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0. 00:27

[모질게 다시 쓰는 광고기획론]포지셔닝의 리포지셔닝

[모질게 다시 쓰는 광고기획론]포지셔닝의 리포지셔닝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에 의해 개념적 틀을 갖추게 된 이래 현대마케팅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략개념 중 하나가 된 포지셔닝. 포지셔닝은 경쟁자의 포지션을 고려하여 의미 있고 독특하며 경쟁적으로 유리한 ‘상대적인 자리’를 찾는 전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 인식상에 존재하는 빈 자리를 골라잡듯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브랜드에 유리하도록 소비자인식 속에 새로운 ‘브랜드 관계지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광고기획에서 빈번히 거론되면서도 그만큼 자주 오용되고 있는 포지셔닝에 대해 살펴본다.

이번 달에는 포지셔닝(positioning)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볼까 합니다. 사실 포지셔닝이라는 주제를 이 칼럼에서 다루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포지셔닝은 이 칼럼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개발 단계 이전에 상위 마케팅 전략 개발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개념인데다가, 그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서 이 짧은 칼럼 안에서 소화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셔닝은 소비자인식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그 개념적 특성상 광고기획 과정에서 매우 빈번하게 거론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기도 하고, 실제 광고기획 현장에서 그만큼 자주 거론되는 동안 목격되는 ‘오용’의 흔적 또한 만만치 않게 빈번한 만큼, 적어도 그렇게 잘못 이해되어 유통되는 경우를 중심으로 한 논의 정도는 ‘광고기획론’의 제목 아래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리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포지셔닝맵은 포지셔닝맵이 아니다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에 의해 개념적 틀을 갖추게 된 이래로 포지셔닝은 현대마케팅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략개념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72년 애드에이지에 소개된 이후 세계 각지의 마케터들의 경험과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추가되고 갱신되면서, 콘텐츠가 매우 풍부하고 그 틀 또한 상당히 견고한 이론으로 성장해온 것입니다. 그만큼 전략적 관심과 활용도가 높아지는 와중에 개발되고 소개된 것이 바로, ‘포지셔닝맵’입니다. 아마 이 칼럼을 읽으시는 분이라면, 그림과 같은 유형의 포지셔닝맵을 무수히 접하셨을 겁니다. 혹은 자신의 기획서에 이러한 맵을 직접 그려보신 분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복잡한 포지셔닝맵을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맵들이 그림과 같이 어쨌든 특정한 이미지를 축으로 (주로 경쟁관계에 있는) 브랜드들의 절대적 위치를 표시한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때 맵에 표현되는 각 브랜드의 위치는 전략입안자의 임의의 판단에 근거하지 않고, 대체로 소비자조사 등을 통해 확보한 통계적 자료를 토대로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로써 어느 정도의 과학성을 담보한 이 맵은, 각 브랜드가 점유하고 있는 특정 이미지에 관한 양적 지표를 통계적으로 도식화 해주고, 나아가 브랜드가 전략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미지상의 빈 곳(기회)을 표현해주며, 그러한 상황과 시사점을 전략적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사람들에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데 강력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강력한 유용성으로 포지셔닝 전략이 곳곳에서 등장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포지셔닝맵이 포지셔닝 자체와 동일시 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마케터들과 광고기획자들은 공공연히 포지셔닝맵을 포지셔닝 전략 구상의 ‘좌표’처럼 활용하여, 소비자인식의 지도를 펼쳐놓고 ‘이 위치에서 저 위치로 이동하자’는 식으로 포지셔닝 전략을 표현하곤 하는데, 여기에는 기실 포지셔닝의 본질적 전략개념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숨어있습니다. 소비자인식 속에는 x축, y축으로 구성된 맵 따위가 존재할 리 없습니다. 소비자가 하나의 제품 카테고리를 인식할 때, 특정조건(이미지)을 축으로 여러 개의 브랜드의 위치를 그려놓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소비자인식의 방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브랜드는 다섯 손가락을 채 못채우며, 그마저도 소비자의 여러 경험들을 통해, 소비자 스스로도 위치를 그릴 수 없는 상태로 혼재되어 있을 뿐입니다. 설령 소비자들 인식 속에 (희미하게라도) 맵이 존재한다 한들, 그 모든 맵들이 동일한 조건을 축으로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소비자들마다 중요시하는 조건은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포지셔닝맵은 개개 소비자의 인식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전체 목표고객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에 관한 이미지 점유율을 (전략입안자에 의해 통제된) 특정조건 하에 재구성해놓은, 일종의 ‘이미지 분포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이미지 분포도를 가지고 포지셔닝 전략을 구상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무모한 생각에 불과합니다.

