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 20:47

[IT 지각변동] ②개인 중심 컨버전스로의 진화 / ‘고객들’이 아닌 ‘고객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라

[IT 지각변동] ②개인 중심 컨버전스로의 진화 / ‘고객들’이 아닌 ‘고객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라


IT 업계에 불고 있는 개인 중심 컨버전스 바람은 기업에게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 좌판을 벌여 놓고 소비자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방식의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만으론 살아 남기가 어려워졌다.

IT 자원, 콘텐츠, 광고 등을 맞춤형으로 선별해 개별 소비자의 집(PC, 휴대폰, TV 등 단말기) 앞까지 배달해 주는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 대량 맞춤 생산)'이 절실해졌다. 신(新) 컨버전스 전략, 즉 개인 중심 컨버전스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얘기다. 
 

매스 마케팅에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으로

사례 1: 글로벌 음료회사의 한국 마케팅 팀장인 A씨는 몇 년 전 해외 본사가 기획해 내놓은 신제품을 국내에 출시했다가 낭패를 겪었다. 여성을 겨냥해 과일향을 첨가한 제품이었는데 이메일과 전화로 관련 자료를 받았을 때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제품을 출시해 보니 아시아인들에겐 새로운 향이 거부감을 주어 판매실적이 저조했다. 뒤늦게 한국 외 아시아 담당 매니저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더니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이런 정보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실패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요즘 A씨의 업무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한결 수월해졌다. 메신저로 본사 및 각국 지사 마케팅 팀장들과 전략회의를 하고, 메신저에 등록된 사람을 클릭해 웹 컨퍼런스를 열고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동영상을 비롯해 대용량 자료도 웹을 통해 금세 주고받는다. 화상회의 중에 방을 만들고 자료를 넣어 놓으면 가상 서버에 저장된 자료를 웹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례 2: 축농증 환자인 직장인 B씨는 병원에서 해결해 주지 못하는 궁금한 사항을 구글 등의 포털을 통해 자주 검색하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B씨는 주로 사용하는 이메일인 구글 G메일에 축농증 전문병원의 광고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내가 축농증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전문병원 광고가 뜨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후 그는 인터넷의 쌍방향성에서 기인한 광고 시스템, 즉 자신이 자주 접속하던 사이트 이용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광고 메일이 도착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빌려 쓰는 IT'의 시대

네트워크 인프라와 웹 기술의 발전은 IT 자원의 유통 방식을 180도 바꿔 놓고 있다. 핵심은 웹을 통해 모든 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대표적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전쟁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워드 등을 통해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요즘 ‘구글 앱스(Google Apps)'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글 앱스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각종 문서를 웹에 저장해 놓고 언제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제공하던 기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구글 앱스는 서비스 내용에 따라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연 50달러)이 있다. 비용을 들여 마이크로소프트의 패키지를 구매해야 했던 소비자로선 대단한 편익을 제공받게 된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의 전략에 맞서 웹 기반의 문서 관리서비스인 ‘오피스 라이브 워크스페이스'를 출시했다.

애플이 출시한 ‘모바일 미(mobile me)'는 웹에 기반한 애플리케이션의 진화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소비자들에겐 편리함을, 기업에겐 새로운 수익 기회를 가져다 준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간략하게 캘린더 기능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모바일 미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단말기로든 일정을 입력하거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웹하드와 이메일에 싸이월드를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기업에서 사용하는 솔루션을 개인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스토리지도 20GB에 달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 이들에겐 포토갤러리로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물론 1년에 10만 원쯤 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편리성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빌려 쓰는 IT' 개념은 기업 효율성과도 직결된다. 요즘 글로벌 IT 업계의 최대 화두인 ‘그린 IT'와도 연결되는데, IT 자원의 낭비를 줄이면 결국 에너지 세이빙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마존이 종량제 방식의 서버 지원서비스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신이 원하는 콘텐츠만 보여 드립니다

컨버전스 시대의 소비자는 미디어를 수용하는 방식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대다수 소비자는 방송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지만 점차 많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만 보길 원하고 있다.

미국 ‘케이블비전'이 네트워크 DVR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이같은 변화를 노린 틈새 전략이다. TV 프로그램을 케이블 방송사의 서버에 저장하고 원하는 시간에 불러내 시청하는 서비스로 TV를 시청하면서 저장할 수도 있고 두 프로그램을 동시에 저장할 수도 있다. 저작권 소유자인 방송사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긴 했지만 어쨌든 대세는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블로그 전문 사이트, 동영상 전문 사이트와 같은 소비자 중심형 미디어들은 자유로운 창작, 협업,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매스 미디어와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물론 한국에선 이들 신종 미디어가 자본력이 약하고 콘텐츠 제공자들이 소위 말하는 ‘꾼'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존 미디어로 하여금 쌍방향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네이버라는 공룡 포털을 보유하고 있는 NHN이 올해부터 개인 맞춤형 포털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이같은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사이트 개편 이전까지만 해도 네이버는 ‘정보의 일방적인 주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지식iN'을 통해 어떤 포털 사업자도 시도하지 못한 혁신을 시도하긴 했지만 쌍방향성은 여기에서 그쳤다.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올라 와 있는 ‘오늘의 책', ‘요즘 뜨는 이야기' 등 각종 콘텐츠는 네이버 직원들이 각종 블로그, 카페 등을 뒤져 종합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뉴스 유통 또한 마찬가지다. 사용자들은 NHN의 ‘종합 뉴스'에 길들여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종합 뉴스의 톱 뉴스는 NHN 직원들이 각 언론사로부터 콘텐츠를 제공받아 임의로 추출한 것들이다.

NHN이 올해 초 사이트를 개편하며 종합 뉴스를 폐지하고,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로 메인 페이지를 꾸미겠다고 한 것은 소비자 중심형 미디어가 부상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난 네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알고 있다?

광고 비즈니스 모델도 진화하고 있다. 모든 전통매체 및 인터넷 디스플레이 광고는 특정 콘텐츠 및 사이트에 광고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제공돼 왔지만 최근엔 인터넷의 쌍방향성에 기반한 광고가 힘을 얻고 있다. 구글이 블로그 등 비주류 사이트의 문맥을 자동적으로 파악해 적합한 광고를 붙이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시장 기반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IBM 연구소는 광고산업에서 공급 시장은 개방되고 소비 시장은 소비자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광고 거래시장이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포츠카 제조회사는, 사용자가 스포츠카라는 키워드를 검색할 때 그가 과거 고소득자들이 주로 방문하는 스포츠카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는지 여부를 추가 조건으로 지정하면 구매 가능성이 높은 이용자에게 선별적으로 광고를 노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영국의 ‘폼(Phorm)'사는 ‘BT'사 등 주요 네트워크 사업자들과 협력해 ‘오픈 인터넷 익스체인지'라는 광고 거래 시스템을 출시하기도 했다. 인터넷 이용패턴을 분석해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광고주는 정밀하게 선별된 소비자에게 우선적으로 광고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같은 개인 중심 컨버전스로의 진화가 제동없이 진행되려면 한 가지 의문이 해소돼야 한다. 그것은 포털, 통신, 방송 등 IT 기업들이 어느 수준까지 개인의 정보를 취합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또한 고객의 개인 정보를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기업과 고객 간의 신뢰 구축이다. 이는 개인 중심 컨버전스 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 박동휘 /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