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2. 02:57

[광고와 스토리텔링]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광고와 스토리텔링]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아들은 진화한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은 이제 안 통한다. 아비만한 자식 없다는 것은 거의 망발에 가깝다. 적어도 엄마들에게 아들은 이세상 최고의 존재다. 희망이고 구원이다. 남편이 못 이룬 것들을 아들은 다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신념으로 산다. 아들은 애인이고 장난감이고 신종보험이다. 남편은 ‘웬수’이고 애물단지고 효력 없는 보험이다. ‘불혹’이 지난남자는 어느새 여자의 인생에서 ‘부록’으로 전락하고 만다. 아들은 아내를 가로채는 라이벌이요 복병이다. 한 때 내 애인이었고 내 여자였던 아내를 앗아간 아들이 밉다.

이른 아침 아들의 통학을 책임지는 운전기사이자, 늦은 밤 아들의 출출한 배를 다독거리는 야식당번으로 봉사하는 아내가 안쓰럽지만 한편 야속하기도 하다. 애꿎은 아내의 호의도 마다하고 사사건건 투정을 부리는 수험생 아들 녀석의 행패를 더 이상은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아들 방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갔다가 무참하게 퇴짜를 맞고 나오는 아내 대신 핫 초콜릿 한 잔을 건네주면서 불쑥 한마디 한다. “내 여자 너무 괴롭히지마라.”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꿀밤을 먹이는 건지 모를 애매모호한 아버지의 동작에 이어지는 서먹한 집안 공기. 내레이션으로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된다. “찬바람 불 때, 핫초코 미떼.(광고1)”

핫초코 미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국 청년을 애인이라고 데리고 들어와 인사시키는 딸 앞에서 머쓱해 하던 아버지가 쭈뼛거리며 한 마디. “하우 올드 아… 후~” 그러곤 싹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독이며 “찬바람 불 때, 핫초코 미떼.”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던 딸 녀석이 화해의 제스처로 엄마 앞에 차 한 잔을 툭 밀쳐놓으며 한마디 한다. “집 한번 되게 썰렁하네.”

핫초코 미떼 광고에는 서늘한 패러독스가 있다. 감칠맛과 여운을 남기는 서사가 있다. 그래서 이 광고를 두고 사람들은 ‘이야기 되는’ 광고라고 여기는 것 같다. 스스로 이야기 되는 광고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인터넷에서 바이러스처럼 광고 이야기가 꼬리를 무는 패러디 열전이 생겨난다.

이야기는 패러디를 타고 번져간다

패러디를 이야기하자면 ‘생각대로 T’ 광고를 뺄 수 없다.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못 참겠으면 그만두면 되고, 그러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 딴따다따 따란따다~ 생각대로 T.” 최근 방송된 광고 중에서 가장 쓸모가 많았던 CM송이었던 것 같다. 벨소리를 대신하는 컬러링 송도 되고, 기분풀이 추임새도 되고, 동아리 주제가도 되고, 여기저기 패러디도 되고. 말 그대로 생각대로 되는 노래였다. ‘되고 송’이라는 별명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광고2, 3).

