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43

[위기 극복 기업 4편] 닌텐도 / 폭력 게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다

[위기 극복 기업 4편] 닌텐도 / 폭력 게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일본의 부호 40명'을 발표했다. 그중 일본 최고의 부호는 닌텐도 창업주의 손자 야마우치 히로시(80, Yamauchi Hiroshi) 고문이었다. 그의 재산은 무려 78억 달러. 지난해보다도 30억 달러(3조 6,000억 원)나 늘었다.

그의 급격한 재산 증가는 ‘닌텐도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굳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닌텐도 역시 위기의 순간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닌텐도 자신이었다. 닌텐도의 창업과 성장, 위기의 순간과 극복 과정을 조명해 본다

일본 교토는 보통 ‘오래된 도시'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일본 기업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종합 전자부품 메이커로 유명한 교세라, 음향용 전자부품 세계 1위 기업인 니치콘 등 작지만 실력 있는 ‘강소 기업'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닌텐도도 교토에 본사를 둔 기업 중 하나이다.


화투 만드는 회사로 시작

야마우치 집안은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889년, 화투를 만드는 기업을 세웠다. 당시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작은 공장 정도의 규모였다. 작은 화투 공장의 본격적인 변신은 일본 최고 부호로 뽑힌 야마우치 히로시가 주도했다.

화투 제작 사업이 잘되면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중퇴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닌텐도 사장에 취임한다. 그 뒤 일본 최초로 얇은 플라스틱을 사용한 트럼프를 개발해 업계를 휩쓸었다.

 

야마우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트럼프와 게임시장을 둘러본 후 트럼프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식품, 택시, 호텔, 교육 등에서 실패를 맛보면서 1960년 도산의 궁지에 몰렸다.

이때가 첫 번째 위기다. 다행스럽게 사업 다각화 실패로 인한 위기는 오히려 닌텐도가 게임 산업에 몰입하는 계기가 됐다.

그 뒤 연구 개발을 거듭한 끝에 1977년 첫 게임기를 출시했으나 조악한 수준에 그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후 1979년 세계 최초의 휴대형 게임기인 ‘게임앤와치(Game & Watch)'를 발매해 대히트를 쳤다.

1983년에는 패밀리 컴퓨터라는 뜻의 ‘패미콤'을 선보이면서 비디오 게임시장을 열었다. 닌텐도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슈퍼마리오'를 앞세워 전 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을 석권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총 1억 8,000만 카피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시장에 내놓은 제품들마다 성공으로 이어지자 닌텐도 앞에는 ‘게임 기업의 전설, 신화, 파이어니어….'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2년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무차입 근육질 경영, 강력한 시장 지배력, 부동의 소비자 신뢰도 등을 이유로 일본 최고의 우량회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 X-Box 등 강력한 라이벌 등장

하지만 기업에게 기회와 위기의 사이클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닌텐도의 최대 위기는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서가 아니라 바로 게임 업계 경쟁자의 출현이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이들은 화려한 영상으로 게임의 멀티미디어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간단한 그래픽과 스토리에 의존하는 닌텐도가 이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게임 보급으로 영업 기반은 갈수록 위축되었다.

스스로의 문제도 불거졌다. 닌텐도가 너무 잘나가면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한 언론은 “게임시장 발전 속도는 빠르고 소비자들은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는데 닌텐도 회사 분위기는 ‘천하태평'하고 위기 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며 “만들면 몽땅 팔리는 성공 경험으로 인해 영업 조직이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꼬집었다. 닌텐도의 매출은 떨어졌고 ‘닌텐도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성급한 평가도 나왔다.


위기 극복 비결 1: 과감한 선택! 협력업체 직원을 본사 사장에 앉히다

닌텐도에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킨 사람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였다. 그는 작은 화투 제작사에 머무를 뻔했던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 전문회사로 이끈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위기에도 과감하게 대처했다. 2000년 닌텐도의 협력사인 할(HAL) 연구소 소장 이와타를 사장으로 앉혔다. 협력업체 출신이라 본사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상품 개발 능력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와타 사장은 야마우치 히로시를 실망시키지 않고 조용히 혁신을 이끌어 냈다. 그는 닌텐도의 조직을 정비하고 직원들의 마인드를 바꿨다. 급격한 인력과 사업 구조조정을 피했다. 개발 실패로 사내에서 외면 받던 직원들을 모아 사장 직속의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변혁 사례는 최대 라이벌이었던 소프트웨어 메이커 ‘나무코'와 손잡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 전략적 제휴로 닌텐도는 ‘나 홀로 성공했다'는 안이한 자만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세가, 반다이 등 담을 쌓고 적대시했던 소프트웨어 메이커들과도 제휴를 맺으면서 ‘외톨이'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영업도 활발하게 추진했다.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영업사원들이 주말마다 전자 양판점 게임 매장으로 출근해 고객들 앞에서 시범 조작을 보이는 등의 적극성을 보였다.


위기 극복 비결 2: 독창성과 단순함으로 승부하다

닌텐도의 명성을 되찾게 한 제품은 ‘닌텐도 DS'와 ‘위(Wii)'다. 2004년 말에 출시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는 연령과 성별을 떠나 전 세계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초 선보인 닌텐도 DS 라이트는 출시 1년 만에 판매 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서는 등 인기를 끌었다. 2006년 말에 출시된 위(Wii)도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일본에서는 몸을 이용해 즐기는 게임인 ‘위'를 거실에 설치하고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는 전 세계에 2,000만 대 이상 팔렸다.

 

이 두 게임의 특징은 독창성과 단순함에 있다. 이와타 사장도 올해 한국에서 ‘위'를 선보이며 “닌텐도의 기본 철학인 독창성이 성공을 이끌어 냈다”고 자평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실제에 가까운 환상의 세계로 게임을 이끌었다면 닌텐도는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생활의 일부로 게임을 개발했다. 첨단 기술에 집착하지 않고 독창성에 승부를 띄운 것이다.

디자인도 심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성능도 단순해 사용자가 게임을 즐기는 데 부담이 없다. 그동안 IT뿐만 아니라 많은 전자업계가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빠져 있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굳이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마구 넣은 것이다. 닌텐도는 역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단순한 게임으로 고객의 마음을 끌었다.


위기 극복 비결 3: 고객의 범위를 넓히다

마지막 위기 극복 비결은 고객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었다. 바로 마케팅의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케팅(Marketing, 시장)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 마케팅 행위의 기본은 시장을 넓혀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객 수요층을 확대하는 것이다. 닌텐도는 고객층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충실했다.말 그대로 게임 인구의 저변 확대다.

이와타 사장도 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닌텐도 회생을 위해 연령, 성별, 게임 경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개발을 목표로 했다”며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5세부터 95세까지 게임 인구를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닌텐도는 다른 기업의 귀감이 될 만큼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 난무하는 가운데 닌텐도는 가족 중심의 생활형 게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게임은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야마구치 히로시 고문의 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함께 닌텐도 게임을 즐기는 가정의 모습으로 현실화됐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