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5. 19:57

[불황 극복] 밥 빨리 먹는 사람이 일도 빠릿빠릿? 불황 무색한 일본전산의 독특한 경영법

[불황 극복] 밥 빨리 먹는 사람이 일도 빠릿빠릿? 불황 무색한 일본전산의 독특한 경영법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필자가 이 문구를 처음 본 건 성남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해서였다. 30명 남짓 모인 사무실 벽 한쪽에 걸린 플래카드에 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는 순간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마치 대입 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의 각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구호가 일본전산(日本電産)의 핵심 모토였다는 건 나중에 취재를 통해서 알았다. 사실 이 중소업체는 한 가지 모토가 더 있었다. ‘안 되면 비기기라도 하자.'

 

처음부터 우수한 인재가 어디에 있는가?
 
요즘 CEO들 사이에서 일본전산(日本電産)의 경영방식이 화제다. 회사 창업자인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이 신입사원을 ‘밥 빨리 먹기', ‘큰 소리로 말하기', ‘화장실 청소하기' 등으로 뽑는 일이나 채용한 구성원을 눈물이 쏙 빠지도록 수시로 혼내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치는 CEO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일반인들도 ‘될 때까지 하라'고 말하는 그의 무대뽀식 호통 경영에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일본전산에 열광하는 것일까.

일본전산은 일류가 아닌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이 처음 신입사원을 밥 빨리 먹기, 큰 소리로 말하기 등으로 뽑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구성원은 네 명에 불과하고 매출 실적도 적은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인재가 일류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 그래도 사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소화도 잘 시키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논리다. 사실 학교 성적과 일 잘하는 것이 별개라는 건 사회생활을 통해 누구나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우수한 인재 따위는 없다'는 게 나가모리 사장의 지론이다.

메이저 리거가 즐비한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 선수로만 구성된 한국 야구대표팀은 탄탄한 기본기와 성실한 자세로 WBC에서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일본전산의 구성원도 남들이 볼 때는 2, 3류 인재였지만 일하는 순간에는 세계 최고를 지향했다. 지독하리만큼 우직하고 끈질기게 일에 매달려 목표 이상의 결과를 이뤄 냈다.

 


한 마리의 늑대가 이끄는 99마리의 양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해도 그들을 잘 조련하지 않으면 이합집산에 불과하다. 나가모리 사장이 강연회에서 자주 쓰는 비유를 들자면 ‘한 마리 늑대가 이끄는 99마리의 양 집단과 한 마리 양이 이끄는 99마리의 늑대 집단이 서로 싸운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나가모리 사장은 한 마리의 탁월한 늑대 역할을 했다. 구성원에게 비전을 심어 주고 끊임없이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사실 ‘맨 땅에 헤딩' 수준의 요구와 명령이 있었음에도 구성원들이 이를 공감하고 따를 수 있었던 건 나가모리 사장 스스로가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떻게 좋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필자는 최근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업체 대표를 만나 리더십에 대한 혜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리더십은 바로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행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도 알고 보면 해결책을 앞에 두고 빙빙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나 두려움 때문에 행동으로 못 옮기는 것뿐입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리더십이 생깁니다.”

나가모리 사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일을 본인은 먼저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다른 사람도 함께 움직이도록 하고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도 해결했다. ‘과정이 중요할뿐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도 실제 최선을 다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 한 마리의 늑대가 99마리의 양을 늑대처럼 만들 수 있을까. 작은 기업이면 몰라도 큰 조직이라면 어렵다. 결국 조직을 바꾸는 힘은 개인 하나로 되는 게 아니라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함께 조직문화를 바꿀 때 이룰 수 있다. 나가모리 사장의 지론에 따르면 ‘스스로 불타오르는 사람(열정)'은 100명 중 10~15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조직에 열정을 불어넣는 사람은 소수이다. 이런 사람을 사장, 임원, 팀장으로 만들어야 조직이 달라질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의 이야기>를 보면 백인대장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된다. 회사 조직으로 따지면 팀장급인 백인대장은 로마 군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카이사르가 불리한 전황과 여건 속에서도 승승장구했던 비결은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부하 통솔력이 뛰어난 백인대장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일수록 현장에 충실하고 통솔력이 뛰어난 사람을 요직에 둘 때 기업은 튼튼해진다. 나가모리 사장이 수시로 혼내고 닦달했지만 구성원들은 불평 한마디나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다. 그건 그가 그만큼 몸으로 뛰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일요일에도 고객을 찾아 감동 전달

 
위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인재란 만들어지는 것이고 둘째,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황을 극복하는 키워드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현장 중심 경영'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은 고객의 니즈를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곳이다. 현장을 무시하고 책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건설사에 다니는 필자의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건설현장의 빌트인 가전제품에 문제가 생겨 A사와 B사에 연락을 했는데 대처방법이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 토요일이었는데 B사는 접수만하고 월요일에 구성원을 보내겠다고 한 반면 A사는 일요일인 다음날 아침 일찍 구성원이 와서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것이다. 고객이 A사에 마음을 뺏긴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비슷한 사례가 일본전산에서도 나온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행동으로 옮기면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고객감동경영은 바로 현장을 챙길 때 나온다.


꾸짖음이 구성원의 스피드를 올린다

또 다른 키워드는 ‘스피드'다. 나가모리 사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은 수시로 구성원을 꾸짖었다. 관심의 표현이자 자극을 통해 구성원의 의식을 바꿔 놓기 위함이었다. 동기부여가 된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 속도가 빨랐다. 회사 모토인 ‘즉시 한다'가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리더가 현장에서 직접 직원을 챙기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부족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 주면 부하직원은 발빠르게 움직이게 돼 있다. 단순히 일을 못한다고 혼내면 결국 서로 짜증만 나고 조직 분위기는 흐트러진다.

 


누가 먼저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1973년 초라한 창고에서 시작한 일본전산이 지금은 매출 8조 원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140개 계열사가 있으며 구성원만 13만 명에 이른다. 일본전산의 성장과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일본전산의 성공 요인을 하나씩 따져 보면 우리가 과거 한 번씩은 경험하고 들어본 일들이다. 겉모습은 조금 색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이면의 성공요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비전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열정이 바로 그것이다. 불황일수록 누가 열정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도 달라질 것이다.


- 김충일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