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27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3] 서로 다른 것을 녹이는 종합력 / 한 번 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3] 서로 다른 것을 녹이는 종합력 / 한 번 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종합력은 ‘관찰'과 ‘비교'를 통해 종합적인 판단에 이르는 기술이다. 노(魯)나라 자공(子貢)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5개국을 서로 싸움 붙인 일은 관찰과 비교만으로 이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행동에 돌입하는 지혜가 스며 있다.


외교의 달인 자공, 나라를 구하러 나서다

종합력은 작은 조각들을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는 분석과는 또 다른 지적 능력이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특정한 해답을 전하기보다는 폭넓은 패턴을 감지하는 능력이며, 누구도 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한 곳에 결합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다.

우리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종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래미안은 아파트 이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브랜드다. 아파트 앞에 붙는 삼성, 엘지, 주공, 대림 같은 판에 박힌 상호를 없애고 아늑한 뜻을 지닌 합성어로 대체한 것이다. 래미안(來美安) 식의 콘셉트는 이후 아파트 브랜드의 표준이 되었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서로 다른 것,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을 결합시켜 새로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중국 고대에도 이와 같은 특출한 종합력을 보여 준 인물이 있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그 주인공이다.

공자와 제자들의 학문이 깊어 갈 때 나라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제(齊)나라의 대부호 전상(田常)은 반란을 일으킬 속셈이 있었으나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라리 제나라에서 세력이 큰 고씨 등과 군대를 합쳐 노(魯)나라를 쳐 공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나라가 위태로우니 누가 나서서 구하겠는가?”라고 물었고 이 말에 여러 제자들이 다투어 나섰다.

맨 처음 자로(子路)가 나서기를 청했지만 공자는 그를 제지했다.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연이어 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윽고 자공이 나서겠다고 하자 그제야 공자는 허락했다.

왜 공자는 자공에게 임무를 맡겼을까? 바로 그의 외교 자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공은 공자 밑에서 배웠지만 「화식열전」에서도 소개될 만큼 성공한 상인이었다. 원래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단목사(端沐賜)이며, 말재주가 뛰어났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제나라 전상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상을 찾아가서 쳐들어오지 말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할까?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제나라 전상의 반란을 막다

자공은 전상에게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 다섯 나라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아직은 머릿속의 계획일 뿐인 이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자공은 전상을 만나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다 허물어져 가는 노나라는 공격하기 어려운 나라이고, 물샐틈없는 방비에 군사력도 강한 오(吳)나라가 오히려 공격하기 쉽다고 말한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전상이 버럭 화를 내자 자공은, 그렇게 해야 전상 당신에게 유리하다고 재빨리 덧붙였다.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서 말이다.

 

당시 전상은 제나라 왕과 실세 귀족들에게 늘 치여 사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아직 힘이 그만큼 되지 않아 우선 노나라라도 쳐서 공을 세움으로써 힘을 비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공의 논리에 따르면 노나라를 쳐서 이기면 제나라 왕만 더욱 높아질 뿐이다. 왕은 더욱 교만해지고 대신들의 위세도 덩달아 높아진다. 반면 오나라를 공격해 패배하면 나라 밖에서 백성들이 많이 죽고 제나라는 힘이 약해질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가 위태로워지며 그렇게 되면 전상에게 대적할 만한 신하가 없어진다는 논리였다.

‘옳다구나'하고 무릎을 친 전상이 오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할 동안 자공은 재빨리 오나라로 건너갔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만난 그는 제나라를 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부차는 월(越)나라가 눈엣가시이기 때문에 월나라를 먼저 쳐야 한다고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자공은 오왕을 겁쟁이로 몰아붙였다. 큰 먹이를 놔두고 잔챙이를 건드리는 건 제왕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월나라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서 제나라 정벌을 떠난 오왕의 군대에 합세하게 할테니, 어서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로 떠나라.”고 부추겼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도우러 오면 월나라 안이 텅 비게 될테니 후방의 급습을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오왕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자공에게 속아 넘어갔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만난 자공이 오히려 제나라와 전쟁하고 돌아오는 오나라를 공격하라고 첩보를 전했기 때문이다. 구천은 늘 오나라 왕에게 무시를 당했으나 굽실거리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부차가 이것을 눈치 채고 월나라를 정리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자공은 그에게 말했다.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있어 큰 걱정거리입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핵심을 찔린 구천은 즉시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오나라에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자신은 정예 병력을 이끌고 오나라가 제나라와 전쟁한 뒤 돌아오는 길목에 매복했다.

다시 자공은 진나라로 갔다. 지금 오나라와 제나라가 붙으면 분명 오나라가 이긴다. 그러면 문제의 발단인 전상은 해결이 된다. 하지만 오나라는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자공이 볼 때 진나라가 준비만 잘 하고 있으면 지친 오나라 군대를 꺾을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그는 진나라 정공을 만나 “군대를 잘 정비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해 주었던 것이다.

사태는 자공이 예측한 대로 돌아갔다. 오나라는 제나라를 깨뜨리고 진나라로 진격했지만, 진나라에게 크게 패하고 힘만 소진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매복해 있던 월나라 군대와 부딪혀 거의 전멸당한 뒤 오왕 부차는 겨우 궁궐로 몸만 피신했다. 월왕 구천은 궁궐을 에워싼 뒤 오왕 부차를 끌어내 죽이고 재상 백비의 목을 베었다. 사마천은 논평한다.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했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새로운 두 개념이 만날 때 통찰이 싹뜬다

자공의 계획은 전상의 침략을 저지시키는 것이었지만 자공이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절대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나라를 둘러싼 에너지의 절대량은 변화하는 것이 없도록 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계산법인가.

다섯 개의 퍼즐로 중국 지도를 바꾼 자공의 능력은 분명 뛰어난 종합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공이 뛰어난 외교가이자 명민하고 민활한 상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공자의 제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유가(儒家)였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항시 꼬리 밟힐 것을 걱정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그려지는 자공은 외교가와 상인의 모습이지만, <좌전>과 같은 역사서를 보면 유가로서 자공의 활약이 잘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자공이 공자의 예(禮)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모두 일곱 차례나 노나라를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협상과 속임수가 본질인 외교 및 상업영역과, 청렴과 결백이 핵심인 유가의 영역은 어떻게 자공이라는 한 몸 안에서 구현될 수 있었을까? 떨어뜨려 놓으면 한없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논리의 본질'이다. 자공은 이것을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융합시켰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두 배의 속도로 무섭게 질주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통찰이론의 권위자인 인지심리학자 로버트 와이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통찰이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날 때'이다.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나, 이전에 없던 추론이 발생하고, 그 추론에 따라 감동과 정보처리의 수준이 결정된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