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비즈니스 키워드 2] 세계시장을 이끌 신소비 키워드 세 가지
최근 나오는 전 세계 경제지표들은 최고의 실업률이나 최저의 성장률이라는 통계나 분석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들에게는 향후 다가올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트라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 10개국의 구매 동향을 분석해 내놓은 <미리 보는 2009년 소비 트렌드>는 생생한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라는 점에서 기업들이 참고해 볼 만하다. 2009년 소비 트렌드에서 가장 큰 특징은 크게 ‘실속', ‘가치', ‘윤리·환경'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작년 12월 중순부터 한 달 가량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다 온 필자의 친구는 미국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1달러의 귀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친 이후 대형 몰에서 미국 서민들의 생활을 직접 지켜봤던 사람의 말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주체들의 이런 변화는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금융위기 탓이다. 갑작스런 경기침체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강타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즉각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뉴욕 삭스 5번가의 한 백화점
구매담당자인 론 파쉬의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08년 3~4분기에 일어난 엄청난 경제적 사건들이 소비자의 행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앞으로의 소비 행태는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로도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근 나오고 있는 전 세계 경제지표들은 모두 전후 최대치(실업)이거나 최저치(성장)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소비자의 니즈를 잘 파악해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들에게는 향후 다가올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내놓은 <미리 보는 2009년 소비 트렌드>의 의미는 각별하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 10개국의 구매 동향을 분석한 이 보고서는 코트라가 전 세계 90여 곳의 사무소에서 생생한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라는 점에서 기업들이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 많다. 소비 트렌드에서 가장 큰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브랜드보다 품질을 먼저 본다 '실속형(economical)'
경기침체로 소득이 줄었거나 줄 것이라고 예상하면 소비자는 먼저 지갑을 여는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더라도 좀 더 싼 제품을 사려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까닭에 소비자들은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경향이 크다. 제품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따진다.
미국 블루밍데일즈(Bloomingdale's) 백화점의 판매책임자인 루시 앤더슨은 최근 상황에 대해 “손님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제품에 대한 문의는 많지만, 실제로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시내 백화점의 경우에도 엔화 가치 상승으로 수혜를 입은 일본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국내 소비자의 소비 패턴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백화점이 예전처럼 붐빈다고 해서 판매량이 과거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변화는 명품업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명품업계는 이미지 훼손에도 불구,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묘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연말 세일이 없던 명품 의류 판매점인 해리 로즌(Harry Rosen)이 구매 패키지 할인행사를 실시했을 정도다.
레드라인 클로딩(Redline Clothing)의 마케팅 이사인 제임스 신은 “2009년 캐나다 매출이 올해보다 25%나
감소하고 고가 브랜드의 실적 감소가 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인 샤넬이 국내 백화점에서 ‘수모'를 겪는 일이 발생했다. 롯데백화점 1층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샤넬. 하지만 최근 들어 샤넬의 매출이 크게 줄자 롯데백화점은 일종의 퇴출 명령을 내렸다. 샤넬에게 자리를 옮기든지, 아니면 떠나라는 통보였다. 결국 샤넬은 자리를 비워주기로 했다. 물론 샤넬의 굴욕은 국내 브랜드인 설화수(雪花水) 등의 약진 탓도 있지만, 결국 명품에 대한 소비 행태가 바뀌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소비자들은 결국 대형 할인점이나 인터넷 쇼핑몰로 몰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알디(Aldi)와 니들(Nidl) 등 초저가 할인점 방문자가 늘어나고, 품질이 좋은 자체 브랜드 제품(PB)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작년 연말 온라인 판매가 전년 동기보다 25% 이상 늘어났을 정도다. 실속형 소비 상품의 대표적인 예는 휴대용 휴대전화 충전기. 미국에서 20달러에 판매되는 이 상품은 저렴한 데다 누구에게나 선물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년 연말 미국에서 최고 인기 상품으로 군림했다.
가치가 있다면 비싸도 상관 없다 '가치형(essential)'
불황이지만 소비자들이 중요하다고, 가치있다고 느끼는 제품의 인기는 꾸준하다. 주 계층은 10~20대. 직접 돈을 벌기보다는 주로 소비에만 치중하고 있는 이들은 가격과 관계 없이 과감하게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애플사의 아이폰(iPhone 3G). 미국·일본·독일 등 세계 주요 10개국에 있는 코트라 코리아비즈니스센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쟁사 제품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멀티미이어·GPS·이메일 등 다양한 기능과 터치스크린 구성으로 고객이 원하는 욕구를 정확히 충족시킨 것이 불황 속 인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스마트 쇼퍼(smart shopper)' 세대도 일종의 가치추구형이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 이후 향후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할 25~35세 연령층을 말하는데,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의 가치를 매우 꼼꼼히 따져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영리한(smart) 소비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나라 신세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다. 젊은층은 상품 가격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에 따라 상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거보다는 차량에 더 가치를 둬, 전세를 살더라도 고급차를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작년 3,000~4,000만 원대의 외제차는 국산차 판매 감소에도 오히려 판매가 늘었다. 작년 자동차 내수시장 규모는 115만 4,833대로 전년(121만 9,335대)보다 5%가량 준 것에 비해 수입차 판매(신규등록 기준)는 7만 3,357대로 전년보다 17.7%나 증가했다. 특히 젊은층이 주로 타는 2,000cc 미만 수입차가 22.8%나 증가한 점은 ‘나만의 멋'을 즐기는 가치추구형 소비자가 크게 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윤리·환경제품이 뜬다 '윤리 환경형(ethical·evironmental)'
윤리제품이란 제품 제조자나 유통업체의 도덕성이 우수한 기업 상품을 말한다. 기업이 제조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를 학대하지는 않는지, 사회공헌활동을 잘하는지 등에 비중을 두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경기침체 직후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속속 발견되면서 소비자들은 ‘비윤리적 기업'이 결국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도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 알았던 미국 리먼 브러더스와 AIG 등 금융기관 파산이 일파만파로 곧바로 국내에 영향을 미치자 윤리 기업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환경의식이 소비행위에 반영되면서 의류, 식품, 생활용품, 사무용품 등 산업 전반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들 역시 이런 패턴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국가적인 전략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친환경 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이명박 정부도 녹색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캐나다의 한 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친환경제품이 기존 상품보다 10% 더 비싸더라도 이를 구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친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상품 개발에 ‘친환경'과 ‘윤리'가 고려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박기수 /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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