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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3 웹사이트, 표절과 벤치마킹의 사이
  2. 2008.12.16 [위기 극복 기업 5편] 버버리 / 150년 트렌치코트의 위기, 30대 디자이너의 ‘버버리’ 살리기
2009. 3. 13. 15:15

웹사이트, 표절과 벤치마킹의 사이

웹사이트, 표절과 벤치마킹의 사이


웹 관련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해보았고 또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벤치마킹일 것이다.
신규 웹사이트를 런칭할때 혹은 리뉴얼,리노베이션의 프로젝트성 디자인 작업을 할때
그리고 작게는 아이콘 하나 작업하는데에도 여러 사이트들의 벤치마킹을 하게되고
많은 디자인 결과물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하는것이 벤치마킹...

하지만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는것은 벤치마킹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시간에 쫓겨 급히 만들다보니 똑같이 배낄수 밖에 없는것일까...



우선 '벤치마킹'이란걸 집고 넘어가보자.
벤치마킹은 원래 경영에 있어서 단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분석과 개선을 통한
목표 수립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디자인을 하는데 왠 경영?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면
클릭하기 위한 작은 버튼을 하나 만드는데에도 그 컬러나 모양에 따라 클릭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클리커블한지 아니면 페이지에 그냥 묻혀버리는지...
뭐 버튼 아이콘 하나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겠지만 예컨데 쇼핑몰의 구매버튼 같은 경우엔
그 버튼의 중요성은 말 않해도 알거라 생각된다. 그거 하나에 매출이 달려 있으니...

웹사이트 제작에도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들은
뉴스섹션을 어디에 둘지, 쇼핑카테고리를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그날 그날의 매출이
달라지며 전체적으로는 PV, UV 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음이 네이버를 벤치마킹하고 또 네이버가 다음을 벤치마킹하고...
이건 땔래야 땔수없는 어찌보면 공생관계일수도 있을만큼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살짝 논점을 벗어나 벤치마킹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했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거 같아 이야기 해본다.

하지만 이 벤치마킹에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몇개의 사이트를 보면서 이야기 하자.



이곳이 어디를 배꼈네. 저곳이 어디를 배꼈네를 논하자는게 아니므로
특정 사이트에 너무 집중하지 말길 바란다.

자. 벤치마킹일까 표절일까..

선을 그을 수 있겠는가...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웹사이트 디자인도 템플릿화 되어
몇 만원 결재만 하면 웹사이트 한개는 뚝딱 만들수 있는 세상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만들어지는 웹사이트들이 너무나 많아 이걸 표절이나 벤치마킹이라는
범주에 두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또 보자....




위의 두 사이트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거 같은 사이트 아니야? 하겠지만 아쉽게도 다른 사이트...


자.. 또 볼까?




보자마자 제일 놀란 사이트이긴 하지만
미러사이트 혹은 협력사이트나 패밀리 사이트가 아닐까?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도 해보지만
역시 다른 사이트다.


디자이너 초기에는 디자이너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사이트들을 흉내내 보기도 하고
똑같이 만들거나 하는것은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실무에서 적용을 하는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법보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디자이너로써 그 입지는 매우 좁아지게 될 것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한 우리 디자이너들...
유난히 우리나라에서는 저평가를 받고 있는 디자인 업계이지만
점점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그 중요성을 많은 기업에서도 인지하고 디자인 작업에
상당수 투자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힘내길 바란다.

좋은 양질의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벤치마킹은 하자....

출처 :  Mastaplan 마스타플랜(masta.tistory.com)
2008. 12. 16. 01:45

[위기 극복 기업 5편] 버버리 / 150년 트렌치코트의 위기, 30대 디자이너의 ‘버버리’ 살리기

[위기 극복 기업 5편] 버버리 / 150년 트렌치코트의 위기, 30대 디자이너의 ‘버버리’ 살리기

전통과 관록의 브랜드 ‘버버리'. 체크무늬로 상징되는 버버리의 전통적 디자인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버버리는 젊은층으로부터 외면 당했고, 노인들이나 입는 낡은, 시대에 뒤떨어진 브랜드로 전락해 버렸다. 전통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전통은 역시 전통. 버버리의 CEO 로즈 마리는 2001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디자인 총책임자로 영입했다. 그가 개발한 ‘프로섬(Prorsum)' 라인은 젊은 패션 마니아들을 버버리 매장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더 이상 묵직하고 낡은 중장년 세대의 ‘버버리'가 아닌 트렌치코트의 허리선이 한결 잘록해져 실루엣이 살아난 젊은 ‘버버리'가 재탄생되었다.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 민주주의와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결트다.” 영국인들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말은 버버리 창시자인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스스로 만든 말이라고 전해지지만, 영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다. 영국하면 축축한 가랑비가 내리는 런던 거리에 버버리 코트 차림으로 걸어가는 영국 신사가 쉽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버버리는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프리미엄급 브랜드의 선두 주자다. 152년을 이어 온 관록과 전통이 이를 뒷받침한다. 버버리는 현재 옥스포드 사전에 그 이름이 수록되어 있고, 10년마다 갱신되는 왕실의 인가와 함께 영국의 지정상인(Royal Warranty)으로서의 역사를 잇고 있다.

그러나 명품의 생명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이라고 부를 만한 핵심 경쟁력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내고 변화를 줄 때만 명품으로서의 생명력을 갖게 된다. 버버리도 150여 년의 역사 동안 변화의 추세를 따르지 못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버버리의 탄생부터 성장, 위기 극복의 순간까지 시계추를 되돌려 보자.

