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24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2] 정확한 욕망 - 비교력 / 네 개의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본 한나라 유경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2] 정확한 욕망 - 비교력 / 네 개의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본 한나라 유경

비교력은 나와 나 아닌 것,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시급한 것과 여유 있는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등 서로 대비되는 사물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것들을 분별해내는 지혜이다. 인간은 많은 것을 욕망하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보게 된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데 표면에서만 겉도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불안스러운 악착같음을 보고 있자면 알고 지내는 신경정신과 의사가 해 준 말이 생각난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찾아오는 내방자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인간의 욕망은 삼각형을 닮았다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강렬하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데다가 여러 개의 복수 형태로 나타나고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늘 도시에서의 성공적 삶을 꿈꾸지만 한편에서는 시골로 가서 농사나 짓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욕망이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어떻게 속이는가? 이에 대해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은 삼각형을 닮았다'고 말했다.

여기 A,B,C를 꼭짓점으로 하는 정삼각형이 있다. A는 욕망하는 주체, 바로 나다. B는 내가 사고 싶어하는 스포츠카다. C는 내가 스포츠카를 사고 싶게 만든 중개자다. 지라르는 A가 B를 욕망하게 된 것은 C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일견 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싶으면 갖고 싶은 거지, 무슨 중개자가 필요하냐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라. 주변의 친구나 경쟁자들이 얼마나 나의 모방 욕망을 부추기는지, 사람들은 왜 톱 탤런트가 유행시킨 스타일을 따라 하는지를……. 욕망에 있는 모방적인 본질 바로 그것을 지적하는 게 지라르의 이론이다.

예를 들어 진주목걸이를 갖고 싶은 욕망은 실제로는 상류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주목걸이 너머의 ‘상류층'이 자신의 진짜 욕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상류층의 대리자인 간접적인 욕망의 중개물들과 끊임없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욕망의 이러한 가면적 경로를 냉철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중개자인 C(탤런트)처럼 되고 싶은 것이지, B가 아니라고 말이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가 낙양을 고집하는 걸 보고 뜯어말린 유경도 낙양천도(B)는 바로 주나라 천자(C)의 대리품일 뿐이었음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유방은 왜 낙양보다 함곡관을 택했을까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러한 욕망의 삼각형 구도는 자욱하게 펼쳐졌다.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후한이 망한 뒤 촉나라와 한나라를 석권하고 삼진을 평정한 후 항우와 천하제패를 놓고 각축을 벌이다가, 형양현에서 크게 무찔렀다.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한제국이 건설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그 순간만 해도 아직 제국의 기틀은 미미했다. 아직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디를 제국의 도읍으로 정해야 할까. 유방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적합한 곳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주나라의 수도인 낙양이다. 당시엔 주나라가 종주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을 때였다. 유방은 수도를 옮기는 일에 착수했고, 이 소식이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졌다.

그때 제나라의 포로 출신인 유경(劉敬)이라는 자가 소문을 듣고 한 고조(유방)를 만나러 왔다.
“폐하께서 낙양에 도읍을 정하신 것은 혹시 주나라 왕실과 융성함을 다투려는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그렇소.”

그러자 유경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고조에게 주나라가 어떻게 생겨난 나라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주나라는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은나라 말기의 주왕(紂王)은 로마의 네로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폭군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는 물론 제후까지 가리지 않고 소금에 절여 죽이고, 삶아 죽이고, 포를 떠서 죽였다.

그때까지 주나라의 힘은 미약했다. 하지만 요임금 때부터 10대를 거쳐 선정을 쌓은 덕분에 주나라 문왕대로 내려오면서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문왕이 죽고 아들 무왕이 즉위해 은나라 주왕을 칠 때에는 미리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맹진(孟津)에 모인 제후만 8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왕을 쳐야 한다고 말했고, 마침내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주나라는 성왕이 즉위하자 낙양에 도성을 세웠다. 유경은 한 고조에게 주나라가 낙양에 도읍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이유는 주나라가 천하 백성을 덕으로 감화시키려 한 것이며, 험준한 지형에 기대 후손들이 오만함과 사치로 백성을 학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병사 한 명 주둔시키지도 않고 주위의 소수민족과 큰 나라의 백성 가운데 기쁘게 복종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기열전> 중 「유경·숙손통열전」)

하지만 주나라와 지금의 한나라는 상황이 다르다고 유경은 지적했다. 서두에 인용했듯이 중국 전역이 피로 물든 지금 주나라의 도읍논리를 그대로 가져올 경우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유경의 경고였다.

그는 한 고조에게 진나라의 땅을 권했다. 진나라의 수도 함곡관은 산으로 에워싸이고 하수를 띠처럼 두르고 있으며 사면의 요새가 나라를 튼튼하게 지키고 있어 갑자기 적이 쳐들어오는 위급한 사태에도 100만의 군사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라가 계속 어지러울 것이 명약관화한데 함곡관에 도읍하면 수도만은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유경의 논리였다.
“폐하께서 함곡관으로 들어가 도읍을 정하고 진나라의 옛 땅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천하의 목을 조르고 그 등을 치는 일입니다.”
한 고조 유방은 고심 끝에 결국 유경의 이야기를 따랐다. 그의 공을 치하해 낭중으로 삼고 봉춘군(奉春君)이라고 불렀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대한 깨우침

유경의 지혜는 단순히 사태를 정확하게 읽으라는 것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거기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다. 등 뒤엔 피바다가 가득하고 발밑은 쑥대밭인데 눈앞에 고지가 보인다고 앞뒤 없이 달려가면 기다리는 것은 신기루뿐이라는 얘기다.

유방은 결코 그의 재위 기간에는 성군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수습해야 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었다. 수도가 한 국가의 심장이라면 그 심장을 수많은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헌데 한 고조는 주변에 아무 방어물이나 요새지도 없는 무방비 도시를 수도로 선택했다. 만약 유경이 없었다면 한 고조는 낙양의 핏빛 노을을 바라보며 후회하는 날을 맞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앞서도 말했듯이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대한 깨우침이다. 무릇 다스리는 자라면 냉철해야 한다. 목적에 복무해야지 대상에 매혹되어선 곤란하다. 수도를 굳건히 해서 제국의 기틀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낙양은 도읍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고조는 낙양에 매혹당했다. 그곳은 1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중국의 수도였고, 그 중심에는 성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고조는 주나라의 성왕이나 강왕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소유물인 낙양을 차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삼각형이다. 자칫 운명의 트라이앵글이 탄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매우 직접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간접적일 경우가 더 많다. 성욕의 근원이 모성애 결핍일 경우가 있듯이, 인간은 항상 무의식 중에 내재된 진짜 욕망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대변하고 있는 상징물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다.

오늘날에도 욕망의 장난은 그치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 우리의 욕망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하고 있다. 남들이 치니까 골프 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지기 싫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남들이 백화점 음식 사 먹자 덩달아 시장을 버리고 백화점에 간다.

창조적이지 못한 사회의 특징은 이처럼 ‘욕망의 간접화'의 수위가 높다는 것이다. 욕망에 개성을 부여하는 사회, 욕망의 직접성을 되살리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 개인적 의미를 생각하는 사회야말로 창조적인 무언가를 그려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