빌 번버크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던, 그러면서도 포지셔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에이비스(Avis)의 No.2 캠페인을 여러분은 과연 포지셔닝맵으로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번버크의 전략적 구상에 포지셔닝맵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포지셔닝전략 자체가 고려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캠페인이 포지셔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추앙받을 수 있는 까닭은 번버크의 전략적 구상이 바로 포지셔닝이 추구하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전략적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캠페인 시작 당시 에이비스는 수치상으로는 미국 렌터카업계 2위가 분명했지만, 1위인 허츠(Hertz)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수치였던 반면 3위 내쇼널(National)과는 큰 차이가 없는, 존재감이 희박한 2위에 불과했습니다. 번버크의 전략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1위-2위간의 라이벌관계’에 대한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기대를 끌어들여, ‘아직은 2위에 불과하고, 그래서 더 노력한다’는 겸손으로 포장된 메시지를 전개함으로써, 군소 렌터카업체라는 포지션(인식상의 위치)을 탈피하고, 1위와 경쟁하는 ‘허츠의 라이벌’이라는, 매력적인 포지션을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이었고, 에이비스를 실제적으로도 허츠의 라이벌로 성장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이렇듯 에이비스라는 브랜드의 포지션을 확연히 바꾼, 성공적인 포지셔닝 캠페인 그 어디에도 ‘이미지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포지셔닝맵은 고려되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포지셔닝맵은 소비자인식 속에 브랜드들이 위치할 공간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러한 공간들 사이를 이동하여 브랜드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곧 포지셔닝이라는 식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인식 속에 브랜드들이 차지할 ‘절대적인 공간’은 결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 브랜드에 관한 정보는 소비자인식 속에서 ‘처리’의 과정을 거쳐 기존의 인식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저장되고, 이 과정에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브랜드들과 마치, ‘자리’가 생기듯,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곧 포지셔닝 과정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체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생성과 조정의 역학을 단면적인 포지셔닝맵으로 설명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지셔닝맵’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그것은 그저 특정 조건이 되는 이미지에 대한 브랜드들 간의 점유율을 설명해주는 ‘이미지분포도’에 불과한 것이고, 그 분포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유용성은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포지셔닝은 상대적인 자리를 잡는 작업이다

저 유명한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마케팅전략적 관점에서 포지셔닝을 ‘표적고객의 마음속에 의미가 있고, 독특하며, 경쟁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기업의 제공물과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서술인 듯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포지셔닝이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포지션의 특성을 포착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미 있고, 독특하며, 경쟁적인 자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포지셔닝은 그 자체로 시장기회의 확보와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차별화를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차별화 전략적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즉, 포지셔닝이 추구하는 자리는 ‘절대적인 자리’가 아니라 경쟁자의 포지션을 고려하여 의미 있고, 독특하며, 경쟁적으로 유리한, ‘상대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소비자인식의 지도를 펼쳐놓고 이미 존재하는 빈 자리를 골라잡듯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그런 지도가 존재하지도 않지만). 소비자인식 속에 형성되어 있는 경쟁자들의 포지션을 주의깊게 검토한 후에, 경쟁적으로 가능하고 유의미하며 유리한 자리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재구성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결국 포지셔닝 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단순히 내 브랜드에 요구되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심어두게 되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브랜드에 요구되는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경쟁자와의 관계, 경쟁자와의 인식상의 거리가 포괄적으로 그려지는 상태, 즉 내 브랜드에 유리하도록 소비자인식 속에 새로운 ‘브랜드 관계지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흔히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분류되는 사례들을 검토해보면, 이와 같이 ‘새로우면서도 유리한 관계지도’를 형성함으로써 해당 브랜드에 성공을 가져다 준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시장이 막 성장세에 들어설 무렵, 외국산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고전하던 어떤 국산 휴대폰 단말기 브랜드는 ‘한국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란 포지션을 통해, 외국산 브랜드를 상대적으로 한국지형에 약한 휴대폰으로 밀어낸, 새로운 휴대폰 브랜드 관계지도를 소비자인식 속에 만들어냄으로써 크게 성공했던 사례도 있고,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신 바 있는 한 대통령후보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절묘한 포지션을 조성함으로써, 수 십년간의 대권도전이 줄 수도 있는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동시에, 주요 경쟁자를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후보’로 연상시키는 상대적 포지션으로 큰 효과를 거두었던 사례도 충분히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새로운 관계지도를 직접 경쟁하는 브랜드 사이에 형성하지 않고, 아예 다른 카테고리의 브랜드들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효과적인 포지셔닝을 이루어낸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비자인식에 매우 부정적으로 각인된 비즈니스 카테고리 이미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 외국계 다단계 회사는 대규모 광고활동을 통해 ‘좋은 생활 주식회사’라는 포지션을 추구함으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통전문 다단계회사들의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여타의 생활필수품 제조업회사와 유사한 포지션을 획득하여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마케팅 목표달성에 기여했던 사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듯 성공한 포지셔닝 전략의 기저에는 단순히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시킬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 내 브랜드를 어떤 브랜드들과의 경쟁으로 인식시킬 것이냐, 나아가 내 브랜드와 그 브랜드들간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형성할 것이냐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절묘한 전략적 시나리오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획하는 모든 광고가 의도적으로 ‘의미 있고, 독특하며, 경쟁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디자인한 광고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모든 광고를 ‘포지셔닝 광고’라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획하는 모든 광고가 브랜드의 포지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음은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우리가 광고로 포장한 정보를 ‘처리’하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포지션을 부지불식간에 조정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포지셔닝을 조정할 의사 없이 만들어 전달한 광고를 통해서도 우리 브랜드의 포지션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의 포지션이 (엉뚱하게도) 경쟁자의 광고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음 역시 잊어서는 안됩니다. 경쟁자가 새로운 포지셔닝을 시도하는 경우, 우리 브랜드가 속해 있던 관계지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 경쟁자에게 유리하게 디자인된 새로운 지도 속에 편입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브랜드 포지션에 변화를 주기 위한 의도적 리포지셔닝 광고를 만들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광고기획자로 하여금 항상 현재 우리 브랜드의 포지션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경쟁자의 메시지까지도 우리 브랜드의 포지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면밀히 살펴야 함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포지셔닝 자체가 그렇듯, 경쟁 브랜드들과의 관계지도를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브랜드 포지셔닝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광고는 결국 소비자인식 속에서 우리 브랜드가 차지한 ‘상대적 위치’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출처 : 한국방송광고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