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03.25 [직장인 칼럼]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 그들은 ‘자기 암시’로 성공했다!
  2. 2009.02.26 [비즈니스 3.0시대의 무기, 창조적 전환 3] 글로벌 기업의 성공 전략: C&D, 감성, M&A / 사업방식의 창조적 전환
  3. 2009.02.12 [위기 극복 기업 11편] 네슬레 /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1
  4. 2009.02.08 [1등 기업의 비밀병기 ‘콜래노믹스’ 3]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양보하는 자가 이긴다!
  5. 2008.12.16 [직장인 칼럼] 오바마에게 배우는 성공 화법, ‘결국은 감동이다. 머리보다 감성에 호소하라’
  6. 2008.11.27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4편] 기업 역전의 시대 / 개선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2009. 3. 25. 19:58

[직장인 칼럼]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 그들은 ‘자기 암시’로 성공했다!

[직장인 칼럼]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 그들은 ‘자기 암시’로 성공했다!


박지성, 박찬호, 김연아와 같은 스포츠 스타들은 뛰어난 경기력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들과 엇비슷한 능력, 또는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기량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승리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패자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도 있다.

어떤 종목이든 국가대표팀 감독은 대표선수 선발 때 종종 고민에 빠진다.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실전용 선수'와 기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입상에 실패하는 ‘연습용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덤에 오른 선수는 한결같이 실전용 선수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기 암시는 성공의 열쇠다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실전에 강한 사람은 자기 암시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 또한 경기 전 자기 암시를 통해 능력을 극대화한다. 스포츠 스타의 사례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자기 암시법을 익혀 보자.

자기 암시는 스스로 일정한 생각을 되풀이해 말함으로써 저절로 그러한 상태가 마음에 새겨지게 하는 심리 작용이다. 마음에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난 의식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잠재의식을 자극해야 한다. 잠재의식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암시로 변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귤을 생각만해도 침이 넘어가는 것은 잠재의식이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리스튼과의 경기에 앞서 “나는 세계 최고다”라고 말해 잠재의식 깊은 곳부터 자신의 모습을 챔피언으로 바꿨다. 서울 올림픽 100m 달리기 우승자인 칼 루이스는 “스타트 때 첫 번째로 골인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확실히 그린다”며 자신의 우승을 확신하는 것으로 자기 암시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성공을 부르는 자기 암시는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온 몸의 근육이 이완되어 있고 뇌파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 적합한 알파파 상태이기 때문이다. 낮이나 저녁에는 근육을 풀어 주는 스트레칭과 복식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 뒤 하는 것이 좋다.

자기 암시를 할 때 필요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 자기 암시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되새기는데, 이때 사용하는 자기 암시문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담겨야 효과적이다.


첫째, 1인칭 ‘나'를 넣는다
 

‘나는 반드시 빅 리거가 된다(야구 박찬호).'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축구 박지성).' 박찬호는 중학생 때부터, 박지성은 고교생 때부터 이같은 암시문을 되뇌었다. 이들은 각각 미국과 잉글랜드에서 구미 혹은 아프리카계 선수들과의 체력이나 기술 싸움에서 항상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위해 암시를 하고 있다.

이들이 암송하면서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내가'이다. 승리하고 성공하는 주체가 곧 자신임을 확실히 새기는 것이다. 이에 비해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등 주어가 생략된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다짐이란 것은 나 자신이 포함돼야 의지가 샘솟는다. 구체적인 주체가 나타나야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갈 힘이 생기는 법이다.


둘째, 시제는 현재형으로 한다

 
자기 암시문은 ‘나는 지금 사장이다'처럼 현재 진행형이어야 추진력이 있다. ‘나는 앞으로 사장이 될 것이다'와 같이 미래형이면 노력을 뒤로 미루게 된다. 누구나 힘든 일은 미루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시문은 늘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은 전반 0-2로 뒤지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자주 뛰지 못한 경험 부족이 문제였다. 상대가 세계 최강이라는 점도 심리적인 위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후반전에 앞서 허정무 선수(현 국가대표팀 감독)는 동료들에게 “쟤들 별 거 아니다”라고 강하게 외쳤다. 주문과도 같은 이 암시문을 외운 선수들은 후반 아르헨티나와 한 골씩을 주고 받으며 대등하게 게임을 했다. 지금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확신하는 문구는 이처럼 강력한 것이다.


셋째, 절대 긍정으로 한다

‘나는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암시문이다. 김연아 선수는 메이크업을 하는 한 시간여 동안 이같은 암시문으로 마음속에 마법을 건다. 그런데 필자는 김연아 선수의 암시문에 한 가지를 보완해 보고 싶다. 문구에서 부정적 단어인 ‘실수'를 빼는 것이다.