가지 수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러디가 인터넷 사이트를 떠돌고 있다. ‘군인 버전’, ‘노처녀 버전’, ‘재수생 버전’, ‘백수 버전’, ‘알바 버전’ 등. ‘~하면 〜되고’라는 문장 속에 대입하기만 하면 패러디 끝! “가수 말 나오면 웃으면 되고, 그러다가 가수 되고 싶으면 소녀시대 멤버 보면 되고, 연예인 보고 싶을 땐 오디션 통과해서 보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돈이 없으면 알바하면 되고, 몸이 안 되면 운동하면 되고, 얼굴 안 되면 성격 좋으면 되고, 성격 아닌 건 고치면 되고, 이것저것도 아무것도 아니면 그냥 평생 혼자 살면 되고~.” 어떤 방송사의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패러디 가사도 인기를 끌었다. “차 싫증나면 한 대 또 사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사고, 그러다가 돈 다 떨어지면 아빠한테 손 벌리고. 아빠 나 백억만. 백억이면 해결 되고~ 좀 사는 티.” 아무튼 여기저기 패러디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세상은 모를 일이다. 온갖 ‘쇼’를 하며 불패의 기세를 떨치던 쇼(SHOW) 광고의 약발이 잘 안 먹히고 있다.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 부으며 무수한 화제를 만들어 냈던 KTF SHOW 캠페인이 이 광고로 인해 적잖이 주춤거리는 형국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패권 다툼에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련의 CM송이 뜻하지 않은 변화를 불러 오고 있는 것이다.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시작되는 왕년의 새우깡 CM송 신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라이벌인 SHOW의 ‘인생을 돕자’ 시리즈나 ‘쇼하고 살자!’시리즈가 별 볼일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생뚱맞은 상황 설정이나 등장인물들의 엎치락뒤치락 코믹한 몸동작도 여전히 재미있다. 애교스런 콧소리로 마무리하는 내레이션도 여운을 남긴다(광고4, 5). 하지만 아무래도 ‘되고 송’의 예측불허 변화무쌍한 랠리에는 역부족을 면치 못하고 있다. KT의 ‘라이프 이즈 원더풀(Life Is Wonderful)’ 캠페인도 그럴 듯하지만 그냥 멋있는 정도다.

‘세련되었지만 어렵다’, ‘잘 만들었지만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와 같은 평을 받아오던 SK텔레콤의 T 광고가 확실히 변했다. 이 광고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따라 부르기 좋을 만큼 익숙한 멜로디에 쉽고 편한 노래 가사 때문일까? 인구에 회자되었던 노래 가사에 브랜드를 앉힌 광고라면 최근에 방송된 오뚜기 진라면 광고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미칠 듯 사랑했던~”,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렇듯 귀에 익은 노래 가사의 한 대목을 툭 잘라서 진라면이라는 브랜드를 끼워 넣는 간단명료한 서사구조다. 새삼 새로울 것 없는 표현방식이다. 고전적 조건화 내지는 단순노출이라는, 효력이 입증된 이론모형에 기대고 있는 안전한 전략이기도 하다. CM송이라는 똑같은 수법을 가지고서도 뜨는 브랜드와 안 뜨는 브랜드가 있는 건 광고 물량의 차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야기’의 함량 문제 아닐까?

현대해상 하이라이프 광고는 위트 있는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위암일지도 모른단다. 7년 모은 비상금을 아내에게 다 줬다. 근데, 위염이란다. 아침마다 반찬이 달라진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하이라이프가 있어 웃는다”, “건강진단을 받았다. 1백 살까지도 거뜬하겠단다. 근데, 낼 모래가 은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하이라이프가 있어 웃는다”, “한 대 맞았다. 코뼈가 나갔단다. 납작하던 코가 오뚝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하이라이프가 있어 웃는다.” 인생의 한 지점에서 마주치는 황당한 사건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난감인 상황에서 보험이 오아시스가 될 수도 있고 피난처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솜씨가 깜직한 경지에 이르렀다(광고6).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서사

디지털 시대일수록 이야기의 가치는 빛을 더하는 것 같다. 원래 디지털이란 자로 잰 듯이 딱딱 떨어지는 것이다 보니까 가파르고 메마른 성질머리를 하고 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을 터이다. 그런 까칠한 모양새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솜씨로 다독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옛날 할부지, 할매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를 하던 것처럼 디지털 미디어들이 구수하고 정감 있는 아날로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박카스 광고의 ‘재봉틀’편과 ‘자전거’편도 그 사례다. “김정남 할머니의 피로회복제는 재봉틀입니다.” 이런 주장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카메라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다가간다. 할머니의 굵은 손마디와 자잘한 주름살, 윗실과 아랫실이 부지런히 교차하면서 한 땀 한 땀 헝겊을 누비는 바늘, 발놀림의 강약에 따라 춤추듯이 아래위로 진동하는 노루발의 움직임을 카메라는 정확하게 기록한다(광고7). 얼마 전 타계한 박경리 선생에게도 재봉틀은 고단한 글쓰기의 노역을 위로하는 피로회복제이고 장난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재봉틀로 박은 원고지가 강물이 되어 바다에 닿았다는 어느 추도사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봄의 피로회복제는 무엇일까? 박카스 광고는 정답을 자전거라고 밝히는 대신 이런 저런 형상을 한 자전거들을 오랫동안 보여주고 있다(광고8). 소설가 김훈의 비유처럼, 자전거는 삶을 굴리는 바퀴다. 온몸의 힘을 받아서 움직이는 가장 정직한 동력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자신이 도로의 중심이라는 착각에 빠져 거만해져 있을 때 자전거를 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조심스런 마음가짐으로 페달을 성실하게 밟아 간다. 그래서 바퀴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거리는 나와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되고 나는 자전거 위에서 세상과의 관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재봉틀과 자전거를 통해 묘사되는 박카스는 철저히 아날로그 음료다. 마시면 피로가 바로 풀리는 마법의 에너지원이며 뇌물과 정표 사이를 살갑게 오가는 인정의 기호다.

