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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16. 01:48

[위기 극복 기업 6편]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이제 해보자! 아사히맥주 / 맥주 모르는 은행원 사장, 역발상으로 위기 타개의 해법을 찾다

[위기 극복 기업 6편]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이제 해보자! 아사히맥주 / 맥주 모르는 은행원 사장, 역발상으로 위기 타개의 해법을 찾다

1953년 당시 33.5%로 업계 1위였던 아사히맥주의 시장점유율은 1985년에는 한자리 수인 9.6%로 떨어졌다. 아침해를 뜻하는 아사히(朝日)가 거듭된 실적 악화로 저무는 해를 뜻하는 ‘유우히(夕日) 맥주'라고 불릴 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이 히구치 히로타로 사장이었다.

은행원 출신의 히구치 사장은 맥주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또 새로운 시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는 임직원 의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전례가 없으니까 안 한다가 아니라,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가장 잘 만들고, 또 즐기는 국가로 독일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일본인들은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선술집에 가면 ‘とりあえず, なま! (도리아에즈, 나마!: 생맥주 먼저!)'라는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전통 술인 사케(청주)를 더 즐기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사케를 마시기 전에 맥주로 먼저 목을 축인다. 점심시간에 혼자 맥주를 마시는 직장인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맥주가 생활 속에 녹아들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맥주 생산 역사는 깊고, 그만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 맥주 시장의 경쟁 구도를 두고 2강 2중이라고 한다. 아사히와 기린이 40%에 약간 못 미치는 시장점유율로 1, 2위를 다투고, 그 뒤를 삿포로와 산토리가 10% 조금 웃도는 점유율로 3~4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맥주시장에서 주목할 기업은 바로 아사히맥주다. 아사히맥주가 1위로 등극한 것은 2001년으로 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기린은 장기 집권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사히맥주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은 아니다. 아사히맥주는 1985년 시장점유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서 부도의 순간까지 내몰렸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1위 다툼을 할 만큼 경쟁력을 끌어올린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사히맥주 히구치 히로타로 사장의 위기 타개법

1. ‘전례가 없으니까 한다'는 역발상을 시도하라.
2. 젊은 사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
3. 영업소를 소비자 불만을 모으는 창구로 만들어라.
4. 소비자가 제품을 만든다는 점을 기억하라.


은행원 출신 사장 “발상을 바꾸다”

1986년 일본은 소주 열풍이 휘감고 있을 때다. 맥주업계의 성장세는 뚝 떨어졌다. “맥주업계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산업”이라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아사히맥주는 그 와중에 더 힘겨운 때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사히맥주를 두고, ‘유우히(夕日) 맥주'라고 했다. 아사히란 말이 원래 아침해(朝日)라는 뜻인데, 거듭된 실적 악화를 비꼬아 ‘저무는 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53년 당시 33.5%로 업계 1위였던 시장점유율이 1965년 23.2%, 1975년 13.5%, 1985년에는 한자리 수인 9.6%로 떨어졌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이 히구치 히로타로(Higuchi Hirotaro) 사장이었다. 1986년 스미토모 은행에서 영입된 히구치 사장이 본 아사히맥주의 첫 인상은 ‘패배' 그 자체였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안 된다. 영업비가 제공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전례가 없어서 안 한다' 등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직원들은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게 없지'라고 자조하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아사히맥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히구치 사장은 맥주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또 새로운 시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는 임직원 의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전례가 없으니까 안 한다가 아니라,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히구치 사장 스스로가 먼저 전례에 없던 일을 했다. 경쟁업체인 기린과 삿포로를 찾아가 ‘아사히맥주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약간은 당황했던 경쟁업체 회장들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요약하면 ‘맥주를 만들 때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오래된 맥주를 고객들 앞에서 없애라'는 것.

따끔했지만 값진 충고였다. 그는 맥주업계 대선배의 조언에 따라 아사히맥주의 사내 지침으로 네 가지 원칙을 수립했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돈을 아끼지 말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원재료를 사용한다.
2. 다른 업체를 흉내내지 않는다.
3. 건강을 지향한다.
4. 고객이 늘 신선한 제품을 마실 수 있게 제조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맥주는 전국 어디에 있든지 회수한다.

그는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오래된 맥주를 회수하는 데 당시 12억 엔이라는 큰 돈이 들었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자부심이었다. 직원들에게 오래된 맥주를 시음시켰더니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히구치 사장은 말했다.

“당신들이 먹기에도 맛없는 맥주를 소비자에게 팔 수 있겠는가? 이런 맥주를 파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앞으로 우리 아사히는 신선한 맥주만을 공급함을 소비자에게 알리자.”

이러한 결단은 직원들의 자부심을 높였고, 아사히맥주를 부활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또 “모든 책임은 사장 한 사람이 질 뿐, 영업사원은 현장에서 판매에만, 기술자는 공장에서 신기술 개발 매진에만 힘쓰면 된다”고 독려했다.


영업소를 소비자 불만 수집 창구로 바꿔

아사히맥주가 결정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87년에 발매된 ‘슈퍼드라이'였다. 당시 맥주업체들은 맥주의 맛을 바꾸지 않고 병 용기만 바꾸는 데 치중했다. 아사히맥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히구치 사장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그랬더니 용기보다 맛에 대한 평가가 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5,000명을 대상으로 ‘지금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었더니 무려 87%의 응답자가 ‘맛을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전략대로 영업사원이 매출을 올리는 데 집중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만을 모으는 데 집중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비자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히구치 사장은 소비자의 불만과 의견을 모아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이 정도면 소비자의 마음에 들겠지'라면서 스스로 만족하던 관행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젊은 사원의 고집으로 대히트작 ‘슈퍼드라이' 탄생

그러나 신제품 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맛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가볍고도 잘 넘어가는 드라이맥주가 필요하다'는 원칙 아래 ‘쌉쌀한 맛'을 가미하느냐가 이슈였다. 알코올 음료에서 ‘드라이'는 와인의 맛이고 ‘쌉쌀한 맛'은 청주의 맛이다. 이 두 맛을 조화롭게 섞어 맥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기술자인 고참 임원들은 “쌉쌀한 맛이 나는 맥주는 전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발팀의 젊은 사원들의 히구치 사장이 늘 말했던 대로 “전례가 없기에 도전해 보자”고 맞섰다.

히구치 사장은 논쟁을 멈추게 하고 개발을 지속시키면서 최종 결정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시음 평가에서 신제품의 맛을 본 소비자들은 만족해 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시장에 선보이자 ‘깊이가 있으면서도 깔끔한, 달면서도 쓴 맛'이라며 뜨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1987년도에만 1,350만 박스를 팔았는데, 병으로 따지면 무려 2억 7,000만 병이라는 역대 최고 판매를 기록했다. 판매점에 물량을 대지 못해 직원들에게 “사지도, 마시지도 말고 회사 내 매점에도 진열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패배의식에 빠져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까지 내몰린 아사히맥주, 맥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히구치 사장은 아사히맥주를 일본 최고의 맥주회사로 재기시켰다. 히구치 사장은 199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느니 이제 해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와 역발상으로 일본 맥주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