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7. 10:33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4편] 기업 역전의 시대 / 개선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4편] 기업 역전의 시대 / 개선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바야흐로 기업 역전의 시대다. 한때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GM과 포드는 위기를 맞고 도요타·혼다·현대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소니·도시바·히타치의 퇴조를 삼성과 LG가 메웠다.

기업 역전 현상은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후기 정보화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다. 영원히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 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스토리 1
1907년까지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이 해 프랑스의 자동차 생산량은 2만 5,000대로 영국의 열 배였다. 세계로 수출되는 자동차의 3분의 2는 프랑스 제품이었다. 하지만 1908년에서 1914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헨리 포드의 주도 아래 혁신적인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반면 과거에 왕실 마차를 제조하던 프랑스의 루이 르노는 자동차를 이런 방식으로 조립하는 것을 거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패가 확연히 엇갈렸다. 1914년 미국은 48만 5,000대를 생산했고 포드는 미국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프랑스의 생산량은 미국의 11분의 1로 떨어졌다.

#스토리 2
자동차 대중화가 본격화된 1920년대 초. 이제는 포드가 당할 차례였다. 당대 최고의 혁신가였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자만심이 슬슬 일었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검은색 세단 ‘T형 카'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반면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캐딜락·뷰익·올즈모빌·폰티악·시보레 등 가격과 기능, 디자인과 색상이 다른 차들을 쏟아 냈다. 미국인들은 과감한 혁신으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GM의 손을 들어주었다. 바야흐로 GM의 시대가 시작되는 분수령이었다.

#스토리 3
2008년 가을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인 GM·포드·크라이슬러는 정부에 수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동시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과 일본에서 사들인 회사들을 매물로 내놓았다. 텃밭이었던 미국 자동차시장은 일본의 도요타·혼다·닛산,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가 점령했다. 빅3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도 미래의 생존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

모든 게임의 룰이 상대적인 경쟁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생산성과 품질을 아무리 높여도 경쟁 상대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허사다. 미국의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될 버락 오바마가 갖은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룰이다. 일본과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미국 회사들의 약점과 한계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 앞으로의 변수는 오히려 지금 세계시장을 휘젓고 있는 업체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이다.

바야흐로 기업 역전의 시대다. 한때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GM과 포드는 몰락하고 도요타·혼다·현대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소니·도시바·히타치의 퇴조를 삼성과 LG가 메웠다.

기업 역전 현상은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후기 정보화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류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세상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것은 변화의 단절성, 광폭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더 이상 과거의 사이클을 답습하지 않는다. 예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월가의 파탄이 글로벌 경제에 일대 타격을 가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영원히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 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경영학자들이 강조하는 ‘이카루스의 역설(Icarus Paradox)'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공예의 신' 다이달로스의 아들. 우연찮게 감옥에 갇혔던 그는 아버지가 만든 밀랍 날개를 달고 탈옥했다. 몸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며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날갯짓 아래로 에게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고도를 계속 높여 가던 이카루스의 마음 속에는 슬며시 오만함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잊어버렸다. 강렬한 태양에 깃털을 이어 붙인 밀랍이 녹아내렸다.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 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 이야기는 성공이 결국 파멸을 낳고 가장 소중한 자원이 나중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저술가 짐 콜린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를 통해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Enemy)”이라고 갈파했다. 좋은 사람, 좋은 학교, 좋은 정부, 좋은 기업들이 좋은 상태에 만족(자만)해 버리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공한 기업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죽인다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을 계속 이어가기는 더욱 어렵다. 사람들은, 조직은 대개 현재의 강점분야만을 고집하거나 기존 역량을 활용하려는 관성을 갖고 있다. 이른바 ‘역량의 함정'이다.여기에는 이미 투자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들은 종종 창조적 아이디어를 죽이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특히 시장의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와해성 혁신의 경우 규모를 중시하고 정교한 예측을 요구하는 기존의 경영 마인드로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무너진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각각 자신의 연봉과 명예를 걸고 총력전을 펼치는 미국·일본·한국의 리그를 보라. 우승팀은 거의 매년 바뀐다.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들이 더러 있지만 10년, 20년 정도를 끊어 놓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한국 야구를 제패한 SK와이번스는 지난 2006년 6위였다. 그 전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삼성, LG처럼 화려한 선수층을 구성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모든 팀 감독들은 SK가 당대 최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언젠가 SK 또한 경쟁팀에 뒤처지는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내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우승한 뒤에 자만했다”, “정신적으로 나태해졌다”는 판에 박힌 변명을 들을 것이다.


실패의 싹을 관찰하라

사실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조직이나 기업일수록 실패의 쓴맛을 보기 쉬운 게 승부의 세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의 수명은 가련할 정도로 짧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유럽에서도 기업의 평균수명은 13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기준으로 매출액 100대 기업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1955년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 포함됐던 기업들 중 4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은 32%에 그쳤다.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조직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실패의 싹을 관찰한다. 문제는 그 변화의 양상이 과거보다 훨씬 더 급격하고 단절적이라는 데 있다.

 

지난 2002년 개봉된 <스파이더맨>은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고편을 다시 찍어야 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배경으로 예고편을 찍은 1주일 뒤에 9·11테러로 무역센터가 붕괴돼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테러라는 예외적 상황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는 그만큼 예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메릴린치와 리먼 브러더스가 저토록 허망하게 무너질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옛날 로마의 개선식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었다.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득의양양한 개선장군의 뒤를 따르던 어린아이들이 조용하게 읊조리던 노래였다. 바로 성공과 자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


- 조일훈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


출처 : 삼성(www.samw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