1888년 영국 농부나 목동이 즐겨 입을 수 있는 혁신적 원단 개발

‘버버리' 브랜드의 창시자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1835년 태어났다. 그는 스무 살 때인 1856년 영국 햄프셔 지방에서 작은 포목상 경영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던 옷감에 관심을 가졌고, 1888년 ‘개버딘(Gabardine)'이라는 혁신적이 원단을 개발했다. 이 원단이 지금 버버리 코트의 출발점이다.

 

개버딘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세탁이 수월한 한편 습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 비가 자주 오고 축축한 영국 기후에는 최적의 레인코트였던 셈이다.

1891년 런던 헤이마켓에서 첫 매장을 연 이후 개버딘은 인기를 끌었으며, 버버리는 개버딘 원단으로 추위와 강풍에도 견딜 수 있는 트렌치코트를 만들었다.

트렌치는 전쟁시 적의 탄환으로부터 몸을 피하는 곳인 참호(Trench)에서 유래한 말이다. 벨트에는 수류탄을 달 수 있도록 ‘D형 고리'를 부착하고 장총을 사용할 때 개머리판이 닿아 생길 수 있는 원단 마모를 줄이기 위해 오른쪽 가슴에 덧단을 대는 등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이 옷은 영국 군인들의 군복으로 채택됐고 대를 물리는 옷으로 여겨지게 됐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개버딘 코트를 입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말해 버버리가 곧 트렌치코트를 지칭하는 패션 용어가 돼 버렸다. 마치 미국인들이 검색을 할 때 “Do you Yahoo?(당신 야후하세요?)”라고 묻거나 복사할 때 “Could you Xerox?(제록스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0년대 모조품 늘면서 젊은층으로부터 외면

버버리는 120년 넘게 영화를 누렸다. 체크무늬로 상징되는 버버리의 전통적 디자인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위기는 1990년대 들어 찾아왔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상품이 등장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욕구도 강해졌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버버리는 젊은층으로부터 외면 당했고, 노인들이나 입는 낡은, 시대에 뒤떨어진 브랜드로 전락해 버렸다. 전통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게다가 중국을 중심으로 가짜 상품, 이른바 ‘짝퉁'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명품의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매출은 점점 하향세로 돌아섰다.

버버리가 내린 결단은 경영진부터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1997년 로즈 마리 브라보(57)라는 걸출한 여성 CEO를 영입했다. 그는 미국 백화점인 삭스 피프트 애비뉴(Saks Fifth Avenue)의 사장 출신으로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최고의 소매상(Retailer)이였다.

로즈 마리는 말 탄 기사와 버버리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의 흘림 서명을 새로운 브랜드 로고로 채택하면서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다. 운영 시스템도 바꾸고 시장도 넓혔다. 버버리는 디자인, 머천다이징, 공급 체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해 왔으나 이를 중앙 집권 시스템으로 재정비했다. ‘하나의 회사에 하나의 브랜드(One Company, One Brand)' 전략으로 명품의 이미지를 통일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또 불필요한 라이선스는 되사는 방식으로 라이선스 사업을 정비했다. 이같은 일련의 정책들은 브랜드 집중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한때 버버리는 세일 등을 통한 명품 대중화 전략을 취했지만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브랜드를 통일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고급화를 추진하면서 다시 ‘명품'의 선두주자로 돌아온 것이다.

 

로즈 마리가 국외로 눈을 돌린 점도 주효했다. 신흥 부자들은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중국과 중동, 동유럽,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이머징마켓을 뚫었고 매출이 50%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코트에 한정되어 있던 버버리의 상품군도 넓혔다. 의류에서도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액세서리 등으로 확대했다. 예를 들어 가죽과 독특한 금속 장식을 매치한 감각적인 핸드백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매출의 75%가 의류였지만, 핸드백과 구두, 스카프 등 액세서리 사업이 커지면서 신규 소비자도 늘어났다. 이런 성과 덕에 패션업계에서는 버버리를 두고 ‘로즈 마리의 아기(Rose Marie's Baby)'라 고 부르기도 했다.


‘버버리 프로섬' 라인으로 전통에 개성을 얹어

버버리를 살린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면 크리스토퍼 베일리(37)다. 뉴욕 출신답게 로즈 마리는 버버리에 보다 신선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고자, 2001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디자인 총책임자로 영입했다. 1971년생으로 30대 초반의 치기 어린 젊은 디자이너가 150년 전통의 버버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그는 ‘명품도 변해야 산다'는 명제를 입증하기 시작했다.

버버리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전통의 브랜드를 혁신'하라는 임무를 줬고 그는 성공적으로 개혁했다.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교차한 전통 ‘버버리 체크'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개성을 살린 체크무늬를 선보였고, 가죽 등 새로운 소재를 사용했다.

그가 개발한 ‘프로섬(Prorsum)' 라인은 젊은 패션 마니아들을 버버리 매장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라틴어로 ‘앞으로 나가다'라는 ‘프로섬'의 뜻대로 버버리를 한 발 더 전진시킨 것이다. 더 이상 묵직하고 낡은 중장년 세대의 ‘버버리'가 아닌 트렌치코트의 허리선이 한결 잘록해져 실루엣이 살아난 젊은 ‘버버리'가 재탄생되었다.

버버리 프로섬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선 베일리가 만든 ‘버버리 프로섬' 라인을 예약해도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그>, <엘르> 등 패션 전문지들은 ‘젊어진 버버리는 베일리 덕분'이라고 그를 한껏 치켜세웠다. 프로섬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버버리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현대적이고 신선한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서슴없이 말한다.

 

버버리는 완전히 부활했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3월까지의 매출은 5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세를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한 사람이 10만 명, 2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기업 사장들은 인재 영입에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주문한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버버리의 150년 브랜드 스토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천재급 인재가 기업의 위기 극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 준 좋은 사례이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