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6. 01:11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일본 기업들 - 해외 진출이든지, 틈새시장이든지 둘 중 하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일본 기업들 - 해외 진출이든지, 틈새시장이든지 둘 중 하나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만큼 일본의 중소기업은 두 가지에 역량을 집중,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해 사업 기회를 찾거나 아니면 일본 내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움츠러드는 요즈음 발 빠른 일본 중소기업의 움직임은 여느 때보다 재빠르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불황은 어느새 ‘기회'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일본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법 속에서 불황의 해법을 찾아보자.


일본 큐슈의 대표적인 상업도시 하카타의 두 기업

사례#1_ ‘온리 원(Only One)' 제품으로 승부하는 제일시설공업

하카타에서 전철을 타고 20분을 가면 ‘제일시설공업'이 나온다. 이 회사는 반도체와 LCD 제조공장에서 사용되는 수직 반송장치(승강기) 시장의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지방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만든 승강기는 상하로 움직이는 박스 형태에 공기압 원리를 적용해 제품을 깨끗한 상태로 이동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 LCD 패널인 10세대에도 대응이 가능하다. 매출 구성비는 한국, 대만, 일본이 각각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올 4분기 매출액은 47억 엔으로 3분기 대비 80%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이 달러로 대금 결제를 하지만 이 업체는 엔화 결제만을 고집한다. 이곳의 기술을 대체할 업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 거래 상대도 이 결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일시설공업이 계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온리 원(Only One)' 제품을 만든다는 점. 이외에 사원들의 다양한 국적 구성을 보면 금방 그 비결을 알 수 있다. 약 100명의 사원 중 20명이 한국, 대만, 중국 출신이다. 이들은 구매에서 설계, 영업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 배치돼 있다. 한국이나 대만에 있는 고객 회사의 주문을 받을 때부터 설치, 납품 후 애프터 서비스, 문제 발생 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지 언어로 대응한다. 언제라도 고객 회사의 요청이 있으면 해외 출장을 떠날 수 있도록 사원들은 여권을 회사의 책상서랍에 넣어 둔다.
현재 이 회사는 인도인 채용을 계획 중이며 내년에는 설계 부문을 중국으로 이관할 생각이다. 아울러 매출액의 8%를 연구개발비에 투입해 1년에 1개의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목표를 실천 중이다. 올해 새로 시작한 것이 물에 젖은 휴대폰의 데이터를 복구하는 서비스다. 어느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매입한 것으로 지난 10월에는 가전양판점인 베스트덴키와 제휴했다.

 

사례#2_ 눈앞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장기 투자로 방향 잡은 니치콘

“당장은 힘들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회사의 비전에 맞는 부문을 더욱 강화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늘릴 시기다” “투자는 남들이 안 할 때 해야 빛을 발한다”

다케다 잇페이 니치콘 회장(67)은 눈앞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장기적 투자를 지속할 것을 역설한다. 니치콘은 교토에 본사를 둔 콘덴서 제조업체다. 주요 제조 품목은 몇 와트 수준에서 250만 볼트의 고전압까지를 변환하는 데 쓰이는 다양한 콘덴서다.

이 회사는 올해 3월말 결산 때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1.5% 감소했을 정도로 실적이 악화됐다. 그렇지만 올해 투자 규모를 120억 엔(지난해에는 94억 엔)으로 오히려 늘렸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모터의 구동력-변속을 담당하는 제품의 개발과 생산 확대를 위해서다. 미래의 자동차로 꼽히는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는 셈이다.

다케다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현재 17%인 전체 매출 내 자동차 관련 매출을 20% 선으로 하루빨리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각 자동차 업체들이 2015년까지 친환경 자동차 생산량을 높이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으므로 다케다 회장은 이처럼 성장성이 높은 미래사업에 승부를 걸고 나선 것이다.

다케다 회장은 이미 후쿠이현과 나가노현 등지에 공장을 지어 원·부자재 가공부터 제품 조립까지 일관 제조를 하고 있다. 다케다 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1)LCD TV 등에 들어가는 관련 제품 (2)휴대폰 등 정보통신 관련 품목군 (3)에어컨용 인버터 기기 (4)자동차 관련 제품 등으로 짜고 첨단설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여름부터 가속화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세계 경제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세계 경기침체가 앞으로 2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비관론은 더 심각한 비관론을 낳아 경영인들의 의지는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 2개월 동안 자고 일어나면 엔화가치가 뛰는 상황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폭등한 엔고로 특히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수요 부진과 환율 급등이라는 연타를 얻어맞은 셈이다. 이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제일시설공업이나 니치콘 등은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시장 전략이나 상품 전략을 전환한 곳도 있으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중국시장의 비즈니스 모델 바꾼 이토추상사

이토추상사는 최근 중국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지금부터는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를 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수출과 투자에 올인해 온 중국 정부가 글로벌 경제위기가 확산되자 앞으로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내수에서 찾겠다고 정책을 전환하려고 한 만큼 이토추상사도 내수 쪽에 주력하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공장 건립 목적도 제품을 가공해 미국 등지로 수출하겠다는 목적이 아닌 중국시장을 겨냥한다.