암시문의 모든 단어는 부정어나 긍정어를 가리지 않고 머릿속에 입력된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 ‘실수', ‘침착', ‘잘한다'가 모두 새겨지는 것이다. 부정적인 내용이 포함된 문구보다는 단순한 긍정문이 변화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보다는 ‘나는 반드시 이룰 힘이 있다'는 표현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아 선수도 ‘나는 침착하게 잘한다'로 표현을 바꾸는 게 자기 암시차원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다.

 


넷째, 강한 동기를 불어 넣는다

“우리 선수들은 나무 위에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0년 가삼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이 히딩크 감독을 한국 대표팀으로 영입하기 위해 한 말이다. 당시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저 나무 위에 올라가라고 지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승리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물은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능력과 동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둘 중 추진력이 더 강한 것은 동기다. 암시문은 꼭 이뤄야 하는 이유를 넣는 게 좋다.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선수는 바벨을 들지 못하면 총알이 발사된다는 심정을 담아 ‘나는 살기 위해 든다'라는 암시문을 되뇌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단순한 소망을 열거하는데, 이는 안 하는 것보다 긍정적이지만 성취는 쉽지 않다.


다섯째, 절대적으로 믿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절대적으로 믿고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 여자 핸드볼의 임오경 선수는 ‘핸드볼은 내 운명이다.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생활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낸 것은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훈련한 결과다.

프로축구단 수원 블루윙즈의 차범근 감독은 요즘에도 선수 시절과 똑같이 “나에게 허벅지 근육은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다리와 허벅지가 축구인생의 버팀목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다. WBC 김인식 감독의 암시문은 ‘나의 따뜻한 눈빛이 친구를 만든다'이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이 부드러운 리더십의 원천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따라서 WBC 1라운드에서 숙적 일본에게 콜드 게임패를 당했어도 선수들을 살갑게 대하는 절대적인 믿음을 보였고, 다음 일본전에서 1대 0 승리의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 박찬호 선수 또한 메이저 리그에서 동양 선수로서 온갖 수모와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도 빅 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우리에게 언제나 명승부의 감동과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스포츠 스타들은 승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자기 암시문을 되뇐다. 그들처럼 나만의 자기 암시문을 만들어 늘 마음속에 새겨 두자.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자신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주 / 스포츠조선 전문기자(부장).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 <두려움만 정복하면 당신도 스피치의 달인>, <설득은 안타도 홈런을 만든다>, <자녀를 리더로 이끄는 아빠의 대화법>, <세종대왕 가문의 500년 야망과 교육> 저자.

2009. 2. 26. 01:40

[비즈니스 3.0시대의 무기, 창조적 전환 3] 글로벌 기업의 성공 전략: C&D, 감성, M&A / 사업방식의 창조적 전환

[비즈니스 3.0시대의 무기, 창조적 전환 3] 글로벌 기업의 성공 전략: C&D, 감성, M&A / 사업방식의 창조적 전환


사업방식의 창조적 전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모든 것을 혼자 한다는 ‘자체 완결주의'를 버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감성과 문화 등을 중시해야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게 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자생적 성장보다는 적극적인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R&D에서 한 발 나아가 C&D로 승부하라
 

세계 최대 소비재 생산업체인 미국 P&G의 앨런 래플리 회장은 2000년 취임 당시 “R&D 비용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 P&G 혁신의 50% 이상을 회사 밖에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연구개발(R&D; Research and Development)이 아닌 연결개발(C&D; Connect and Development) 전략의 시작이었다. C&D 전략의 핵심은 외부의 R&D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신속하게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톡스가 유행하던 2003년 P&G는 프랑스의 소규모 벤처 기업인 세데르마(Sederma)가 피부재생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 이 회사와 손잡고 ‘올레이(Olay)'라는 브랜드의 주름 개선 화장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의 연구개발에 걸린 기간은 18개월에 불과했다. 기존처럼 독자적으로 개발했을 경우보다 개발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것이다.

P&G는 2004년에 감자칩에 글씨와 그림을 그린 아이디어 제품 ‘프링글스 프린츠(Pringles Prints)'를 출시했는데, 이 또한 C&D 전략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얇고 끈적이는 감자칩 반죽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이 필요했던 P&G는 당시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링크를 타고 대서양 건너 이탈리아의 대학교수가 운영하는 한 제과점에서 답이 왔고 그 기술을 이용한 P&G의 프링글스 프린츠는 대박상품이 됐다.

P&G는 이같은 C&D 전략을 통해 150만 명 규모의 연구개발 인력을 활용하는 효과를 거뒀다. P&G 내부 연구개발 인력 9,000여 명의 167배에 달하는 규모다. P&G 내부 연구인력은 외부로 결코 유출돼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핵심 기술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P&G의 매출액은 2001년 392억 달러에서 2006년에 682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연구개발 비용은 18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소폭 느는 데 그쳤다.  


