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4. 22:48

[디자인 경영 시대 3편] 현대건축 디자인 트렌드 / 문명의 흐름을 등지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전환기

[디자인 경영 시대 3편] 현대건축 디자인 트렌드 / 문명의 흐름을 등지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전환기


최근 현대건축의 흐름은 새로운 경향을 창출하지 못한 채 정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0년대도 후반부로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199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20~30년 동안의 건축 트렌드를 살펴보면 사회적 요구에 건축이 종속되어 가는 현상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건축가들이 사회를 이끌 카리스마를 상실하고 자본의 논리에 귀속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문명의 흐름이 건축가들에게 불리한 시대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문명은 부침이 있게 마련인데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흐름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건축의 흐름은 십 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950년대의 모색기, 1960년대의 자유정신 시기, 1970년대의 합리주의 시기, 1980년대의 뉴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가 그것이다. 애석하게도 1990년대 이후는 정체·전환기로 이름 붙여야 할 것 같다. 최근 현대건축의 흐름은 십 수년간 새로운 경향을 창출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실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기에 여기에 치중한다면 잘해야 전환기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2000년대도 후반부로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1990년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최근 건축 경향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건축의 최근 흐름은 다음 여섯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980년대까지 형성된 현대사조들이 계속되는 현상이다
지역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팝 건축, 후기 모더니즘, 네오 모더니즘 등 현상들만 보면 비교적 다양성을 보인다.

찰스 무어의 성 매튜 교회는 미국 지역주의를 잘 보여 준다. 이민기 이전의 소위 말하는 프레 콜럼버스(Pre-Columbus)의 전통 목구조 방식을 기독교 교회에 접목시킨 점에서 단순히 건축 차원의 지역주의를 넘어서 문화적, 종교적 차원에서의 혼성을 시도하고 있다.

윌리엄 페레이라의 샌디에이고대학교 가이젤도서관은 후기 모더니즘과 구조주의 건축을 혼합한 조형성을 자랑한다. 콘크리트 구조 골격을 사선 방향으로 짜서 조형성을 더한 뒤 노출시켜 힘센 역사(力士)의 이미지를 창출했다. 본체는 반짝이는 반사유리를 써서 전형적인 후기 모더니즘 입장을 굳게 지켰다.

둘째, 생태건축이다
‘생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건축에서는 이미 19세기부터 기계문명에 반대하는 ‘자연' 개념의 일환으로 건축가들의 관심이 되어 왔다.

그러나 정작 건축에서의 생태주의는 애매한 입장에 처해 있다. 생태는 실천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어야 하는데 순수 양식 운동으로서의 건축 창작에 있어 이런 연계는 체약(締約)이 되기 쉽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생태 개념의 도입을 꺼리는 편이다. 쉽게 얘기해서 자신의 순수하고 고결한 예술 세계를 방해한다고 받아들인다. 태양열은 환경 분야로, 생태마을은 도시 분야로 각각 이동시킨 것은 좋은 예이다.

건축에서 좁은 의미의 생태건축은 형태 차원에 집중한 신표현주의가 대표한다. 브루스 고프와 바트 프린스의 LACMA 일본관은 좋은 예이다. 이 건물은 자연 유기성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고 동북아시아의 전통건축을 모델로 삼은 점에서 이론적으로는 생태 개념을 표방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건물 골격을 콘크리트로 짠 현상을 생태건축과 어떻게 연계시킬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생태건축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으로 하이테크 건축가들의 참여를 들 수 있다. 크게 보면 하이테크 건축은 기술력을 신봉하고 기계 미학을 디자인 요소로 삼는 사조이므로 생태건축과 대립된 개념으로 분류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생태건축에도 ‘생태의 정도'에 따른 등급이 생기면서 하이테크 건축가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겼다. ‘생태의 정도'란 바꾸어 얘기하면 기계문명과의 단절의 정도를 나타내며 이에 따라 산업혁명 이전의 전통시대로 돌아가자는 극단적 환경운동에서 기계력과의 공존으로 열효율을 높이려는 절충 경향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 편이다. 하이테크 건축가들은 기계 미학을 운용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후자의 경향에 참여하고 있는데 노르만 포스터 경의 런던 시청사는 좋은 예이다.