이야기의 참고서, 소설과 시

‘이야기’ 잘하는 솜씨가 새삼스럽게 능력의 잣대가 되고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말할 때도 그렇고 문화 콘텐츠의 함량을 잴 때도 그렇다. 게임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들먹인다. 인물이든 브랜드든, 놀이든 사건이든,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해 낼 수 있는지가 진정성의 척도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상·문화 콘텐츠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 <반지의 제왕>, <리니지> 게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런 영화와 드라마, 게임, 소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텔링은 문학 용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口傳)을 뜻한다.

브랜드에 스토리를 넣어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판매 촉진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스토리텔링+마케팅=감성 마케팅’, 즉 소비자의 마음 점유율을 높이는 수단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이야기가 담긴 제품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상품보다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소비자에게 뭔가 다른 상품이나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야기’의 풍부함과 빈곤함이 ‘좋은 광고’를 가리는 새로운 기준으로 주목받고 있다. 놀랍다, 재미있다, 특이하다, 새롭다, 강하다고 칭찬하는 대신 ‘이야기 된다’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메시지나 텍스트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는 지를 굳이 따져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란 동화 구연하듯이 아기들에게 일방적으로 읽어주던 그런 소통방식이 아니다. 텍스트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수용자가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제대로 반응하는가 하는 쌍방향 소통이 문제의 핵심이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이야기하기’ 솜씨가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좀 어눌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반응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면 더 좋다고 여긴다. 이야기 솜씨의 교과서는 역시 소설이다. 중국 문단을 이끌어갈 차세대 대표작가로 주목 받는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은 광고 서사를 짜는 데도 참고할 만한 중요 한 힌트를 줄 것 같다.

요약하자면,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나’에게 늙은 농부 푸구이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민요를 수집하러 다니며 만난 많은 노인들 중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털어놓는 푸구이 노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호감을 느끼며 그에게 문학 용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口傳)을 뜻한다.

브랜드에 스토리를 넣어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판매 촉진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스토리텔링+마케팅=감성 마케팅’, 즉 소비자의 마음 점유율을 높이는 수단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이야기가 담긴 제품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상품보다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소비자에게 뭔가 다른 상품이나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야기’의 풍부함과 빈곤함이 ‘좋은 광고’를 가리는 새로운 기준으로 주목받고 있다. 놀랍다, 재미있다, 특이하다, 새롭다, 강하다고 칭찬하는 대신 ‘이야기 된다’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메시지나 텍스트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는 지를 굳이 따져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란 동화 구연하듯이 아기들에게 일방적으로 읽어주던 그런 소통방식이 아니다. 텍스트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수용자가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제대로 반응하는가 하는 쌍방향 소통이 문제의 핵심이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이야기하기’ 솜씨가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좀 어눌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반응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면 더 좋다고 여긴다. 이야기 솜씨의 교과서는 역시 소설이다. 중국 문단을 이끌어갈 차세대 대표작가로 주목 받는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은 광고 서사를 짜는 데도 참고할 만한 중요 한 힌트를 줄 것 같다.