감성에 호소하라
 

할리데이비슨은 한 때 군수업체였다. 1·2차 세계대전 무렵 이 회사는 미군에 ‘전략물자'로 모터사이클을 공급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를 군수업체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독특한 할리데이비슨 문화를 공유하는 ‘헬스 엔젤스(Hell's Angels;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에 대한 애칭)'와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같은 독특한 배기음 소리를 떠올릴 뿐이다.

할리데이비슨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식 명칭은 할리 오너스 그룹의 약칭인 ‘호그(H.O.G)'다. 호그의 총괄 담당자인 브루스 모타는 할리데이비슨의 감성과 문화에 매료된 대표적 마니아 고객인데, 그는 “이 친구(할리데이비슨)에게 심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있어요. 라이딩할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라고 말한다. ‘두둠! 두둠!~ 두둠! 두둠!'하고 이어지는 리듬감 넘치는 V트윈 엔진(실린더가 두 개인 V자형 엔진)의 강렬한 소리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다.

1909년 처음 V트윈 엔진이 만들어진 이후 100년간 할리데이비슨은 단 한 번도 이 엔진의 소리를 바꾼 적이 없다. 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엔진 소리가 모터사이클을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할리데이비슨의 매출은 2007년 총 27억 달러, 순이익은 9억 3,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평균 순익성장률은 18.3%에 이른다. 20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고 2000년 일본 혼다와 야마하를 제치고 세계 1위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자리에 올랐다.


제품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라

일본의 게임 업체 닌텐도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할리데이비슨과 조금 다르다. 이 회사는 커뮤니티 위주의 고객관리 대신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게임'으로 세계를 휘어잡았다. 2006년 11월 출시한 비디오 게임기 닌텐도 위(Wii)는 1년 만에 세계 시장에서 1,400만 대가 팔려 나갔다.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의 세 배 규모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DS라이트'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을 가볍게 눌렀다. 신제품이 속속 히트를 치면서 닌텐도는 도쿄 증시에서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에 이어 시가총액 3위에 올랐다.

이같은 닌텐도의 성공 비결은 상식을 뒤집는 발상에 있다. 게임 업계가 성능 위주의 과다경쟁을 벌일 때 닌텐도는 가격을 대폭 낮추고 기능을 단순화했다. 재미로 승부한다는 콘셉트에 모든 것을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나온 것.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대표는 닌텐도의 타깃층을 “다섯 살부터 아흔 다섯 살까지”라고 지칭한다. 연령이나 성별, 게임 경험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다.  


글로벌 M&A로 눈을 돌려라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에 자리잡은 다국적 기업 아르셀로 미탈은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연간 1억1,8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철강업체다. 생산량만 놓고 보면 세계 2위 신일본제출보다 세 배나 많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아르셀로 미탈의 전신인 미탈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도 변방의 꼬마기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사장은 인도 북부 라자스탄 지방의 하층 상인계급 출신인 락시미 미탈이다. 그는 “공장 한 개를 짓는데 2~3년씩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창업 후 단 한 개의 용광로도 자체적으로 짓지 않고 오로지 M&A만으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만들어 ‘21세기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탈 사장은 1989년 부채 덩어리였던 트리니다드코바고의 국영 철강회사 캐리비언 이스팟을 인수, 1년만에 흑자 회사로 바꿔 놓았다. 이후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카자흐스탄의 국영 철강회사 카르멧을 인수했고 2004년에는 미국 최대 철강업체 인터내셔널스틸그룹을 사들여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후 2006년에는 세계 2위인 아르셀로를 합병해 공룡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미탈 사장은 “세계 1위지만 시장점유율이 10%에 불과하다. 덩치를 키워야 한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세계 정상에 오른 글로벌 기업들은 사업방식에 있어 각각의 전략으로 창조적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기존의 사업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C&D, 감성, M&A 등 새로운 사업방식의 활용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최명수 /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차장(한경닷컴 온라인뉴스국 증권팀장)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9. 2. 12. 20:46

[위기 극복 기업 11편] 네슬레 /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위기 극복 기업 11편] 네슬레 /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네슬레는 무려 150년 가까이 이어 온 장수기업이다. 장수기업은 ‘반드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위기 상황을 맞곤 한다. 네슬레에게 위기 때마다 힘이 된 것은 바로 창업정신이었다. 죽어가는 유아를 살리자는 공익적 취지는 안전 제일주의 식품 회사로 커 가는 밑바탕이 됐다.

한편, 네슬레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큰 위기를 겪으면서 두 가지 중요한 전략을 세웠다.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다국적 식품 회사로 성장했고, 철저한 글로벌화와 현지화 전략으로 전 세계 80여 개 국가 500여 개 도시에 진출했다.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 현지에서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영향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10년 전쯤 소니(SONY)는 난공불락의 세계적인 IT 기업이었다. 당시 일본의 모 신문사 국장이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을 인터뷰하면서 “소니도 벤치마킹을 하는 기업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많은 기업이 소니를 벤치마킹하는 상황이었지만 소니도 무언가를 닮고 싶은 기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고민하던 이데이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는 유럽의 ABB와 미국의 GE입니다. 제조업은 휴렛팩커드(지금의 HP)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와 시너지 효과는 네슬레를 벤치마킹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식음료 기업 네슬레(Nestle)다. 네슬레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당시 세계 IT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소니도 배우고 싶다고 했을까?


