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30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4편] 모순을 넘어서는 힘 직관력 / 진나라 이사의 기회경영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4편] 모순을 넘어서는 힘 직관력 / 진나라 이사의 기회경영

마치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장전된 총알처럼 꿈틀거리는 상황을 앞에 둔 인간은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 직관은 이성과 분석을 거치지 않고 몸으로 본능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사용되기 때문에 일의 승패를 좌우하는 악역을 도맡는 능력이기도 하다. 진나라 통일의 패업을 도운 이사라는 인물은 모든 기회를 ‘만 년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잡았던 인물이다. 그를 통해 직관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충동시키고 의욕을 자극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 격언을 가장 강조하여 사용했고, 스스로의 삶에서 남김없이 증명한 인물이 바로 진시황을 보필한 이사(李斯)다.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으로 순자(荀子)에게 학문을 배운 이사가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진의 천하통일은 이미 대세로 굳어진 상태였다. 이사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통일 이후 자신이 정부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보폭을 내디뎠고, 타이밍과 전략이 맞아떨어져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만 년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기회를 잡아라

시대는 마치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장전된 총알처럼 꿈틀거리는 상황이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국은 오랜 기간 서로 부딪혀 싸우면서 전쟁 피로증을 겪고 있었다. 여러 변법을 시행해 보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후국들은 인정하기 시작했다. 맹주가 나타나 부르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했다. 누군가가 결정만 내리면 판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걸 예민한 생존전략가 이사는 읽고 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이런 투지를 말리지 않았다.

이사는 초나라 출신이지만 거기 머물 이유는 없었다. 그가 가야할 곳은 곧 천하의 주인이 될 진나라였다. 그는 진시황을 찾아가서 유세할 기회를 얻었다.

“진나라의 강대함에 대왕의 현명함이라면 취사부가 솥단지 위에 앉은 먼지를 훔치듯 손쉽게 제후를 멸망시키고, 황제로서 대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만 년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서둘러 이루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하기로 약속할 테고, 그렇게 되면 현명한 왕이 있을지라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사열전」

아직 시황제의 칭호를 얻기 전인 진왕 정(政)은 이사의 의견을 즉시 받아들여 궁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장사(長史)로 삼았다. 당시 진왕은 환관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져 정통성 논란을 막 겪은 뒤였다. 자신의 혀처럼 보좌할 막강한 측근 권력을 키워야 했다.

이사는 진시황의 이런 처지를 잘 꿰뚫어 보았다. 직관은 번뜩이는 영감이며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이다. 직관을 발달시키면 상대방의 심리를 읽을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다. 이사의 계책은 진시황에게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밖으로 쏟아 낼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었다.

진나라가 강대해지자 제후국 내부에 나라를 진에게 바치려는 배신자들이 속출했다. 이사는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돈을 쥐고 쉽게 동반자들을 포섭했고 대항하는 이들은 칼로 찔러 죽였다. 그는 곧 다른 나라에서 온 유세가에게 주는 재상 벼슬 객경(客卿)으로 승진했다.

 


용인술의 원칙-양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사에게 첫 번째 정치적 시련이 닥친다. 한나라에서 온 정국(鄭國)이라는 유세객이 스파이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이미 진나라는 그의 말을 듣고 운하 사업을 벌였다가 엄청난 국부를 낭비했다. 이를 빌미로 텃새들의 집요한 공격이 시작됐다. 본국 출신 관료들과 외부 출신 빈객 유세가 사이의 오랜 알력관계가 폭발한 것이다. 이 시련을 넘어서는 과정은 이사가 결정적 순간에 승패를 좌우하는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가 축객(逐客)론을 돌파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는 ‘개방적 인재관이 큰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해 줄 역사적 근거는 충분했다. 진나라 효공이 상앙의 변법을 채용해 나라가 부강해진 것, 혜왕이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의 땅을 차지한 것, 소왕이 범저를 얻어서 외척을 억누르고 대신들의 세력 확장을 막은 것이 모두 그랬다. 나아가 개방적인 용인술이 갖는 장점을 원리적인 측면에서도 설명했다.