요약하자면,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나’에게 늙은 농부 푸구이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민요를 수집하러 다니며 만난 많은 노인들 중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털어놓는 푸구이 노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호감을 느끼며 그에게 이야기를 재촉한다.

<인생>은 원래 3인칭 시점의 소설이었다. 작가는 1~2만 자쯤 쓰고 나서 필력의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주인공 푸구이가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풀려 나갔다고 한다. 푸구이 노인은 고난의 연속인 일생을 회고하는 화자가 된다. 같은 글감이라도 스토리텔러의 입을 빌어 묘사되면 그 생생함과 깊이가 훨씬 더해진다는 것을 이 소설은 방증하고 있다.

내친 김에 윤대녕의 단편소설집 <제비를 기르다>도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단편 <제비를 기르다>는 과거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술집 작부 ‘문희’가 다시 ‘나’의 연인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쩌면 우연일 수 있고 실현의 개연성도 없는 듯한 만남이 이 소설의 스토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야기만 두고 보면 불편한 곳도 없지 않다. 동명이인으로 묘사된 ‘문희’의 캐릭터라든가, 인물들의 만남이 우연의 남발로 일관되는 것이라든가 어머니와 아버지, 술집 작부 할머니 ‘문희’가 다시 현실의 ‘나’와 만나는 ‘문희’로 현신하는 대목 등은 잘 꿰어 맞춘 모자이크 같은 스토리다.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바로 전화 걸어 통화를 하면 되고, 보고 싶으면 바로 화상통화를 하면 그만인 세상. 그야말로 ‘생각대로’ 되는 세상이고 마음에 있는 모든 생각들은 즉석에서 ‘쇼’를 해야 통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신속성과 실효성의 잣대로 측정되는 디지털의 편리한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모양새를 띠는 ‘정’과 ‘회한’, ‘이별’과 ‘아픔’, ‘그리움’과 ‘기다림’ 등은 그저 사치스럽고 미련한 감정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일까? 윤대녕의 소설 <제비를 기르다>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날로그 인간들의 또 다른 사랑 이야기로 읽혔다.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작용과 반작용을 만들어 내면서 확산되는 이야기의 가능성. 보다 전문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이야기 가치(story value)’가 된다. 이야기 가치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다. 역동성과 반전, 긴장과 갈등, 심리작용의 복잡한 화학작용의 농도에 있음을 <인생>과 <제비를 기르다>는 말해 주고 있다.

충분한 함량의 이야기를 담기에 광고는 너무 짧은 매체라는 불평이 있을 수 있다. 짧은 것을 불평하자면 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시는 이야기를 담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르인가?


(전략)… 요새 고기 없니더 달랑, 눈만 달린 호박씨만 나오니더 어제 시청 김계장, 와, 거, 벌초 때도 낚싯대 들고 오는 양반, 세 칸대 네 칸대 외바늘로 딱, 딱 수초 구멍에 때리 넣는데 참말 기가 막힙디더 그래도 꽝쳤심더 1급수 맹동지 옛말 됐니더 4짜 붕어 인터넷에 뜬 뒤에 벌떼 같은 릴 부대 원자탄에 물이 죽었심더… (후략)
- 전동균 시집, <거룩한 허기> 중 ‘맹동에서 온 전화’에서

시에도 이야기의 장치는 힘이 세다. 시인은 전화기 건너편에서 건너온 화자의 목소리를 빌어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알아듣고 공감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낚시에 일가견이 있거나 명당을 찾아 헤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간절한 이야기다.

어차피 광고가 풀어내는 이야기도 말귀를 알아들을 사람에게 더 절절하게 생생하게 전하는 데 묘가 있을 것이다. 세세하게 주절주절 다 설명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시간과 공간에는 어김없이 호기심과 관심이 모여든다. “소비자들의 세계관에 맞추어 스토리의 틀을 짜라.

그러면 당신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들리게 될 것이다.”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 <퍼미션 마케팅(Permission Marketing)>, <아이디어 바이러스(Unleashing the Ideavirus)>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변화의 전도사로 알려진 세스 고딘(Seth Godin)이 설파한 얘기도 바로 이 맥락이다.

출처 : 한국방송광고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