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8. 14:56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1편/중국의 정치·사회]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한 ‘효율 지향의 정치 개혁’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1편/중국의 정치·사회]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한 ‘효율 지향의 정치 개혁’


지난 1978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장쩌민, 후진타오로의 두 차례 권력 교체를 단행했다. 두 사람은 모두 덩샤오핑이 지명한 후계자로 최고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후진타오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중국 공산당은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나 그 성공을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치·사회의 안정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은 혁명적 이념이 아닌 경제적 업적이었다. 따라서 경제가 회복 불능의 극도적 침체에 빠지거나 정부가 크나큰 정치적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대규모의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의 3대 혁명, 개혁개방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2008년 12월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선포 30주년 기념식에서 “개혁개방은 중국 100년 근현대사에서 신해혁명, 사회주의 혁명과 함께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끈 위대한 3대 혁명”이라고 선언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을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봉건군주제를 타파한 쑨원(孫文)의 신해혁명,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킨 마오쩌뚱(毛澤東)의 사회주의 혁명과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덩샤오핑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 아니할 수 없다.

 


여전히 덩샤오핑이 지배하는 중국

개혁개방을 혁명이라고 강조한 후진타오 주석은 누구인가?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발굴해서 키운 그의 후계자이다. 덩샤오핑은 장쩌민(江澤民) 이후의 중국을 맡길 요량으로 1992년 내륙의 오지에서 근무하던 무명에 가까운 젊은 정치인 후진타오를 중앙의 최고 무대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지목한 후계자답게 이후 승승장구하여 2002년 최고 지도자에 등극했으며 집권 후에도 그의 개혁개방 노선을 철저히 승계했다. 이런 후진타오가 개혁개방을 혁명으로 규정한 것은 향후에도 흔들림 없이 덩샤오핑의 노선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과도 같다.

이처럼 덩샤오핑은 후진타오 이전 후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시기(1989-2001년)를 포함하여 지금도 여전히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1949년 국민당을 몰아낸 이후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중국을 지배한 마오쩌뚱보다 더 오랜 기간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우선 실용주의 노선의 힘

덩샤오핑이 중국에 준 가장 큰 선물은 중국 정치에 계급투쟁 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우선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바로 30년 전 1978년 12월 18일 공산당 제 11기 중앙위원회 제 3차 전체회의에서였다. 덩샤오핑은 “경제 문제는 모든 정치 문제에 우선되고 정치 문제는 경제적 각도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멸망으로 끌고 가던 공산당은 이때부터 이념 문제라는 족쇄에서 해방되어 중화민족 부흥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세계 최고의 경제 성장을 기록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도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효율성과 안정성을 달성했다. 물론, 덩샤오핑의 경제 우선 실용주의 노선이 탄생시킨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힘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중국의 체제

지난 30년간 중국의 정치는 경제 발전 지상주의에 의해 그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었다. 즉, 정치개혁이 정치민주화를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 행정 체제 수립을 위한 행정 개혁과 유능한 통치 엘리트 충원을 목표로 하는 인사개혁 등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정치 개혁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중국의 정치 개혁을 ‘효율 지향의 정치 개혁'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대단히 유능한 덩샤오핑의 후계자였다. 장쩌민은 중국의 통치 엘리트를 혁명 간부에서 기술 관료로 대체하여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고 자본가, 기업가 등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공산당을 혁명 정당이 아닌 집권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후진타오 역시 공산당의 통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정 시스템의 개혁, 법치주의 확보, 당내 민주적 의사 결정 체제 구축 등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치는 서방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비민주적이며 전근대적이다. 그러나 급격한 정치 민주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구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서방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 정치, 사회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며 안정적이다.

2008년에 발생한 미증유의 대재앙이었던 쓰촨성(四川省) 대지진에서 보여 준 중국 정부의 기민하고 효과적인 대처와 사회의 안정상은 이를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다. 중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체제를 완성해 가고 있다.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는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 정치

물론 중국의 정치, 사회가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다. 일당 독재의 폐해인 부정부패 문제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뿌리가 깊으며 경제 발전 우선주의는 심각한 지역·계층 간 빈부격차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 후진타오 지도부는 중국의 화려한 성과와 함께 그늘진 모습을 모두 끌어안고 출범했다.

후진타오 시대의 공산당은 과연 지난 시기에 이룩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면서 중국이 당면한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후진타오 지도부는 한편에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체제를 좀 더 민주적으로 개혁하여 증가하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 요구를 수렴하면서 사회적으로 산재해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또한, 향후 중국 공산당의 권력 승계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에는 선거와 같은 공개적이고 공정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지난 1978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장쩌민, 후진타오로의 두 차례 권력 교체를 단행했다. 두 사람은 모두 덩샤오핑이 지명한 후계자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최고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후진타오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공산당은 집단지도체제와 엘리트 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나 그 성공을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정치·사회의 안정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중국 공산당은 중국 국민들로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은 혁명적 이념이 아닌 경제적 업적이었다. 따라서 경제가 회복 불능의 극도적인 침체에 빠지거나 정부가 큰 정치적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대규모의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둘째, 중국 공산당은 이념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를 정착시켰다. 대표적인 인물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이다. 원자바오는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강경진압을 반대하고 시위 학생을 격려하여 실각한 후 사망할 때까지 가택연금을 당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최측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바오는 살아남았으며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원자바오가 특유의 성실성과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정치체제가 그만큼 유연해지고 능력 위주의 인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중국 정부는 한국이나 대만의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는 달리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즉, 사회주의 중국은 광범위한 인민의 참여와 지지를 통해 수립되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공산당과 국민 모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중국 국민들이 실업이나 빈부격차, 부패 등 특정 사안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단기간 내에 공산당과 체제 전반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민주화, 시장화, 세계화 등으로 인해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고비 때마다 중국이 보여 준 능력과 저력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공산당은 중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새롭게 변모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 정상은 / 한남대학교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