진시황이 갖고 있는, 주변국에서 빼앗은 수많은 보석들은 무엇인가. 또한 남쪽 제후국에서 데려온 악사들이 연주하는 화려한 음악과 도공들이 빚어 내는 투명한 도자기들은 또 무엇인가. 이것을 문화적인 시각에서 조명하면 낯선 것을 녹여냄으로써 안이 넓어진다는 것의 적절한 예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이사는 이것을 제왕의 자질론으로 연결시켰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장강은 작은 물줄기 하나 버리지 않아서 그렇게 넓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량껏 포용하는 게 아니라 ‘양보불가'라는 적극성이 강조되어 있다. 그는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진나라 황제가 견지해야 할 ‘인재론'과 ‘용인술'을 너무나 시의적절하게 구사했던 것이다.


권력은 선심 쓰듯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의 도움으로 20여 년이 지나 통일 대업을 이룬 진왕 정은 천자(天子)라는 호칭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는 자신의 공적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삼황오제만이 자신과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해 ‘시황제(始皇帝)'라는 호칭을 새롭게 만들었다. 여기서 시(始)란 만세(萬歲) 중 제 1세, 즉 처음이라는 뜻이다. ‘만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이사의 조언을 받아들인 시황제는 새로운 만 년을 자신이 직접 열어젖혔다. 두 사람이 얼마나 궁합이 잘 맞았는지는 이러한 세부적인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기회'라는 자기 경영의 키워드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충분히 효과적이지만, 정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모든 사물이 극점에 이르면 서서히 쇠락함은 자연의 진리이다. 정상에서 아래로 순탄하게 내려오기 위한 지침으로서도 ‘기회'라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사는 끝까지 기회에 자신의 몸을 기탁했다. 부귀할 수 있는 기회, 타인을 억누를 수 있는 기회, 인생의 온갖 욕망을 아귀처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권력은 언제든지 제공한다. 이때의 기회는 과거 목마를 때 마시는 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사가 중용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을 역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진시황이 지방 순례에 올랐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죽어버리자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시황제를 수행했던 이는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趙高) 그리고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亥)였다.

조고는 호해의 어릴 때 스승으로 진시황의 죽음을 권력 창출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시황제는 숨이 넘어갈 무렵 저 북방에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를 방비하기 위해 떠난 큰아들 부소(扶蘇)에게 유언을 남겼다. 군대는 장군 몽염에게 맡기고 돌아와 유해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비록 진시황은 평소 바른말로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큰아들을 멀리했지만, 미워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서 먼 변방에 보내서 거친 일을 시켰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적자계승의 원칙을 지켜 맏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유서를 남긴 것이다. 조고는 시황제의 죽음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에 부치고 호해와 이사를 설득해서 유서를 고쳤다.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명하고 호해를 2세 황제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이사에게 이 사태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보통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기회가 곧 위기였다. 조고는 온갖 감언이설과 반 협박조로 승상인 이사를 설득했다. 너무 큰 반역의 행위인지라 이사는 처음엔 반대했다. 하지만 조고의 설득은 끈질겼고 이사 자신이 반대하면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할 판이었다.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사는 “아! 나 홀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어디에 내 목숨을 맡기랴?”라는 탄식과 함께 유서 조작과 왕위 찬탈에 동참한다.

판단의 결정적인 계기는 만약 부소가 왕이 되면 그의 측근인 몽염이 승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사는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황제의 죽음은 곧 자신의 권세도 종결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래도 법가의 정신으로 제국의 법을 만든 이사가 헌법에 해당하는 왕위 계승의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권력의 안일함에 중독된 그의 이성은 이 ‘위기'를 자신의 인생에 다가온 ‘마지막 기회'라고 왜곡해서 인식한다.

결국 이사는 조고와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고, 참혹하고도 급속도로 진 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이 「이사열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사는 반역의 누명을 쓰고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을 받아 거리에서 처형당하고 그 가족은 삼족이 멸해졌다.

직관이 발휘되는 것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이다. 그것은 20세기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만 번에 한 번 오는 기회라는 말은 만 분의 1초의 차이로 예술작품이 탄생하느냐 평범한 사진이 되느냐가 갈라지는 것만큼 사태에 대한 민감하고도 집중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이사의 삶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마천은 그를 뛰어난 인재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에 적절하게 몸을 맡겨서 성공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회를 다스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그리고 한 개인이 역사의 운명을 이겨내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이사의 마지막 결단에 진한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그를 섣불리 어리석은 자로 평가하기가 주저되는 이유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