1860년 모유 대체 식품으로 개발
 

네슬레의 탄생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1860년대 당시 숙련된 약사였던 앙리 네슬레는 모유를 먹일 수 없었던 어머니들을 위해 모유 대신 유아의 영향을 보충해 줄 식품을 개발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영양실조로 인한 유아의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는 우유와 밀가루, 설탕 등을 조합하는 다양한 실험을 한 끝에 모유 대신 먹일 수 있는 우유와 비슷한 액체 성분인 ‘페린락테(farine lactee)'를 개발했다. 첫 고객은 모유나 기존 대체 식품을 소화하지 못해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미숙아들이었다. 네슬레의 ‘페린락테'는 성공적이었다. 미숙아는 이 분유를 먹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자랐고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네슬레가 유럽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15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 위기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다. 제 1·2차 세계 대전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1차 세계 대전은 엄청난 유제품 수요를 만들었고, 네슬레는 미국에 있는 공장을 속속 사들여 전쟁이 끝날 무렵 40여 개의 공장을 갖게 됐다. 기회가 되는 듯 했으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소비자들은 신선한 우유를 원하기 시작했고 네슬레는 1921년 첫 번째 손실을 기록했다. 바로 위기가 닥친 것이다.

네슬레는 스위스의 금융전문가인 루이스 데이플을 데려와 공장 가동 효율성을 높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때 사업 다각화를 목적으로 초콜릿 회사 피터 카일러를 사들였다. 이 곳에서 맥아로 된 우유, ‘마일로'라고 불렸던 가루 음료, 유아 음료 등을 개발했고 1938년에는 ‘네스카페'를 출시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이 네스카페 전파

2차 세계 대전도 네슬레에게는 위기처럼 보였다. 회사 이익은 반토막 났고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는 전쟁 기간 동안 유럽에서 고립됐다.

그러나 전쟁이 네슬레에게 위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네슬레의 최신 제품이었던 네스카페가 급속도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추운 전쟁터에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뜨거운 네스카페는 언 몸을 녹이는 최고의 음료였고 세계 각지에 주둔하는 미군의 주요 음료가 됐다.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들은 본토로 돌아가서도 네슬레의 커피를 즐겼다. 1938년에 1억 달러 수준이었던 총 판매액은 1945년 2억 2,5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네슬레 역사상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급격히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분유에서 커피, 화장품 등 사업 다각화
 

네슬레는 전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두 가지 중요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 첫 번째는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초콜릿 회사 피터 카일러를 인수한 것은 분유에서 커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요구르트와 디저트 회사인 프랑스 기업 샴부르시를 인수했고, 1992년에는 생수 회사 페리에, 1998년에는 스필러 패스트푸드를 인수했다. 이런 식으로 네슬레는 생수 회사, 냉동식품 회사, 제약 회사, 화장품 회사를 인수하며 다국적 식품 회사로 성장했다.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또 하나의 전략은 철저한 글로벌화와 현지화다. 네슬레는 전 세계 80여 개 국가 500여 개 도시에 진출해 있고 종업원 수가 25만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지만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에서의 매출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 현지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다.

유엔(UN)이 최고의 현지화 기업을 꼽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첨단 업종이 되리라고 결과를 예상했지만 1위는 바로 네슬레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화에 따라 입맛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식품업체만큼 현지화가 중요한 곳도 없다.

일본이 ‘스시'와 ‘사시미'를 미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식품의 현지화만큼 힘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네슬레는 아주 성공적으로 현지화를 이뤄 냈다. 미국인에게 네슬레가 어느 나라 기업인가 물었을 때 절반 이상이 미국 기업이라고 답변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한국에서도 철저하게 현지화가 이뤄졌다. 이삼휘 한국네슬레 사장은 입맛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 소비자는 맛은 씁쓸해도 향이 풍부한 커피를 좋아합니다. 반면 한국 소비자는 양립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맛과 풍부한 향을 기대합니다. 한국네슬레는 본사의 지시를 최대한 한국 코드에 응용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내놓게 된 겁니다.”


최근 멜라민 파동도 슬기롭게 넘겨

네슬레는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앞세워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식품 회사는 한 번의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로 작용하기도 한다. 2004년 이른바 ‘만두 파동' 때문에 한동안 만두 시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중국 멜라민 파동도 전 식품 업계를 흔들었다. 특히 커피에 멜라민이 들었다는 소문과 함께 네슬레도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네슬레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나자마자 베이징에 1,2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우고 유해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실험기계를 도입하겠다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슬레가 갖고 있는 경영철학과 브랜드다. 네슬레의 로고는 어미새와 아기새 둥지로 이뤄졌는데 이는 안전, 모성애, 자연, 가족 등을 의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식품을 제공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모토는 다양한 환경정책, 사회공헌 등을 통해 투영되며 브랜드에도 그대로 녹아 들게 관리됐다.

