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1. 19:04

[김희섭 기자의 경제 포커스 ⑤] 협상은 어렵기만 하다? - 협상의 고수가 되기 위한 설득의 전략을 알아본다

[김희섭 기자의 경제 포커스 ⑤] 협상은 어렵기만 하다? - 협상의 고수가 되기 위한 설득의 전략을 알아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협상을 한다. 손님과 가게 주인, 직장 상사와 부하,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간에도 늘 협상이 이뤄진다. 막대한 돈이 오가는 기업 간 협상은 비즈니스의 하이라이트다. 무조건 자기 의견을 고집하거나 고압적인 자세로 나간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상대방의 호감을 사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계권사, 방송사 양쪽 다 상처 입은 WBC 중계 협상
 

 
협상에 대한 한 예로 이번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의 TV 중계료 협상 과정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중계권을 확보한 한 회사는 지상파 방송사에 거액의 중계료를 요구했다. 방송사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런 거금을 주고는 중계할 수 없다”고 맞섰다. 중계권 회사가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방송사는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고 버텼다. 파국으로 흘러가던 협상은 결국 대회 개막 직전에 방송사가 처음 제시한 액수와 비슷한 선에서 타결됐다.

중계권 회사가 방송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협상이 결렬됐을 때의 대안(代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협상학에서는 이같은 대안을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라고 부른다. 내가 좋은 배트나를 갖고 있다면 이 협상은 백전백승이다. “당신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데요.” 이 한마디로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협상창구를 단일화해 협상에 나섰다. 금액이 맞지 않으면 모두 중계를 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다. 방송사들의 강력한 배트나는 바로 ‘중계 취소'였다. “경제가 어려운데 외화를 낭비할 수 없다”는 방어 논리가 뒤따랐다.

생중계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야구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중계권 회사는 결국 손실을 감수하고 방송사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방송사들이 서로 경쟁했다면 중계권 회사는 이들을 훌륭한 배트나로 활용했을 것이다. 지상파 수준의 중계료를 부담할 케이블 채널이나 인터넷 매체가 있었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방송사들이 100%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협상 파트너에게 호되게 당한 중계권 회사는 다음 번에는 어떤 식으로든 손실을 만회하려고 할 것이다. 협상의 제 1덕목이 신뢰라는 점에서 볼 때 양 측은 이번 협상에서 모두 상처를 입었다.

 


보답의 심리를 활용한 협상 전략

 
협상은 상대방을 굴복시켜서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도 아니다. 그건 사기와 마찬가지며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어도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협상은 상대방과 내가 모두 즐거운 윈-윈(win-win)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 자기가 양보한 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비즈니스 협상에선 경제적 이익 외엔 다른 욕구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오해다. 사람은 돈 외에도 ‘명예롭고 싶다', ‘공평하고 싶다', ‘위험을 무릅쓰기 싫다', ‘인정받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등 수많은 욕구를 갖고 있다.

예컨대 상대방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거기에 보답하려는 심리가 생긴다. 공짜 샘플을 받은 사람은 실제로 그 상품을 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산 상품 가격에 무료 샘플 비용이 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당신이 제 입장이라도 저와 같이 하셨을 겁니다. 당신을 도와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라고 말해주면 당신이 베푼 호의(好意)의 가치는 더 커진다.


협상의 고수는 숫자 흥정을 하지 않는다

물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조금씩 양보한다고 협상이 잘 될 수는 없다. CEO 대상의 협상스쿨을 운영하는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장은 국제변호사로서 굵직한 M&A(인수합병) 협상을 여러 차례 담당했는데, 그는 “객관적 기준부터 합의를 하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협상의 전 과정에 원칙이 생기기 때문에, 혹시 협상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불만도 적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래 업체에 물건을 팔기 위한 협상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10억 원에 팔고 싶은데, 거래처 8억 원 이상은 못 준다고 버틴다. 협상의 하수들은 이런 상황에선 대충 중간인 9억 원에 합의한다. 그리고 만족해 한다. 윈-윈 협상을 이뤘다고.

하지만 협상 고수들은 절대 이런 방식의 숫자 흥정은 하지 않는다. 숫자를 말하기 전에 우선 객관적 기준부터 설정한다. 숫자를 산정하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 말이다. 이 경우에는 원가(原價)나 시장가격, 그 동안 거래했던 가격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개가 있다. 어떤 기준이 가장 합리적이냐에 대해선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양쪽이 다 납득하기가 쉽고 결과에 승복하기도 쉬워진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약간씩 다르긴 해도 그 바탕에 깔린 협상의 원리는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좋은 협상가가 되려면 다양한 상대방의 심리와 욕구를 파악하고 공략할 줄 알아야 한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달려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설득도 과학이다.


- 김희섭 /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부 차장대우로, 경제 및 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UT Austin) 비즈니스스쿨에서 1년간 수학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및 전경련, 정보통신부 등을 두루 취재했으며 산업부 IT팀장 및 미디어팀장을 지냈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