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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6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3] 서로 다른 것을 녹이는 종합력 / 한 번 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2. 2008.10.25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삼성의 디자인경영
2008. 12. 16. 01:27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3] 서로 다른 것을 녹이는 종합력 / 한 번 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3] 서로 다른 것을 녹이는 종합력 / 한 번 움직여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꾼 자공

종합력은 ‘관찰'과 ‘비교'를 통해 종합적인 판단에 이르는 기술이다. 노(魯)나라 자공(子貢)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5개국을 서로 싸움 붙인 일은 관찰과 비교만으로 이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행동에 돌입하는 지혜가 스며 있다.


외교의 달인 자공, 나라를 구하러 나서다

종합력은 작은 조각들을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는 분석과는 또 다른 지적 능력이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특정한 해답을 전하기보다는 폭넓은 패턴을 감지하는 능력이며, 누구도 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한 곳에 결합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다.

우리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종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래미안은 아파트 이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브랜드다. 아파트 앞에 붙는 삼성, 엘지, 주공, 대림 같은 판에 박힌 상호를 없애고 아늑한 뜻을 지닌 합성어로 대체한 것이다. 래미안(來美安) 식의 콘셉트는 이후 아파트 브랜드의 표준이 되었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서로 다른 것,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을 결합시켜 새로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중국 고대에도 이와 같은 특출한 종합력을 보여 준 인물이 있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그 주인공이다.

공자와 제자들의 학문이 깊어 갈 때 나라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제(齊)나라의 대부호 전상(田常)은 반란을 일으킬 속셈이 있었으나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라리 제나라에서 세력이 큰 고씨 등과 군대를 합쳐 노(魯)나라를 쳐 공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나라가 위태로우니 누가 나서서 구하겠는가?”라고 물었고 이 말에 여러 제자들이 다투어 나섰다.

맨 처음 자로(子路)가 나서기를 청했지만 공자는 그를 제지했다.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연이어 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윽고 자공이 나서겠다고 하자 그제야 공자는 허락했다.

왜 공자는 자공에게 임무를 맡겼을까? 바로 그의 외교 자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공은 공자 밑에서 배웠지만 「화식열전」에서도 소개될 만큼 성공한 상인이었다. 원래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단목사(端沐賜)이며, 말재주가 뛰어났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제나라 전상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상을 찾아가서 쳐들어오지 말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할까?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제나라 전상의 반란을 막다

자공은 전상에게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 다섯 나라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아직은 머릿속의 계획일 뿐인 이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자공은 전상을 만나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다 허물어져 가는 노나라는 공격하기 어려운 나라이고, 물샐틈없는 방비에 군사력도 강한 오(吳)나라가 오히려 공격하기 쉽다고 말한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전상이 버럭 화를 내자 자공은, 그렇게 해야 전상 당신에게 유리하다고 재빨리 덧붙였다.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서 말이다.

 

당시 전상은 제나라 왕과 실세 귀족들에게 늘 치여 사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아직 힘이 그만큼 되지 않아 우선 노나라라도 쳐서 공을 세움으로써 힘을 비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공의 논리에 따르면 노나라를 쳐서 이기면 제나라 왕만 더욱 높아질 뿐이다. 왕은 더욱 교만해지고 대신들의 위세도 덩달아 높아진다. 반면 오나라를 공격해 패배하면 나라 밖에서 백성들이 많이 죽고 제나라는 힘이 약해질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가 위태로워지며 그렇게 되면 전상에게 대적할 만한 신하가 없어진다는 논리였다.

‘옳다구나'하고 무릎을 친 전상이 오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할 동안 자공은 재빨리 오나라로 건너갔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만난 그는 제나라를 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부차는 월(越)나라가 눈엣가시이기 때문에 월나라를 먼저 쳐야 한다고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자공은 오왕을 겁쟁이로 몰아붙였다. 큰 먹이를 놔두고 잔챙이를 건드리는 건 제왕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월나라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서 제나라 정벌을 떠난 오왕의 군대에 합세하게 할테니, 어서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로 떠나라.”고 부추겼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도우러 오면 월나라 안이 텅 비게 될테니 후방의 급습을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오왕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자공에게 속아 넘어갔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만난 자공이 오히려 제나라와 전쟁하고 돌아오는 오나라를 공격하라고 첩보를 전했기 때문이다. 구천은 늘 오나라 왕에게 무시를 당했으나 굽실거리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부차가 이것을 눈치 채고 월나라를 정리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자공은 그에게 말했다.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있어 큰 걱정거리입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핵심을 찔린 구천은 즉시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오나라에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자신은 정예 병력을 이끌고 오나라가 제나라와 전쟁한 뒤 돌아오는 길목에 매복했다.

다시 자공은 진나라로 갔다. 지금 오나라와 제나라가 붙으면 분명 오나라가 이긴다. 그러면 문제의 발단인 전상은 해결이 된다. 하지만 오나라는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자공이 볼 때 진나라가 준비만 잘 하고 있으면 지친 오나라 군대를 꺾을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그는 진나라 정공을 만나 “군대를 잘 정비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해 주었던 것이다.

