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32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5편] 마음을 꿰뚫는 통찰력 / 심리 통찰술의 대가, 한비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5편] 마음을 꿰뚫는 통찰력 / 심리 통찰술의 대가, 한비

통찰이란 자기를 둘러싼 안팎의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는 일을 말한다. 통찰이 가능하려면 주위의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게슈탈트 심리학(형태 심리학)에서는 지각적 재구조화라고 한다.

춘추시대에 최고의 통찰력을 보여 준 대가로는 한나라의 한비, 정나라의 자산, 주나라의 노자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할만큼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 정통했다. 그는 군신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통찰했다. 그 놀라운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한비는 법가의 집대성자다. 그는 법의 냉혹한 적용을 주장했지만, 기본적으로 법은 피통치자인 백성의 납득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법의 힘은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일본 중세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찰이기도 하다. 한비의 저술 <한비자>는 대부분 현실 문제에 대한 것으로 전국시대 사회 현실에 대한 냉철한 관찰이 돋보이는데 한비는 군주는 법술(法術)로써 사람들을 통제하고 엄한 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고난 약소국 한(韓)나라 사람이었던 한비는 나라의 땅이 나날이 줄어들고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한나라 왕 한안(韓安)에게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간언했지만, 한나라 왕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비는 한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법과 제도를 닦아 바로 세우고 권세를 잡아 신하들을 부리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튼튼하게 하며 인재를 찾아 쓰고 어진 사람을 임명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도리어 쓸모없는 소인배를 등용하여 그들을 공로와 실적이 있는 자보다 윗자리에 앉히는 것을 보고 통탄했다.

이에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알고 <세난(說難)> 편을 지었다. ‘세난'이란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이 글은 한비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고난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대가 원하는 말을 돌려서 하라

그렇다면 유세의 모험에 관하여 한비는 어떤 말을 남겼을까. 먼저 그가 주목한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여러 개 쥐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잘 계산한 뒤에 들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찰력이란 엉뚱한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러한 준비성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개 그의 사람됨과 행동거지, 언변의 스타일을 종합하면 대강은 얻을 수 있겠지만 좀더 철저한 유세가라면 관상학에도 정통해야 험한 전국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판은 신뢰가 깊어진 후에 하라

왕에게 걸어가는 길은 이처럼 온통 지뢰밭이다. 지뢰는 용케 피해야 하지만 중간중간 상대방의 환심을 살 수 있게 선물을 던져 주어야 한다.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주는 것, 군주가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계속 이어서 한비의 말을 들어보자.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 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이것은 어디까지나 왕과의 신뢰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그때 유세가는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그때까지는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어야 한다고 한비는 말한다.

한비자 통찰의 마지막 단계는 ‘역린(逆鱗)'에 대한 것이다. 이것으로 그는 「세난」 편의 대미를 장식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한비의 군주 심리학은 오늘날의 대중시대에도 유용한 지식을 선사한다. 봉건시대의 군주와 현대사회의 ‘대중(大衆)'은 여러모로 닮았다. 일단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폭군일수록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말과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오늘날 대중의 입맛은 수시로 바뀌고 미묘하게 틀어지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의 취향을 획일화하며 ‘대중=바보'라는 도식을 만들어 낸 것이 지난 20세기의 흐름이라면, 21세기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고 있다. 대중만큼 영악한 것도 없고, 대중만큼 위력적인 것도 없다. 그들은 무쇠도 녹일 수 있는 여러 개의 입으로 만장일치의 마녀사냥을 향유하는가 하면 스스로 문화를 창조해낸다.

오늘날 대중의 역동성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새로운 상업적인 트렌드에 노출되어 있다면 한비 시대의 군주들도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몰려든 유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왕들은 항상 독살의 위협에 시달렸고 왕실의 권력게임에 지쳐 있었다.

비록 유세일 따름이지만 이것이 언제 칼이 되어 나의 목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왕들이 외부 세계와 만나는 하나의 필연성이기도 했다. 외부적인 요인이 설득 대상의 성질을 끊임없이 유연화시키고 변화시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한비를 읽으면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적어도 한비의 법은 이런 유동성의 불안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한 방패로 강구된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을 단단한 ‘사유'의 힘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창조적 ‘생각법'을 만나 보았다. 소개한 인물들은 <사기열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유의 힘을 보여 준 이들이다. 활동한 시기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인간으로서 감히 통과하기 힘든 시험의 과정을 그들만의 독특한 사유로 넘어섰으며, 역사의 돋보이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들의 행적과 대화에서 공통점으로 간추릴 수 있는 것은 모순과 갈등을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때로는 조정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싹은 자라고, 사회의 모든 면모에 대한 성세한 통찰 속에서 생각의 뿌리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주름살이 많은 얼굴에서 더욱 웅숭깊은 삶의 흔적을 발견하듯,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쳐서 만든 상처가 ‘제대로' 아물수록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단단한 사유가 탄생한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