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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6 [위기 극복 기업 14편] ‘엔지니어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R&D에 전력 / 마이크로소프트
  2. 2009.01.23 [위기 극복 기업 10편] 코닝 / ‘깨지지 않는 기업’ 코닝, 경영환경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매출 10%는 R&D 투자
2009. 3. 26. 19:07

[위기 극복 기업 14편] ‘엔지니어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R&D에 전력 / 마이크로소프트

[위기 극복 기업 14편] ‘엔지니어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R&D에 전력 /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는 불과 열 아홉의 나이에 ‘누구라도 컴퓨터를 쓰게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꿈은 보란 듯 이뤄졌다. ‘윈도우(Window)'라는 컴퓨터 운영시스템(OS)으로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로 바꿔 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매년 40%에 가까운 수익 성장률을 보이며 600억 달러(약 90조 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마이크로소프트도 회사의 존폐를 논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독보성' 때문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이 ‘독점법 위반'을 지적하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동과 혁신, 또 위기의 과정을 들여다 보자.


1975년 창업 3년 만에 매출 100만 달러 달성

 
빌 게이츠. 현대 세계 경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최근 ‘2009년 억만장자 순위'를 발표했는데 빌 게이츠는 400억 달러의 재산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빌 게이츠가 단순히 부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그가 쌓은 부(富)는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켰느냐'의 정도와도 비례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북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레드몬드(Redmond). 이 곳에 들어서려면 물 위의 도로를 달려 반경 300km에 달하는 워싱턴 호수를 건너야 한다. 이 한적한 시골 마을이 전 세계 컴퓨터의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빌 게이츠가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바로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월리엄 헨리 게이츠 3세. 우리에게는 빌 게이츠로 알려진 그는 1955년 미국 시애틀의 유복한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는 17세에 ‘tra-o-data'라는 회사를 설립, 사내 교통량을 분석하는 컴퓨터를 만들었을 만큼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 빌 게이츠는 1975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크에 둥지를 틀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웠다. ‘모든 가정과 책상에 컴퓨터를'이란 비전으로 출발했다.

 

그는 컴퓨터 언어프로그램인 ‘베이직(Basic)'을 개발해 승승장구하더니 포트란(FORTRAN) 등 후속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이며 회사를 키웠다. 창업 3년 뒤인 1978년, 그는 매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때 빌 게이츠의 나이는 22세. 결정적인 기회는 1981년에 찾아왔다.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의 16비트 운영체제인 MS-DOS를 기반으로 한 PC를 발표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가 선택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당시 IBM은 우선협상대상인 디지털리서치와 협의에서 합의를 찾지 못해 차선책으로 MS-DOS를 골랐다. 당시는 이 결정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 1990년대 초반 윈도우 3.0을 발표하며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한 성공신화를 이어 갔다.

1995년 윈도우 95, 1998년 윈도우 98, 2000년 윈도우 2000 등을 발표하며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연평균 수익 성장률은 40%에 가까웠다. 인터넷 분야에서도 넷스케이프를 누르며 익스플로러가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했다.


반독점법 소송으로 곤혹
 

그러나 초일류기업에게는 늘 그렇듯 위기도 찾아온다. 1998년 미 법무부와 19개 주로부터 ‘반독점법 위반혐의'로 제소됐다. 2년여간 계속된 법적 공방 끝에 2000년 4월 유죄판결을 받았고 같은 해 6월 ‘운영체제(OS) 회사와 응용소프트웨어 회사로 분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판결로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대폭락했고, 금전적으로도 2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 다행히도 2002년 미 법무부와 합의안을 마련해 회사 분할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독점성에 소비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MS독점에 대한 반발로 리눅스 등 오픈 소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진보를 이뤄 내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개인 사용자 뿐만 아니라 기업, 공공기관까지 눈을 돌리기도 했다. 보안이 취약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 받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시스템에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의 독점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계속 이뤄졌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동시에 ‘가장 변화해야 할 것 같은 브랜드' 1위(인터브랜드 2008년 3월 설문조사)로 꼽히는 불명예를 겪었다.


R&D 투자에 모든 것 걸어
 

빌 게이츠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모든 위기를 극복했다.

그 분명한 철학이란 첫째, ‘기술에 모든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엔지니어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곤 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이기에 앞서 하나의 거대한 연구소다. 레드몬드 본사의 직원이나 지역민들은 본사를 회사가 아닌 캠퍼스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T기업 가운데 연구개발에 가장 앞장서 있다. 2007년에만 해도 69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R&D에 쏟아 부었다. 직원 9만 명 가운데 3만 명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의 소프트웨어가 미래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도 기술 개발을 이끌어 낸 원동력이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도구라며 소프트웨어의 진화를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이 믿음 아래 자신의 영역에서 혁명을 이끈 것 만큼은 분명하다. 필자가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재무담당 시니어디렉터 크리스서를 만났을 때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소프트웨어에 폭넓게 투자하는 회사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기술 혁명에 모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적인 불황에도 올해 약 90억 달러를 R&D에 투자한다. 올해 총 기대매출인 600억 달러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쏟는 것. 인원 감축 압박에도 연구 인력 3,000명을 늘릴 방침이다.

