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8. 15:21

[소비 트렌드] 불황기 히트상품에는 ‘절약+알파’가 숨어 있다

[소비 트렌드] 불황기 히트상품에는 ‘절약+알파’가 숨어 있다


불황이라고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소비가 줄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소비는 이뤄진다. 다만 소비여력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의 눈은 더 까다로워진다. 불황이 깊어진다고 무조건 싼 것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 단순히 싼 것 만으론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 알파'의 가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최근 히트상품은 불황기 소비자들이 원하는 ‘플러스 알파'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세계 동시 불황으로 주요 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요즘 일본의 한 회사는 ‘표정 관리'하기에 바쁘다.게임기 업체 닌텐도다. 이 회사는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 증가한 5,300억 엔에 달할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매출액 역시 8.8% 늘어난 8,200억 엔으로 사상 최대를 경신할 전망. 예상대로 이익을 내면 닌텐도는 도요타자동차 등을 제치고 일본 상장회사 중 이익 기준으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교육, 가족,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소비자 공략

닌텐도의 실적호조는 가정용 게임기 ‘위(Wii)'와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가 불티나게 팔린 덕분이다.‘위'는 지난해 4~12월 사이 전 세계에서 2,052만 대가 팔렸다.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실적이다. DS도 전년을 소폭 웃도는 2,562만 대가 판매됐다. ‘100년만의 경기침체'에 게임기가 잘 팔린다고?

의아스러울지 모르지만 ‘위'와 ‘DS'의 성공 비결을 캐 보면 불황기 소비코드가 보인다. 우선 불황으로 사람들이 외출이나 여행을 자제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은 게임기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 기본 토대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기가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여가활용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절약' 개념 외에 소비자는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

닌텐도가 성공한 포인트가 바로 그 ‘플러스 알파'다. DS의 경우 단순 게임 뿐만 아니라 영어학습, 지능개발 등 교육적인 게임 타이틀을 개발해 게임기에 대한 부모들의 저항감을 최소화했다. ‘위'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운동 삼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게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DS는 ‘교육', ‘위'는 ‘가족'과 ‘건강'이란 플러스 알파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 불황기에 히트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싼 것 만으론 소비자 못 잡아

불황이라고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소비가 줄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소비는 이뤄진다. 다만 소비여력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의 눈은 더 까다로워진다. 단순히 싼 것 만으론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 알파'의 가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최근 히트상품은 불황기 소비자들이 원하는 ‘플러스 알파'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혹독한 불황에도 닌텐도 만큼이나 잘나가는 일본 회사가 또 있다.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작년 12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달에 비해 32% 급증하면서 ‘불황 상품의 황제'란 닉네임까지 얻었다. 유니클로의 월간 매출액 증가율이 30%를 넘은 것은 2001년 이후 7년 만이다. 2001년 당시에도 일본은 경기침체와 디플레(물가하락)가 겹친 불황으로 연말에 저가 방한복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도 단순히 ‘싼 가격'만은 아니다. 유니클로가 지난해 히트시킨 제품 중 하나가 겨울 내복인 ‘히트텍'. 일본에서만 2,000만 장 이상이 팔린 히트텍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히트텍은 몸에서 발산되는 수증기를 흡수해 열을 발생시키고 섬유 사이의 공기층이 열을 차단하는 기능성 신소재로 만들어졌다. 저렴한 가격에 실용적 기능성을 갖춘 게 성공 포인트다.

유니클로는 이 밖에도 브래지어 기능이 합쳐진 민소매 여성 속옷, 겉옷인지 내복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세련된 느낌의 내복 등 히트상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하나 같이 ‘저렴하면서도 멋지고 실용적'이라는 특성이 공통점이다. 바로 그 점이 불황기 히트상품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작년 도쿄 긴자와 젊은이들의 거리인 하라주쿠에 문을 연 다국적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 ‘H&M'도 비슷한 경우다. 지난해 9월 긴자점 개점일에는 약 5,000명이 줄을 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H&M의 강점은 무엇보다 ‘저렴하면서도 멋지다'는 것. 명품을 살 돈은 없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바로 H&M이다.

‘하류의 상' 추구하는 소비자

이런 현상을 ‘하류의 상(上)' 현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류의 상은 일본의 마케팅 전문가인 미우라 아쓰시의 책 <하류사회>에서 나온 말이다. 1990년대 장기불황으로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하류가 된 상황에서 그래도 남들과는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을 ‘하류의 상'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불황에도 싸지만 싸구려 티가 나지 않는 양질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도 불황기 소비코드를 읽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무인양품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싼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는 양질의 친환경 소재 발굴,제품의 핵심 기능과 관계 없는 광택 염색 등 불필요한 공정의 생략, 로고 등의 장식을 최소화한 포장의 간략화 등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거품을 뺀 실용성'으로 불황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인양품의 콘셉트는 심플한 디자인과 기능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져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일본 2008년 히트상품 >

1위 유니클로, H&M, 자체 상표상품(PB)
2위 저가 미니노트북, 닌텐도 ‘위'
3위 블루레이 플레이어, 절전형 형광등
4위 엔고 환원 세일, 맥도널드 커피
5위 순간냉동기능, 디지털 사진첩
6위 무당분 음료, 알코올 8% 음료
7위 도요타 iQ, 애플 G3 휴대전화
8위 B형 인간 설명서(책), 금융위기 서적

* 자료: < 니혼게이자이 >

일본에서 요즘 직장인에게 잘 팔리고 있는 전동 자전거는 불황 때문에 타깃 고객이 바뀐 경우다. 전기 모터를 달아 언덕을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전동 자전거는 원래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다녀야 하는 주부가 주 고객층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동 자전거의 주요 수요층이 직장인으로 바뀌었다. 기름값이 크게 올라 승용차를 갖고 다니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자전거를 타기엔 체력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전동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다.

불황이지만 ‘니즈(Needs)'를 포기할 수는 없다

히트상품들을 보면 불황기 기업들의 제품개발이나 마케팅 전략도 눈에 들어온다. 불황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싼 제품만 찾는 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소비자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니즈(Needs)를 불황이라고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동안 다양한 제품을 이미 경험해 본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도 좋은 품질과 좋은 기능의 ‘보물'을 찾길 원하는지 모른다. 불황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들이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 차병석 /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