네슬레는 전 세계 경영학 교수들이 선호하는 회사라고 한다. 조직과 인사 관리, 자금 운용, 브랜드 마케팅, M&A, 기업 윤리 등 경영학 수업시간 어디에 등장시켜도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네슬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네슬레는 무려 150년 가까이 이어 온 장수기업이다. 장수기업은 ‘반드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위기 상황을 맞곤 한다. 네슬레에게 위기 때마다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창업정신이었다. 죽어가는 유아를 살리자는 공익적 취지는 안전 제일주의 식품 회사로 커 가는 밑바탕이 됐다.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앞으로 100년간 장수할 세계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스페인의 건설사 ‘악시오나', 프랑스 소비재 기업 ‘아코르' 등이 꼽혔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단 한 기업도 선정되지 못했다. <포브스>의 잣대를 비판하기에 앞서 한국 기업에는 장수기업의 DNA가 없는 것인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서 또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더라도 위기 극복의 DNA가 있느냐의 여부는 다른 이야기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9. 2. 8. 15:03

[1등 기업의 비밀병기 ‘콜래노믹스’ 3]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양보하는 자가 이긴다!

[1등 기업의 비밀병기 ‘콜래노믹스’ 3]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양보하는 자가 이긴다!


앞서 1, 2편을 통해 콜래보레이션의 의미와 다섯 가지 콜래보레이션 유형 및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제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여 콜래보레이션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 낸 푸마의 성공 비결을 들여다 보자.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을 만들어 트렌드를 주도한 푸마는 플랫폼 리더십 확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푸마는 콜래보레이션을 통한 플랫폼 형성과 확산 효과 창출로 디자이너들에게 스니커즈 시장을 선점 당하지 않고, 스스로 패셔너블 스니커즈 시장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 


푸마,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이라는 트렌드 창출

푸마는 리복, 나이키, 아디다스에 한참 밀리는 스포츠 슈즈업계 4위로 업계에서 고사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푸마는 1990년대 중반 나이키와 리복이 에어맥스 등 운동화 기술력 증진에만 힘을 쏟고 있을 때, 여성들의 활동이 본격화되어 편하게 신을 수 있으면서도 패셔너블한 스니커즈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을 포착했다. 푸마는 당시의 메가 트렌드인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주자이자 트렌드 세터로 칭송받았던 질 샌더와 손을 잡았다.

푸마와 질 샌더의 콜래보레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푸마가 질 샌더를 단순히 푸마의 아웃소싱 디자이너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이라는 트렌드가 널리 퍼지지 못했을 것이다. 푸마는 단순히 전문 패션 디자이너를 통해 디자인이 뛰어난 ‘푸마의 스니커즈'가 아니라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을 소비자에게 제공해 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패션 피플과의 네트워크가 창출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현재까지 푸마를 포함한 많은 스포츠 슈즈 업체들이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푸마는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에서 스니커즈라는 플랫폼 리더십을 확보한 채, 디자인이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보완재이자 협력자인 질 샌더에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1: ‘양보'하면 더 큰 ‘이익'이 온다

푸마는 콜래보레이션 상대인 질 샌더에게 아예 ‘질 샌더 라인'이라는 독립 라인을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가격결정(pricing)을 하거나 전반적인 디자인 콘셉트를 통제하는 등 푸마의 뜻대로 관철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질 샌더 라인'은 푸마의 다른 제품과 독립된 라인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기에, 질 샌더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에 가져 올 수 있었다.

질 샌더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는 보그, 하퍼스 바자 등 패션 시장을 선도하는 잡지사의 에디터 및 세계 최고의 사진 작가, 런웨이 모델 등이다. 만약, 푸마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여 디자이너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자신의 브랜드 가치가 희석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했다면, 이들의 콜래보레이션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 ‘디자이너 스니커즈 플랫폼'은 패션 피플이라는 네트워크 창출 효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마는 질 샌더에게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양보'를 함으로써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2: ‘플랫폼'을 구축하고 확산시켜라

성공적인 패션 피플 네트워크 창출을 통해 푸마가 생성한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은 대성공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플랫폼 덕분에 모 브랜드인 푸마마저 굉장한 확산(spill-over)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질 샌더 라인은 품귀현상을 일으켰다. 모 브랜드인 푸마 또한 일순간에 전 세계의 트렌드 세터들이 줄을 서서 사고자 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며, 그 여파로 일반인들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푸마의 가장 큰 이익은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의 성공으로 연이어 관련 플랫폼 상품을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질 샌더 라인의 성공으로 많은 디자이너들, 즉 많은 ‘보완재'들이 서로 이 ‘디자이너 스티커즈'라는 플랫폼에 들어오고자 했고, 플랫폼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는 푸마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보완재, 즉 가장 적합한 디자이너를 선택하여 연이어 스타일리시한 플랫폼 상품들을 론칭할 수 있었다.

