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8. 15:00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2편 / 경제]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2편 / 경제]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향후 중국 경제는 경제대국이자 무역대국으로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본격화할 것이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극도의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이는 2009년에 세계 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해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에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이 무역, 투자 등에서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변화는 한국 경제에 중대한 위협 요소로 작용하는 면이 많으나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발전 기회로 활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중국을 세계 경제 중심으로 이끈 개혁개방

개혁개방 30주년인 지난 2008년은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된 해였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00년을 기다렸고 7년을 준비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에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올림픽은 100여 년간 계속된 오욕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중국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상징과도 같기 때문이다.

실제 베이징올림픽은 아시아 국가 최초의 메달 집계 1위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첨단 경기장, 화려하고 장대한 개폐회식 등으로 중국의 발전상과 문화대국으로서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장(場)이기도 했다.

2008년은 또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중국 경제의 위상이 새롭게 부각된 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선진국들이 극도의 침체에 빠진 반면 중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2위 수출대국, 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음에도 여전히 초고속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기아와 재해에 시달리던 거대 사회주의 후진국 중국이 어떻게 불과 30년 만에 이러한 경제 기적을 이룩한 것일까? 이는 바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시작하고 그 후계자들이 흔들림 없이 계승한 개혁개방 정책의 힘이다.

 


개혁을 수반한 대외 개방이 성공의 열쇠

1978년, 십수 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집권한 덩샤오핑이 직면한 중국은 거대한 폐허와도 같았다. 대중을 동원한 극단적 사회주의 운동이었던 문화혁명(1965∼1976년)이 중국의 문화와 경제 기반을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공장, 도로, 학교 등 경제 건설을 위한 인프라는 대부분 훼손되었고 과학자, 교수, 전문기술자 등의 경제 건설을 위한 인재 풀도 유실되어 국내의 발전 기반은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재건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등장한 덩샤오핑은 현명하고도 과감하게 외부로 눈을 돌렸다. 그것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가 주요 대상이었다.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여전히 소원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체제 위협을 무릅쓰고 자본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중국 경제에 개방과 개혁의 바람을 거세게 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체제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돈과 기술을 들여오는 것은 개방만 가지고는 불가능하고 중국의 기존 경제체제의 개혁을 필요로 했다. 즉, 덩샤오핑의 대외 개방 정책은 태생적으로 반드시 ‘개혁'을 수반해야 했던 것이다. 화궈펑(華國鋒) 등 덩샤오핑 이전 정권에서도 대외 개방 시도가 있었으나 덩샤오핑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고 속도 조절에도 성공한 개혁과 개방

덩샤오핑은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여 경제 발전을 위한 역량을 결집했다. 마오쩌뚱이 내륙지역 개발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현실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았던 연해지역 중심의 발전 전략을 채택했으며 또한 모든 인민이 잘사는 것이 아닌 일부 계층의 우선적인 발전을 용인했다(선부론: 先富論). 사회주의체제에서 금기되어 있는 빈부격차까지 허용한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덩샤오핑이 훌륭했던 점은 개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전략적으로 개혁개방의 속도를 조절했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1989년에는 정치·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급격한 개혁 시도를 유혈 진압한 후 불명예스럽게 권좌에서 물러났고, 천안문사태 이후 개혁개방이 침체된 1992년에는 노구를 이끌고 중국 남부를 원행하며(남순강화: 南巡講話)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촉구하였다. 개혁개방정책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1997년 덩샤오핑 사후에는 그의 충실한 후계자인 장쩌민(江澤民)에 의해 계승되었다. 장쩌민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완성하여 개혁개방 정책의 이론적 틀을 구축하고 2001년에는 개혁개방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WTO 가입에 성공했다.


WTO 가입을 계기로 비상한 중국 경제

중국 경제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고성장을 시작하긴 했으나 현재의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2001년 WTO 가입이 결정적 계기였다. 중국은 2001년 세계 6위에서 2007년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10%대의 고성장 속에서도 물가는 안정적인 ‘고(高)성장-저(低)물가'기조를 지속하였다.

 

또한, WTO 가입 당시의 ‘자국 시장을 외국 기업에게 내줄 것'이라는 내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7년간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외화를 획득하였다. 2007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수출대국으로 부상했으며, 외환보유고는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 외국자본 유입 등에 힘입어 2008년 말 현재 2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WTO 가입 이후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개혁개방 이후 일관되게 추진한 시장 개방 및 성장 우선주의 경제 정책이 세계 경제의 호조세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후진타오는 ‘과학발전관'으로 경제의 질적 발전 추진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 경제는 30년간 지속한 성장 우선 정책이 낳은 환경오염, 소득격차 확대, 자산 버블 등 경제 내 각종 부작용의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하였다. 또한, 세계적으로 중국산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신의 확산은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진타오(胡錦濤)가 제기한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은 고도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경제의 질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또 다른 측면의 개혁개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과학발전관은 환경파괴, 자원낭비, 소득격차, 산업의 저부가가치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 과거 성장 위주 정책을 ‘비(非)과학적' 방식으로 규정했으며, 양적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후진타오가 경제의 양적인 성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실제 후진타오 집권 후 중국 경제는 연평균 10.2%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의 성장 우선 정책을 철저히 계승했으며 거기에 덩샤오핑이 시기적으로 할 수 없었던 질적 발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7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전망

향후 중국 경제는 경제대국이자 무역대국으로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본격화할 것이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극도의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이는 2009년에 세계 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해보다 커질 것이다. 물론 세계 경제 침체에 중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고 중국은 내부적으로도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나 이로 인해 중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일단 2008년 11월 4조 위안(800조 원)에 달하는 경기부양조치를 발표하는 등 중국 정부가 경기침체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2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는 위기 발생에 대한 대처 능력을 크게 제고하고 있다. 즉, 중국 경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미국 등이 국제 금융시장 안정, 중국 내 자국 투자 보호 등을 위해 중국 정부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아시아 외환위기, 사스 창궐, 국유 기업 및 은행 개혁, 글로벌 통상마찰 등 경제 위기 국면을 겪으면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중국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도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물론 중국 경제도 장기적으로는 성장세 둔화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2,500달러에 불과한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여전히 7% 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향후 더욱 확대될 것이다. 2017년 경에 중국의 GDP는 6조 달러로 일본을 추월하여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경제의 부상과 변화를 기회 요인으로 삼아야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대(對) 중국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무역수지 흑자가 감소하는 등 한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 구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한국의 중간재 등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등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한·중 경제 구도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여전하고, 중국에 의해 한국 제조업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대두되는 등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초과수요에 편승한 물량 위주의 대(對) 중국 수출은 고부가가치 품목 위주로 전환되어야 하며 질적 성장 전략에 따라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중국의 서비스업, 환경·에너지 관련 산업, 유통업 등에 대한 한·중 협력의 강화도 시급하다.

향후에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이 무역, 투자 등에서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다. 내수시장이 협소한 우리 경제의 활로는 결국 해외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경쟁력 수준이나 지리·문화적 근접성, 수출대상국의 구매력과 잠재성 등을 고려하면 중국은 가장 유망한 시장이다. 우리 기업들은 향후에도 중국 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하고 이를 제조업의 구조고도화ㆍ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 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국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와 질이 결정될 것이다. 중국의 변화는 한국 경제에 중대한 위협 요소로 작용하는 면이 많으나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발전 기회로 활용할 여지도 여전히 충분하기 때문이다.


- 정상은 / 한남대학교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