셋째, 사이버건축이다
도면을 그리는 도구로서 컴퓨터의 도입은 이제 너무 진부해서 디자인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반면 각종 첨단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비 유클리드 공간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건축에서의 첨단 경향을 대표한다. 특히 건축도 첨단 공학과 항상 보조를 같이 맞춰야 한다고 믿는 서양의 기술 신봉론자들이 이러한 경향을 이끈다.

이 경향은 컴퓨터 속에서는 일정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접기, 뒤틀린 공간, 전도 등 비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수학적 공간 개념들을 건축 공간으로 구현하는 데 일정한 성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상 현실 속에 머문다. 건축이란 결국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거나 발 뻗고 편히 쉬어야 하는 생활 공간을 만들어 내는 분야이므로 뒤틀리고 전도된 공간은 실생활과 비교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타당성도 걸림돌이다. 현재로서는 뒤틀린 공간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먼 미래의 일이다. 이들의 실험이 컴퓨터를 뛰쳐나와 실제 현실 속 건물로 구현될 날은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넷째, 대형 공공건물이나 도시공원 등 공공건축의 활성화 경향이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공공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밴쿠버시립도서관은 콜로세움을 모델로 삼았다. 실제 크기도 콜로세움에 근접할 정도의 대형 공공 공간이다. 밴쿠버 인구와 비교해 볼 때 위치와 규모 면에서는 확실한 공공성을 확보하면서 시민들의 지적 공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은 도살장이라는 혐오 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모범적 예이다. 현상공모에서 해체주의 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베르나르 추미의 당선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건축계 내부의 센세이션에 비해 시민들의 호응이나 사용 측면의 실패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섯째, 부동산 개발과 맞물린 고층 건물과 대형 공간의 등장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으로 최근에는 하이테크 건축이 이 흐름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기업이나 여러 지자체 등이 초고층 경쟁에 뛰어들고 있으며, 설계자는 대부분 하이테크 계열의 선진국 건축가들이 거론된다.

그러나 하이테크 건축은 이미 너무 많이 변질되어 1980년대 실험적 하이테크의 진지함은 사라지고 자본의 논리에 많이 귀속되는 형국이다. 주로 유럽에서 시도되던 실험적 초기 단계가 이후 미국의 대형 설계사무소로 넘어가면서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자본의 세계 침투와 파트너를 이루어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이끄는 도면공장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여섯째, 상업건축의 득세이다
이 역시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현상 가운데 하나로 주로 소비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현상이다. 한 건물 안에 식당가, 영화관, 쇼핑몰 등 소비시설들을 종합 세트로 갖춘 대형 건물이 주인이다. 건축 양식은 소비를 돕기 위해 화려해진다.

대공황 이후 생산 자본주의에서 소비 자본주의로 넘어가던 1930년대의 소비문화를 이끌던 아르데코 양식이 새롭게 리바이벌되고 있다. 이름 하여 네오 아르데코쯤으로 부를 수 있는데 미국에는 도면공장처럼 기계적으로 이런 소비 건물을 설계하는 사무소들이 즐비하다.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RTKL도 대표적 예인데 이들이 설계한 어빈 스펙트럼 센터는 마치 1930년대 할리우드 양식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르데코의 리바이벌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CGV 설계도 맡고 있다.

이상이 대략적으로 살펴본 최근 20~30년 동안의 현대건축 디자인 트렌드이다. 이 가운데 좁은 의미의 디자인, 즉 양식운동은 첫 번째에 국한되고 나머지는 사회적 요구에 건축이 종속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건축가들의 창작력이나 예술적 권위는 많이 약해졌고 사회적 뒤치다꺼리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원인은 양면적이다. 건축가들이 사회를 이끌 카리스마를 상실하고 자본의 논리에 귀속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문명의 흐름이 건축가들에게 불리한 시대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문명은 부침이 있게 마련인데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흐름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의 경제위기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