질 샌더는 그 이후 다른 스포츠 슈즈 업계와 손을 잡지 못했지만, 푸마는 질 샌더 라인 이후에도 샹하이 탱, 미하라 야스히로 라인 등의 플랫폼 상품을 성공시켜 ‘디자이너 스니커즈' 플랫폼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3: 독립성 보장과 이익배분으로 ‘상생'의 기반을 만들어라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을 만들어 트렌드를 주도한 푸마의 성공 비결은 플랫폼 리더십 확보의 대표적인 사례인 아이팟과 VHS VCR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산업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했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산업 생태계 내의 협력자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배분'하고 이들을 지원해 상생의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즉, 푸마는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독립성과 독자적인 마케팅 활동 등을 보장해 주면서 상생의 기반을 만들었다. 표준 장악과 플랫폼 리더십을 추구하는 기업은 단기 성과주의나 자기 이익 챙기기에 집착하여 독불 장군식 행태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콜래보레이션 성공 전략 4: 나만의 경쟁력과 리더십에 기반하라

푸마의 콜래보레이션 전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가 잠재적인 경쟁자일 수 있음을 인지하는 동시에 플랫폼 선점을 위해 이 잠재적인 경쟁자와 협력한 것이다. 푸마가 질 샌더와 손을 잡고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스니커즈에 더 큰 방점이 찍힌 플랫폼을 확보하고 패셔너블한 스니커즈 시장을 선점하지 않았다면, 스니커즈 시장은 다른 양상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 가령 유수의 디자이너가 영세 스니커즈 업체와 손을 잡고 ‘디자이너가 만든 스니커즈'라는 디자이너에 큰 방점이 찍힌 플랫폼을 창출하여 이 시장을 장악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푸마는 여성들의 활동성이 커져 가고, 메트로 섹슈얼이 증가하는 메가 트렌드에서 패셔너블한 스니커즈라는 시장을 파악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먼저, 잠재적 경쟁자인 디자이너와 손을 잡았으며, 자신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스니커즈에 리더십이 있는 ‘디자이너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 결과 디자이너들에게 스니커즈 시장을 선점 당하지 않고, 스스로 패셔너블한 스니커즈 시장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데본 리(Devon Lee) / Faculty, Baruch College/City University of New York. 바루크 칼리지와 뉴욕시립대에서 소비자 행동론과 마케팅 전략을 강의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콜래보경제학(새로운 부와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콜래보레이션 성공전략)>, <한국인이 사는 법(공저)>이 있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8. 12. 16. 01:36

[직장인 칼럼] 오바마에게 배우는 성공 화법, ‘결국은 감동이다. 머리보다 감성에 호소하라’

[직장인 칼럼] 오바마에게 배우는 성공 화법, ‘결국은 감동이다. 머리보다 감성에 호소하라’

우리가 누군가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을 때, 처음에는 뛰어난 연설 테크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것으로는 뭔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화법보다도 더욱 본질적인,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연설하는 사람 자체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청중이 연설자를 마음으로 수용하지 못할 때는 연설 테크닉도 빛이 바랜다.

이런 측면에서 오바마는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에겐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란 인간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합쳐 놓은 것 같다는 평가와 함께 세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연설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오바마는 자신의 연설 능력을 성공의 기회로 백분 활용한 기회포착형 리더의 전형이다. 그의 화법은 왜 특별한가. 미국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오바마의 성공 화법의 비결은 무엇일까.

메시지의 간결함, 1분짜리 연설

오바마는 단 두 번의 기회 포착으로 삶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는데, 첫 번째가 LA에 있는 옥시덴탈칼리지에 다닐 때 그가 한 <누군가 투쟁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1분짜리 연설이다. 관중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연설에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날의 연설은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게 될, 감동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그 연설을 계기로 오바마는 크게 변했다. 그때까지 그는 흑인혼혈에 따른 열등감과 정체성의 혼란 등 자신의 상처에만 골몰했던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불씨도 발견했다.

즉 오바마는 1분의 연설을 계기로 자신의 불행한 상처에만 집착하는 부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지도자로의 변화 등 보다 종합적인 안목으로 인생을 보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1분짜리 연설이 계기가 된 내면적 변화의 결과로 오바마는 방황하는 학생에서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로스쿨을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반듯한 리더로 성장했다.