이토추상사는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4대 분야로 환경, 에너지 절감, 자원, 생활소비재 관련 업종을 정했다. 예를 들어 환경 관련 분야라고 해도 그 범위가 넓다. 아사히맥주 등과 손을 잡고 시작한 순환형 농업도 환경사업으로 꼽힌다. 에너지 절감 분야로는 보일러 개조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기계 등의 판매 등이 대표적이다. 자원 분야 사업으로는 크게 이토추상사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에 필요한 자원을 수입하는 분야와 중국 내부에서 채굴한 자원을 중국시장에 판매하는 부문으로 나뉜다. 생활소비재 분야는 식품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식품 안전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토추상사는 지난 9월 아사히맥주와 공동으로 우유를 팔고 있다. 유기농산물을 사료로 먹인 젖소에서 짠 우유인 만큼 가격이 일반 우유의 두 배에 달하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한 이토추상사는 취급 품목을 빵 등 다른 품목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토추상사 중국법인은 올해부터 2010년까지 중국시장에 모두 1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이토추상사 본사의 대중국 투자와는 별도로 현지법인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투자 금액이다. 이토추상사 중국법인이 지난해 중국에 투자한 금액이 고작 900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금액이다.


독점 기술력으로 돌파구 찾는 중소기업들

어려울 때일수록 자사만이 갖춘 기술력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중소기업도 많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개발 경쟁이 한창인 태양전지. 선발 주자인 샤프와 산요가 태양전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인들의 이목은 교토시에 본사를 둔 벤처기업 ‘클린 벤처 21(CV21)'에 쏠린다.

2001년 5월에 설립된 CV21은 올해 6월부터 지구 모양의 둥근 태양전지를 양산하기 시작한 후발주자다. 지구형 실리콘 태양전지에 관한 기초 기술은 1970년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양산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CV21의 무로조노 미키오 사장은 남들이 사실상 포기한 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그는 마쓰시타전기(지금은 파나소닉으로 명칭 변경)의 태양전지사업부에서 구형 실리콘 태양전지 개발을 담당했지만 2001년 회사측이 태양전지사업부를 수익성이 약하다며 조직을 폐지하자 고민에 빠졌다. 마쓰시타전기의 다른 사업부로 옮겨가 다른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아직 성공시키지 못한 연구를 지속할 것인지의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결국, 그는 벤처기업을 설립키로 마음을 굳혔다.

무로조노 사장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할 경우 태양전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실리콘의 양이 종래의 판형 실리콘 태양전지에 들어가는 실리콘 양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국제 원자재 값 급등에 따른 실리콘 확보 전쟁이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꿈의 제품'인 셈이다. CV21는 이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실리콘 소비량을 대폭 줄여 종전에 비해 원가를 20~30% 가량 낮췄다. CV21은 전체 종업원 숫자가 77명이며 올해 3월말 결산에서 고작 4억 2,888만 엔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 15억 엔에 이르는 자금 조달에 성공, 2009년 연말까지 교토에 새로운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유럽의 늘어나는 태양전지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내수업종도 해외 진출에 박차

일본의 내수침체가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내수 기업 가운데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곳이 부쩍 늘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일본 내 신규 주택 수요가 갈수록 줄어들자 일본의 주택 건축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기업 특유의 에너지 절감 기술이나 태양광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한 건축 기술을 앞세워 현지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스미토모린교는 2002년 미국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한국에, 올해 4월에는 호주에서 단독주택 건설시장에 뛰어들었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목조 주택을 지어온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홍보하며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공업용 주택업체인 다이와 하우스도 중국 진출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한 전통 여관은 일본식 비즈니스 모텔에 서양의 호텔 시스템을 접목시켜 대박을 터뜨렸다. 1906년 이시가와현에 설립된 ‘카가야(加賀屋)'는 연간 숙박객 30만 명 가운데 2만 명이 외국인이다. 이들 외국인중 절반 가량은 대만에서 온 관광객이다. 1박(두 끼 식사 포함) 숙박비가 3만 엔으로 매우 비싸지만 성수기에 이곳에 묵으려면 예약하기도 힘들 정도로 인기다. 대만의 여행객을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지방 여관이 1박에 1만 원 이하로 가격을 설정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고가다.

카가야는 고가인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만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때가 되면 이 여관의 사장이 1시간이 걸리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간다. 돌아갈 때는 대만에서 인기를 끄는 일본산 과일 후르츠나 도넛 세트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선물한다. 식탁에는 장례나 사망을 의미하는 흰색의 식탁보나 냅킨 대신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붉은색만을 쓴다. 일본의 마쯔리(축제)나 가라오케 등도 참석시켜 색다른 일본의 문화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이 여관은 1996년부터 대만에서 홍보를 시작했는데 이제 ‘카가야'라는 이름은 ‘고급 일본 전통 여관'이라는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같은 대중의 뜨거운 인기가 확인되자 이 여관은 직접 대만에 진출했다. 타이베이시 북부에 일본의 카가야를 그대로 옮겨 놓은 전통여관을 2010년에 개점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한창 건설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일본 각 지방의 산업에 정통한 히토츠바시대 대학원 상학연구과의 세키 미치히로 교수는 “일본은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만큼 일본의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해외로 진출해 사업 기회를 찾거나 아니면 일본 내의 니치(Niche : 틈새) 마켓을 노리는 길 뿐이다”고 말한다.

한국의 기업들도 경기침체와 내수위축으로 어렵다고 움츠러들지만 말고 어차피 국내가 어렵다면 눈을 부릅뜨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밖으로 나설 일이다.


- 김대영 /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