사태는 자공이 예측한 대로 돌아갔다. 오나라는 제나라를 깨뜨리고 진나라로 진격했지만, 진나라에게 크게 패하고 힘만 소진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매복해 있던 월나라 군대와 부딪혀 거의 전멸당한 뒤 오왕 부차는 겨우 궁궐로 몸만 피신했다. 월왕 구천은 궁궐을 에워싼 뒤 오왕 부차를 끌어내 죽이고 재상 백비의 목을 베었다. 사마천은 논평한다.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했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새로운 두 개념이 만날 때 통찰이 싹뜬다

자공의 계획은 전상의 침략을 저지시키는 것이었지만 자공이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절대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나라를 둘러싼 에너지의 절대량은 변화하는 것이 없도록 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계산법인가.

다섯 개의 퍼즐로 중국 지도를 바꾼 자공의 능력은 분명 뛰어난 종합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공이 뛰어난 외교가이자 명민하고 민활한 상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공자의 제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유가(儒家)였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항시 꼬리 밟힐 것을 걱정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그려지는 자공은 외교가와 상인의 모습이지만, <좌전>과 같은 역사서를 보면 유가로서 자공의 활약이 잘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자공이 공자의 예(禮)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모두 일곱 차례나 노나라를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협상과 속임수가 본질인 외교 및 상업영역과, 청렴과 결백이 핵심인 유가의 영역은 어떻게 자공이라는 한 몸 안에서 구현될 수 있었을까? 떨어뜨려 놓으면 한없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논리의 본질'이다. 자공은 이것을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융합시켰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두 배의 속도로 무섭게 질주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통찰이론의 권위자인 인지심리학자 로버트 와이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통찰이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날 때'이다.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나, 이전에 없던 추론이 발생하고, 그 추론에 따라 감동과 정보처리의 수준이 결정된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8. 10. 25. 23:44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삼성의 디자인경영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삼성의 디자인경영

회장은 떠나도 디자인은 남는다

 

 

삼성전자 LCD TV 1분기 북미 시장 1위, 햅틱폰 단기간 10만대 돌파, 디자인경영 대통령상 수상에 빛나는 래미안, 제일모직의 10꼬르소꼬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일선 퇴진 방침과 별개로 최근 삼성 계열사들의 호실적을 설명하는 아이콘들이다. 그간 끊임없이 강조해왔던 삼성의 디자인경영이 서서히 꽃피고 있는 것이다.

인터브랜드는 삼성전자가 브랜드 가치에서 소니를 제치며 급상승한 주요 요인으로 ‘획기적인 디자인(Cutting Edge Design)’을 꼽은 바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삼성 디자인 저력의 비결을 짚어봤다.

비결 1경영진의 의지

원대연 SADI(Samsung Art & Desi gn Institute) 학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93년 발언을 삼성 디자인경영의 시발점으로 본다. 당시 화제가 됐던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발언은 혁신을 강조하는 핵심 어록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원 학장은 “이 발언 이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 이어졌고 결국 소프트웨어, 즉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이후 95년 SADI 개원, 96년 삼성전자의 ‘디자인 혁명’ 선언 등 후속 조치들은 급물살을 탔다. 삼성전자는 2001년부터는 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를 조직하고 CEO 주재의 디자인위원회를 통해 주요 디자인 전략을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2005년은 삼성그룹의 디자인이 한차례 업그레이드된 해로 기록된다. 이건희 회장이 ‘제2 디자인 혁명’을 선언했기 때문. 4대 전략으로 △독창적 디자인과 유저 인터페이스 체계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이 제시됐고 전 계열사는 이를 묵묵히 따르면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지성 정보통신 총괄 사장이 디자인경영센터장을 겸임하면서 히트상품인 보르도TV 신화에 이어 애니콜 디자인 혁명도 이어가고 있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제일모직은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 상무보가 디자인을 직접 챙기면서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자의 의지가 결국 사운을 좌우한다는 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런 정신이 공유되기에 회사 실적에 큰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결 2 인재에 관한 한 ‘흑묘백묘’

삼성그룹의 디자인 경쟁력 핵심 중 또 하나는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로 요약된다. 외부 인재 영입은 물론 외부 전문가와 공동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 유연함이 강점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건설)은 2005년부터 래미안의 주거형태, 조명 배치, 조경 등을 이돈태 탠저린 사장에게 자문했다.

이돈태 디자인고문 영입 이후 개선된 래미안 지하주차장 디자인.
권혁우 삼성건설 디자인실 차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안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아파트에 적용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였다며 “하나의 개념 아래 아파트의 내외부 디자인을 다시 해야 한다는 개념을 이돈태 사장을 통해서 알게 됐다”라고 전했다. 여기서 얘기가 끝나면 철저한 ‘아웃소싱’에 방점이 찍힐 터.