 


성공의 디딤돌이 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오바마에게 다가 온 두 번째 기회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기조연설이었다. 당시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에게 기조연설을 맡겼는데, 그는 미국의 통합을 역설하는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흑인 아메리카와 백인 아메리카도, 라틴계 아메리카와 아시아계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오바마는 이 연설로 분열을 통합으로 이끌 수 있는 촉망받는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조지 부시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공화당원 마크 매키넌은 오바마를 가리켜 ‘사람들은 그를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인간다리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연설로 오바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기반을 확실히 다졌고, 결과적으로 이 연설이 오늘날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의 디딤돌이 되었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대담하고 솔직한 연설

우리가 누군가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을 때, 처음에는 뛰어난 연설 테크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것으로는 뭔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화법보다도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연설하는 사람 자체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청중이 연설자를 마음으로 수용하지 못할 때는 연설 테크닉도 빛이 바랜다. 연설자와 청중은 진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오바마는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란 인간적인 매력이 그에겐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그가 어머니에게 받은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오바마에게 늘 ‘네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으면 소중하게 여겨야 할 덕목들이 있다'고 얘기했는데, 예를 들면 ‘정직해라, 정정당당해라, 솔직하게 말해라' 등이었다. 그녀는 오바마가 흑인혼혈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만큼 더 훌륭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게 하고 싶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현재 오바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자서전에서 고교시절 마약복용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으며, 또 그런 자신의 모습 앞에서 정정당당하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이나 콤플렉스, 어떤 순간의 두려움 등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임에도 그의 솔직함은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정치인에게 마약복용은 치명적 결함이다. 그러나 그는 고교시절 마약복용 사실을 자서전에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 후보나 언론에서 그 사실을 공격할 때에 결코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수십 년 전의 사실이기 때문에 때로는 거짓말의 유혹에도 빠질 법 한데도 그는 언제나 진실을 택했다.

이렇게 되자 부정적으로 그를 보던 유권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 스스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마약복용 사실까지 털어놓는 것을 보니, 오바마란 사람은 거짓말은 하지 않겠구나' 하는 신뢰감을 준 것이다. 오바마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상대 후보가 마약복용 사실에 대해 계속 공격하자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는 음주와 마약에 빠져 있는 불우한 환경의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나처럼 고교시절 마약을 했지만 이를 극복하면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도 되고, 나아가 대통령후보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바로 나 오바마이다.”

그는 스스로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란 공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바마에게 변화와 희망이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바마는 대담하고 솔직한 연설로 스스로의 최대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또 하나, 오바마의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다. 그는 어렸을 때는 ‘베리'라는 영어식 이름도 사용했으나, 지금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들에게 최대의 공적은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더해 놓은 것 같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사람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나서니, 상대 후보들과 언론은 그의 이름을 가지고 많은 공격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다음과 같은 연설로 조용히 대응했다.

“부모님은 저에게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관대한 나라 미국에선 이런 이름도 성공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를 자랑스럽게 내려다보실 것입니다.”

오바마는 자신의 가장 약점 중 하나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미국은 관대한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역설했다. 스스로의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솔직하게 오픈하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다.


전달력이 뛰어난 간결하고도 쉬운 연설

오바마는 간결하고도 쉬운 연설로도 유명하다. 어떤 연설에서는 3분간 ‘Yes, we can'을 무려 열두 번이나 사용한 적도 있다. 간결하고 쉬우면서도 그 안에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연이나 연설을 듣고 이해가 쉽지 않을 때 본인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연설은 연설자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가장 탁월한 연설은 간결하면서 쉬운 연설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오바마의 연설은 부족함이 없다.


머리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연설

결국은 감동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해박한 지식, 논설문 같은 딱딱한 글로는 움직일 수 없다. 오바마의 40여 년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감동 드라마다. 미국 소수자에서 대통령으로, 사람들은 그의 인생 스토리에 감동받는다.

게다가 그의 연설에는 진심이 느껴지며, 듣는 이에게 없었던 믿음과 희망의 싹을 심어 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과도 같은 힘이 있다. 지식이 높다고,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해서 이런 마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내용의 연설문을 오바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고 가정해 보자. 오바마의 연설과 감동의 크기가 같을 수는 없는 것, 바로 이것이 오바마 연설의 힘이다.


- 김종현 / 국회 문광위 수석전문위원, <검은 케네디 오바마의 리더십 10계명> 저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8. 11. 27. 10:33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4편] 기업 역전의 시대 / 개선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4편] 기업 역전의 시대 / 개선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바야흐로 기업 역전의 시대다. 한때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GM과 포드는 위기를 맞고 도요타·혼다·현대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소니·도시바·히타치의 퇴조를 삼성과 LG가 메웠다.

기업 역전 현상은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후기 정보화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다. 영원히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 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스토리 1
1907년까지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이 해 프랑스의 자동차 생산량은 2만 5,000대로 영국의 열 배였다. 세계로 수출되는 자동차의 3분의 2는 프랑스 제품이었다. 하지만 1908년에서 1914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헨리 포드의 주도 아래 혁신적인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반면 과거에 왕실 마차를 제조하던 프랑스의 루이 르노는 자동차를 이런 방식으로 조립하는 것을 거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패가 확연히 엇갈렸다. 1914년 미국은 48만 5,000대를 생산했고 포드는 미국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프랑스의 생산량은 미국의 11분의 1로 떨어졌다.

