 경쟁사보다 지식재산에서 우위에 서야 한다는 판단 아래 1970년대부터 ‘특허법무본부'를 설립했다. 1989년 ‘지적재산 법무본부'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 40여 명 규모로 사장 직할 독립부서로 운영 중이다.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이 최고경영자에 오르면서 이런 문화는 한층 더 강화됐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연구자들에게 학술 논문보다 특허 명세서를 많이 읽고, 논문보다 특허를 더 많이 생산하도록 격려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특허가 강한 몇몇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지적재산권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다.”

캐논은 지적재산을 ‘사업적인 관점에서 창출되고 차별화된 지혜 전부'라고 정의해 신기술 개발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독자적인 물류기법까지 경영의 모든 것을 지식재산으로 취급했다. 지적재산 법무본부에 소속된 인재를 각 사업본부에 배치하고, 지적재산 관련 자격증까지 따도록 독려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캐논은 일본에서는 마쓰시타전기에 이어 2위의 특허 보유 기업이 되었다. 매년 특허 건수가 3,000건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에서 등록된 특허 건수를 보면 IBM과 마쓰시타전기에 이어 3위를 달려, HP와 마이크로소프트마저 따돌렸다.

독자기술을 중시하는 문화는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연구개발비는 지난 1995년 이래 증가 일로다. 1995년 1,700억 엔대였던 개발비는 지난해 3,600억 엔 정도까지 뛰어올랐다.


공장 자동화 총력

마지막으로 캐논의 셀(cell, 세포) 방식의 생산현장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이바라키현 아미지역에 위치한 복사기 생산공장에는 컨베이어 라인이 없다. 7~8명의 근로자가 U자형 작업대에서 복사기를 조립한다. 이른바 셀 방식 생산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유연하다는 것. 예를 들어 300대만 생산하려는 복사기 A모델을 위해 컨베이어를 따로 만들 필요는 없다. 셀을 늘려 생산량을 맞추면 그만이다. 컨베이어 방식은 앞 공정이 늦어지면 뒷 공정도 늦어지지만 셀 방식에서는 이럴 염려가 없다.

이 셀 방식의 도입으로 도쿄돔 18개에 해당하는 공장 바닥면적을 절약했고, 3,000억 엔 이상의 재고비용을 절감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은 셀 방식을 넘어 ‘공장 완전 자동화'에 주력했다. 전기가 꺼진 상태에서도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공장 무인화가 이뤄지면 중국 등 인건비가 싼 곳으로 공장을 이전할 필요도 없고 불황이 와도 직원 수를 줄일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2009년에도 글로벌 경제위기는 계속될 것 같다. 장기불황의 조짐마저 보인다. 그렇다고 움츠려 있을 수만도 없다.

자동차 경주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부는 직선코스보다 곡선 주로에서 결정됐다. 진정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코너를 돌 때 승부를 걸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이 위기라고 모두들 얘기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