하지만 삼성건설은 이듬해 이 사장에게 디자인고문이라는 직함을 줘 장기적으로 삼성건설의 디자인 전략을 짜도록 했다. 이 고문은 탠저린 사장이란 직책을 유지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삼성건설에 출근해 각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결정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일모직의 10꼬르소꼬모도 같은 맥락. 제일모직은 서울 청담동에 명품편집숍을 준비하면서 내부 논의 끝에 자체 브랜드보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낫다는 결론을 냈다. 내부 콘셉트, 인테리어 등도 10꼬르소꼬모의 창립자 카를라 소차니에게 대부분 일임했다. 이로써 제일모직은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물론 매장 내 각 브랜드의 매출 추이를 기반으로 판매 전략을 수립하는 등 디자인경영의 전초기지로 삼을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은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분위기다. 아르마니폰, 아르마니 LCD TV 등이 그 결과물들이다.

비결 3 ‘메기론’ 내부경쟁

이건희 회장이 93년 신경영 선언 시 내건 경영론 중 하나가 ‘메기론’이다. 미꾸라지를 키우는 논에 포식자인 메기를 넣어 두면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운동한다는 것.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는 ‘내부경쟁’을 장려하는 것이 핵심이다.

디자인경영에도 이는 적용되고 있다. 삼성건설의 경우 2005년 업계 최초로 디자인실이 문을 열면서 사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아파트의 구조 등 디자인을 두고 상품개발실과 경쟁 구도에 놓인 것. 결국 주택사업본부장이 최종 조율을 하지만 그 전까지 두 실에서는 치열한 디자인 경쟁을 벌이면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을 만들 때 무선사업부 디자인팀과 상품기획팀 간 치열한 내부 논의가 오가는 것도 이런 맥락. 계열사 간 디자인 경쟁도 볼거리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간, 삼성전자와 삼성테크윈 간 등 동일 아이템을 놓고 디자인 경쟁을 벌였던 점도 삼성그룹 디자인의 경쟁력을 확대시킨 중심축이 됐다.

조벽호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은 “피 말리는 경쟁 체제로 당장은 당사자들 역시 고통스럽겠지만 시장에서 성공 이후 방향성을 다시 가늠해볼 수 있는 등 디자이너들의 역량 강화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비결 4 전문 인력 양성

이돈태 고문은 사실 삼성그룹과 인연이 깊다. 삼성전자가 93년에 처음 시작한 디자인 영재 후원 프로그램 ‘디자인 멤버십’ 1기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디자인 인력의 중요성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영재 프로그램은 각 계열사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삼성건설 역시 2005년에 래미안디자인멤버십 1기를 선발한 이후 올해부터는 지원 분야와 상금(1등 1500만원)을 높여 디자인 인재들을 더욱 적극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유망 디자이너를 발굴,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2005년 SFDF (Samsung Fashion & Design Fund)를 설립한 상황. 지금까지 총 5명의 신예 디자이너들이 수혜(1인당 10만달러)를 입었다.

SADI는 단연 삼성 디자인 인재양성의 핵심이다. 제일모직 사장 출신인 원대연 학장 취임 이래 보다 현장성을 강조하는 커리큘럼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2007년 개설된 PD(상품디자인) 부문 출신 학생들은 iF 등 해외 전시회에서 매년 입상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원대연 학장은 “현장경험이 많은 교수진이 가르치다 보니 졸업생들이 삼성전자를 비롯, 100% 취업을 달성했다”라고 소개했다.

【 인터뷰 / 이돈태 삼성물산 건설부문 디자인고문(탠저린 사장) 】

Q> 미래 유산이 될 만한 디자인 추구

산업디자인이 전공인데 건설부문 참여가 이채롭다.

한국식의 사고가 아닐까 싶다. 디자인은 칼로 자르듯 분야가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철학과 콘셉트를 가지고 있느냐다. 돈을 더 들여서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비용을 들이면서도 훨씬 더 좋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관건이다. 종전 아파트가 그간 소비자들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은 공통된 디자인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구난방으로 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였다. 이런 점을 디자인실과 상의하다 보니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Q> 래미안의 디자인 콘셉트는 뭔가.

퓨처 해리티지, 즉 현재의 모든 건축물은 ‘미래에서도 유산이 돼야 한다’란 철학이다. 그간 아파트는 판상형, 즉 성냥갑 같은 형태가 전부였다. 이는 공급자 위주의 편의성에 기반을 둔 철학이었다. 개인이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상품인 집이 소비자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살면서 가치를 느끼고 후세에도 자랑할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남들과 다른 주거공간을 연출하는 데 일조하게 됐다.

Q> 타사 소속으로 바라본 삼성 분위기는.

외부 인재 영입 시 검증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하지만 일단 검증만 되면 이후에는 철저히 일을 맡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대외비 수준의 정보도 서슴없이 제공하며 홍보용이 아니라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대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을 넘어섰다고 보지만 중소기업은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의 디자인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건물에 부족한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대한 디자인 역량을 높이기 위해 특정 기간 삼성에 납품하게 하는 조건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