#스토리 2
자동차 대중화가 본격화된 1920년대 초. 이제는 포드가 당할 차례였다. 당대 최고의 혁신가였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자만심이 슬슬 일었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검은색 세단 ‘T형 카'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반면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캐딜락·뷰익·올즈모빌·폰티악·시보레 등 가격과 기능, 디자인과 색상이 다른 차들을 쏟아 냈다. 미국인들은 과감한 혁신으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GM의 손을 들어주었다. 바야흐로 GM의 시대가 시작되는 분수령이었다.

#스토리 3
2008년 가을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인 GM·포드·크라이슬러는 정부에 수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동시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과 일본에서 사들인 회사들을 매물로 내놓았다. 텃밭이었던 미국 자동차시장은 일본의 도요타·혼다·닛산,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가 점령했다. 빅3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도 미래의 생존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

모든 게임의 룰이 상대적인 경쟁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생산성과 품질을 아무리 높여도 경쟁 상대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허사다. 미국의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될 버락 오바마가 갖은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룰이다. 일본과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미국 회사들의 약점과 한계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 앞으로의 변수는 오히려 지금 세계시장을 휘젓고 있는 업체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이다.

바야흐로 기업 역전의 시대다. 한때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GM과 포드는 몰락하고 도요타·혼다·현대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소니·도시바·히타치의 퇴조를 삼성과 LG가 메웠다.

기업 역전 현상은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후기 정보화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류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세상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것은 변화의 단절성, 광폭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더 이상 과거의 사이클을 답습하지 않는다. 예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월가의 파탄이 글로벌 경제에 일대 타격을 가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영원히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 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경영학자들이 강조하는 ‘이카루스의 역설(Icarus Paradox)'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공예의 신' 다이달로스의 아들. 우연찮게 감옥에 갇혔던 그는 아버지가 만든 밀랍 날개를 달고 탈옥했다. 몸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며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날갯짓 아래로 에게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고도를 계속 높여 가던 이카루스의 마음 속에는 슬며시 오만함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잊어버렸다. 강렬한 태양에 깃털을 이어 붙인 밀랍이 녹아내렸다.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 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 이야기는 성공이 결국 파멸을 낳고 가장 소중한 자원이 나중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저술가 짐 콜린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를 통해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Enemy)”이라고 갈파했다. 좋은 사람, 좋은 학교, 좋은 정부, 좋은 기업들이 좋은 상태에 만족(자만)해 버리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공한 기업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죽인다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을 계속 이어가기는 더욱 어렵다. 사람들은, 조직은 대개 현재의 강점분야만을 고집하거나 기존 역량을 활용하려는 관성을 갖고 있다. 이른바 ‘역량의 함정'이다.여기에는 이미 투자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들은 종종 창조적 아이디어를 죽이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특히 시장의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와해성 혁신의 경우 규모를 중시하고 정교한 예측을 요구하는 기존의 경영 마인드로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무너진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각각 자신의 연봉과 명예를 걸고 총력전을 펼치는 미국·일본·한국의 리그를 보라. 우승팀은 거의 매년 바뀐다.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들이 더러 있지만 10년, 20년 정도를 끊어 놓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한국 야구를 제패한 SK와이번스는 지난 2006년 6위였다. 그 전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삼성, LG처럼 화려한 선수층을 구성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모든 팀 감독들은 SK가 당대 최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언젠가 SK 또한 경쟁팀에 뒤처지는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내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우승한 뒤에 자만했다”, “정신적으로 나태해졌다”는 판에 박힌 변명을 들을 것이다.


실패의 싹을 관찰하라

사실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조직이나 기업일수록 실패의 쓴맛을 보기 쉬운 게 승부의 세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의 수명은 가련할 정도로 짧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유럽에서도 기업의 평균수명은 13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기준으로 매출액 100대 기업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1955년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 포함됐던 기업들 중 4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은 32%에 그쳤다.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조직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실패의 싹을 관찰한다. 문제는 그 변화의 양상이 과거보다 훨씬 더 급격하고 단절적이라는 데 있다.

 

지난 2002년 개봉된 <스파이더맨>은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고편을 다시 찍어야 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배경으로 예고편을 찍은 1주일 뒤에 9·11테러로 무역센터가 붕괴돼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테러라는 예외적 상황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는 그만큼 예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메릴린치와 리먼 브러더스가 저토록 허망하게 무너질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옛날 로마의 개선식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었다.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득의양양한 개선장군의 뒤를 따르던 어린아이들이 조용하게 읊조리던 노래였다. 바로 성공과 자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


- 조일훈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


출처 : 삼성(www.samw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