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6. 11:29

말하지 않아도 큰 그림은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큰 그림은 보인다

광고를 둘러싼 좋은 얘기는 다 그렇듯,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s) 역시 소비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메시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이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다면 자랑스럽기도 하다. 기업이나 제품의 다양한 마케팅 믹스가 많은 부분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도 할 수 있으므로.
이제 많은 기업들이 IMC 교과서에 나온 대로 조직을 운영한다. IMC팀이니, 마컴팀(Mar-Comm. Team)이니 하는 이름을 달고서. PM(Product Manager), BM(Brand Manager), CM(Category Manager) 중심의 조직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부응하는 광고회사의 조직도 일부 광고주 대응 형태로 어설프게 각 직능을 모아 운영하기도 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상품기획을 처음부터 따로 둔다든지, 제품 콘셉트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피드백 되어 유연하게 수정, 보완될 수 없다면 어떻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마케팅과 같은 범주로 격상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광고회사 역시 단순히 마케팅, 전략, 크리에이티브, 매체 등을 한 팀에 몰아넣어 놓았다고 IMC인가.


암스트롱은 철인3종경기 선수가 아니다
1990년 대 초로 기억된다. 국내에서도 한창 슐츠(Don E. Schultz)의 이름을 들먹이며 IMC를 떠들기 시작할 때, 어느 외국계 스포츠브랜드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름 IMC 깃발을 달고 한 프레
젠테이션이었는데 그 전과 변한 거라고는 BTL(Below the Line)의 매체를 좀 더 다양화한 것과 전통적인 ATL(Above the Line) 매체의 광고를 뒤로 배치해 나중에 설명한 것뿐이다.

IMC 이전에는 BTL이 없었는가?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 옥외(Outdoor, Out of Home)니 SP(Sales Promotion)니 하는 이름으로 이미 다양한 매체가 존재했었다. 지금의 IMC는 아직도 대부분 이런 수준에 그친다. ‘빅 아이디어(Big Idea)’라고 부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여기저기 적용하는게 진정한 IMC는 아닐 것이다. 결정된 ‘빅아이디어’는 선정된 그 매체이어야만 하는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TV는 필요 없다고, 혹은 인터넷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험(Experience)’을 ‘빅 아이디어’로 한 나이키 플러스(Nike +)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TV나 잡지 광고에 집중되지 않았다. 온라인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시카고를 북부와 남부로 나눠 대항전을 실시해 화제를 모았고, 국내에서는 대학간 시합을열기도 하였다. 오늘도 나이키 플러스에서는 수천 개의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은 어린 시절 철인3종 경기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이클에 탁월한 재주를 보이자 이에만 집중해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정작 우리는 철인3종 경기의 챔피언은 모른다. 철인의 칭호도 그의 것이다.
 
‘Keep Going’을 팔지 말고 ‘버니(Bunny)’를 팔아라
역시 1990년 대 초 DDB니드햄은 매뉴얼까지 만들어 R.O.I. 전략의 핵심으로 PMN(Personal Media Network)과 소비자 심리의 ‘열린 틈(Open Aperture)’을 전파했다. 소비자가 각각의 매체를 접했을 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제품이 목표로 삼는 타깃에게 적합한 매체접촉 상황을 선택, 크리에이티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역으로 들어설 때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리무진 그림의 복권광고. 힘든 하루 일과에 지친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골뱅이 무쳐놓았으니 맥주 사오라’는 아내 목소리의 광고 등이 이러한
크리에이티브의 예일 것이다.

물론 ROI에서 적극적으로 IMC 개념을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다양한 매체의 활용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그들 스스로 직접 실천한 예가 바로 에너자이저(Energizer) 캠페인이다. IMC의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는 이 캠페인은 제품 포장에서부터 광고는 물론 각종 프로모션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 주인공은 북치는 토끼인형, ‘버니’다. TV나 인쇄광고는 물론, 버니는 풍선이 되어 날기도 하고 NBA경기 중간에 나와 슛을 넣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IMC전략의 핵심으로 ‘원 메시지(One Message)’가 종종 언급된다. 브랜드를 통합적인 메시지로 접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원 보이스(One Voice)’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이를 좁은 뜻으로만 해석한다면 송신자(送信者)인 기업이나 제품의 입장에만 머물게 된다. SMP(Single Minded Proposition)로 표현되는 ‘콘셉트(Concept)’의 개념과 무엇이 다른가.

