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 20:09

[미래 성장 산업] 2차 전지, 세계가 주목하다! - 무궁 무진한 그 성장 가능성을 엿본다.

[미래 성장 산업] 2차 전지, 세계가 주목하다! - 무궁 무진한 그 성장 가능성을 엿본다.


2차 전지는 쉽게 말해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와는 달리 재충전해서 쓸 수 있는 건전지를 말한다. 흔히 휴대전화, 노트북PC에 들어가는 건전지를 생각하면 되는데, 요즘은 이렇게 휴대용 기기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업계에서는 대용량 2차 전지 시장만도 2015년 190억 달러(약 2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일부 주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선진국에서는 저탄소 에너지원 발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다. 
 

가장 주목 받는 차세대 에너지원

충남 대덕의 SK에너지 연구단지에선 요즘 대체 에너지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연구원들은 태양광 발전 시스템, 바이오 연료, 수소 에너지 등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 상용화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2차 전지다. 그만큼 활용 범위가 넓고 경제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미 노트북PC나 휴대전화에 빠지지 않고 쓰이고 있으며, 조만간 하이브리드 자동차(전기 건전지와 기름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자동차)나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면 2차 전지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휴대전화나 노트북PC 역시 고성능화에 따라 점점 고사양의 2차 전지가 요구되는 추세다.

 


세계 정상 노크하는 국내 대기업들

본래 전자제품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제품의 특성상 2차 전지 시장의 전통 강자는 일본 기업이었다. 일본의 산요, 소니, 파나소닉 등이 전자제품과 맞물려 2차 전지 시장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최근 판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IT(International Information Technology)'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1위는 여전히 일본 산요(약 23%)가 지키고 있지만, 2위는 삼성SDI로 일본 소니의 자리를 처음으로 빼앗았다. 삼성SDI는 지난해 전 세계 2차 전지 시장의 15.1%를 차지했고, 소니는 14.7%에 머물렀다. 삼성SDI는 3~4년 전만 해도 일본 기업에 밀려 4~5위에 머물렀다. 삼성SDI가 작년 하반기부터 기존의 PDP 사업 대신 2차 전지를 회사의 주력 사업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육성해 온 결과다. 삼성SDI는 이제 회사의 주 업을 ‘에너지'로 규정할 만큼 2차 전지 쪽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세계 시장 4위를 기록한 LG화학 역시 올해 2차 전지 사업 매출 목표를 작년 대비 100% 이상 늘려 잡았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 충북 오창과 중국 난징에 월 1,600만 개 제조가 가능한 생산 라인을 새로 갖췄다. 노키아(휴대전화), HP(PC) 등 각 분야 정상기업들에 대한 공급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새로운 시장이 될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 시장 대비에 적극적이다. LG화학은 올해 초 미국 GM자동차와 전기자동차용 2차 전지 공급 대규모 장기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는 올 여름 현대자동차를 통해 LG화학의 2차 전지가 탑재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된다. 삼성SDI의 경우 작년 말 독일의 유명 자동차부품업체 보쉬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전지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향후 5년간 5억 달러(약 7,000억 원)를 공동투자키로 했다. SK에너지 역시 2011년 상용화를 목표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2차 전지 사업을 추진 중이며, 이를 몇 년 내로 조(兆) 단위 사업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반격 벼르는 일본 기업과 치열한 경쟁 벌일 듯

반면 일본 기업은 최근 엔고와 잇따른 실적 부진으로 다소 주춤하고 있다. 산요의 경우 작년 말 파나소닉에 인수됐으나 파나소닉이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수조 원 대의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아직 두 회사 간 전지 사업 시너지 방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산요는 2005년 이후 세계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졌다. 소니도 엄청난 적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어 신규 투자 계획이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만간 일본 기업의 공세가 다시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화학·전자 산업의 흐름이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바뀌고 있고,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 등이 본격적으로 열릴 경우 2차 전지 분야에서 엄청난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각국 중앙 정부가 글로벌 금융 위기 타개를 위해 정부 재정을 투입하면서까지 태양광·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그린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어, 신규 사업을 벌이기에 이만한 기회도 없다는 분석이다.

또 그동안 강세 일로였던 엔화 가치가 최근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본 기업들이 조만간 경쟁력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오랜 건전지 기술 노하우가 있는 산요와 세트 시장의 강자인 파나소닉의 강력한 시너지가 결합된 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 역시 최근 전자제품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단연 부각되고 있는 2차 전지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다.

 


누가 더 강하고 오래 가는 건전지를 만들까

물론 국내 업체들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형국이다. 삼성SDI의 경우 PDP 등 기존 사업 외 다른 분야에서도 활로를 모색해야 하고, LG화학은 기존의 석유화학 산업에선 고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형국이다. 두 회사 다 성장성이 높은 신규 사업으로 2차 전지를 더욱 키우려 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SK에너지도 언제 맞닥뜨릴지 모를 원유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 사업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2차 전지 시장이 마치 전자제품이나 반도체, LCD(액정화면) 시장처럼 한일 간 경쟁 구도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분야 역시 그 사이 두 나라만큼 기술을 축적한 기업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경쟁 과정에서 충분한 가격 경쟁력이나 ‘규모의 경제'를 갖춘 기업은 우위를 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차츰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도로 정리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2차 전지 시장의 판도를 가름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누가 더 ‘강하고 오래 가는 건전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향후 이 시장의 주인도 정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 탁상훈 /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