지겨운 버니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자이저의 커뮤니케이션 콘셉트는 ‘오래간다’이다. 여기에 맞게 개발된 슬로건이 ‘Keep Going’인데 이를 ‘원 보이스’라고 해버린다면 IMC만큼 싱거운 개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원 룩(One Look)’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하겠다. 하나의 메시지를 남기라는 것은 그 브랜드에 대해 지속적으로 떠 올릴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남기라는 것이고 이는 궁극적인 소비자의 심상(心像)이 된다. ‘오래 가는 건전지’의 심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표상(表象)이고 이것이 바로 ‘버니’인 것이다.

 

‘선영아 사랑해’의 추억 따윈 떠나 보내자
IMC전략과 관련해 ‘빅 아이디어’와 함께 광고현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드라이빙 아이디어(Driving Idea)’이다. 둘을 같은 의미로 쓰거나 그냥 쉽게 ‘빅 아이디어’를 콘셉트쯤으로, ‘드라이빙 아이디어’를 슬로건이나 키워드쯤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드라이빙 아이디어’란 소비자들이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느낄 수 있는 중심 개념이나 실행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드라이빙 아이디어’에 대한 오해는 IMC 자체를 너무 좁게만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궁색한 국내 IMC캠페인 사례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마이클럽닷컴의 ‘선영아 사랑해’도 그렇다. 다양한 매체의 적용이 '통합’보다는 ‘복제’에 집중된 것이다. 복제의 강박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그러다 보니 주로 TV광고에 썼던 핵심 이미지나 카피를 다른 매체에 복제하게 된다.

LG텔레콤의 ‘기분존’ 캠페인은 나름 ‘드라이빙 아이디어’의 개념을 선명하게 사용하였다. 집전화보다 저렴한 이동통신 서비스라는 것을 버려진, 그래서 가출을 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일 수밖에 없는 집전화기를 통해서 표현하였다. 건물이나 기둥 래핑, 지하철 스크린도어나 버스 셀터 등 ‘집전화기의 수난’이라는 드라이빙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매체를 골라 각 매체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이다.


실행 프로그램으로서의 드라이빙 아이디어는 일본의 노스페이스 캠페인이 좋은 예로 꼽힌다.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프로모션 프로그램인데 아이디어의 핵심은 엽서 보내기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받은 엽서를 보내기만 하면 모두에게 반다나를 준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 우체통에서나 보내면 안 된다는 것. 오직 후지산 정상에 설치된 우체통만을 이용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아웃도어 전문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소비자 스스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선수들은 찍을 땐 찍고 돌린다
흔히 IMC를 ‘큰 그림(Big Picture)’이라고 부른다. 큰 그림은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IMC의 크리에이티브 역시 소비자들이 어떻게 하면 볼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으레 보이는 것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열렸던 동평양대극장의 한쪽 벽면에는 ‘울림폭포’라는 큰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그 엄청난 크기와 실감나는 화폭에 알아서들 모여들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들을 해댔다.

다음 호부터 각각의 크리에이티브 사례를 중심으로 펼쳐질 ‘CREATIVE 360°’ 역시 선명하고 생생하게 펼쳐질 그림이었으면 한다. 원래 ‘360도’의 개념은 오길비(Ogilvy)의 브랜드전략인 ‘360도 브랜드 스튜어드십(360 Degree Brand Stewardship)’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통합적 브랜드 전략의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프로모션이나 이벤트 등 특정 매체를 제한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매체를 선정한 당위성과 ‘빅 아이디어’뿐이다. 이제 현기증이 나도록 ‘360도’를 돌려보자. 물론 선수들의 춤사위가 그렇듯 마구 돌리 다가도 찍을 땐 확실하게 찍어 줘야겠지만. <출처: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정보, 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