둘째, 빌 게이츠는 늘 최악을 염두에 두면서 경영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마이크로소프트답다”는 말을 자주했다. 리눅스가 공세적으로 나올 때 그는 부분적으로 프로그램 소스를 무료화해 MS의 독점성을 고집하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 더. 훌륭한 동반자는 위기 극복의 힘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말할 때 주저 없이 빌 게이츠를 떠올리지만, 스티브 발머가 없었다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위기 때 마다 빌 게이츠를 도왔다. 빌 게이츠가 기술자이고 전략가이며 총 사령관이라면, 스티브 발머는 사업가이자 모사(謀士)이자 야전사령관이라고 평가된다.

스티브 발머는 인사·회계·법무 등 회사 운영에 관한 책임을 맡아 시스템을 개혁시켰다. P&G에서 브랜드관리와 마케팅 등의 실무경험을 쌓아 초기 벤처기업을 시스템을 갖춘 글로벌 전문 IT기업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특히 인재를 발굴하는 데 탁월했는데, 헝가리 출신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머 찰스 시모나이를 찾아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개발을 성공시킨 시모나이는 다시 친구 프로그래머 리처드 브로디를 추천했다. 스티브 발머가 인재발굴의 정점에 서있었던 셈이다. 그는 윈도우 운영체제 선적부터 최고급 인재 공급까지 모든 부문을 책임지고 있어 빌 게이츠보다 공로가 더 큰 인물로 꼽힌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 PC 교체가 줄어 윈도우 판매가 줄었다. 사무용 소프트에어와 윈도우 서버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 판매도 부진하다. 그러나 위기에는 ‘기본 경영'이 빛을 낸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서 기본 경영은 기술 중시 경영이다.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 발표 15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진화에서 이기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순응하는 생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관점에서 디지털과 인터넷 세상의 변화를 가장 잘 따르고 있는 듯 하다. 빌 게이츠는 물러났지만 기술 중시와 변화의 전통은 마이크로소프트를 100년 넘는 장수 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9. 1. 23. 23:59

[위기 극복 기업 10편] 코닝 / ‘깨지지 않는 기업’ 코닝, 경영환경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매출 10%는 R&D 투자

[위기 극복 기업 10편] 코닝 / ‘깨지지 않는 기업’ 코닝, 경영환경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매출 10%는 R&D 투자


2001년, 코닝은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본사가 위치한 도시의 시내에서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고 수많은 불꽃이 밤을 수놓았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1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육성한 광섬유 사업이 IT(정보기술)버블 붕괴와 함께 막대한 손실을 안겨 줬다. 무려 30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고, 110달러를 넘던 주가는 1달러대로 떨어졌다.

당신이 이런 기업에 속해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마 그 참담한 심경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세계적인 장수기업 코닝(Corning)의 이야기다. 다행스럽게도 결론은 해피엔딩(happy ending)이다. 기업사에 남을 만한 실패 사례를 뒤로 한 채 코닝은 우뚝 일어섰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깨지지 않는 그릇' 또는 삼성과의 합작사인 ‘삼성코닝'으로 알려진 코닝, 그 위기의 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시 이름을 딴 글로벌 유리 전문기업

코닝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많다. 1851년에 창립된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기업, 세계 최초로 TV브라운관을 만든 기업. 열을 가해도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개발한 기업, 본사가 위치한 도시 코닝시에서 기업 이름을 딴 기업.

미국 동부 뉴욕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인구 1만 명이 조금 넘는 소도시 코닝시에 바로 코닝 본사가 있다. 코닝은 지역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을 지은 세계적인 유리 업체다.

 

발명왕 에디슨도 코닝이 없었다면 지금 모양의 전구를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879년 세계 최초로 필라멘트 백열등을 개발했지만 이를 감싸줄 유리가 문제였다. 에디슨은 코닝에 조수를 보냈고, 팀을 이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유리거품을 불어 만드는 전구용 유리를 개발해 냈다.

이 일화가 말해 주듯 코닝은 유리에서는 세계 최고다. 일반 유리뿐만 아니라 TV브라운관과 LCD유리기판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12년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내열 유리 ‘파이렉스'는 지금까지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달러화 약세와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이익이 급감했다. 코닝이 택한 방법은 사업영역의 확대다. 유리에서 생물공학, 광섬유, 세라믹, 화학의료 기구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러나 모든 사업이 코닝에게 기회가 되어주지 못했다. 코닝은 선택을 해야 했다.


위기 극복책 1: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부터 파악

이 때 창업주의 5대손인 제임스 호튼(James Houghton)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코닝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1983년 최고경영자에 오른 그는 핵심 역량을 평가했다. 그것은 유리제조와 관련된 기술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뒤는 무엇을 가져 가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분명해졌다. 코닝이 처음으로 선보였던 백열전구 진공관 사업과 텔레비전 유리부품 등 무려 5억 달러의 수익을 내던 사업부서를 과감하게 버렸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핵심 역량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해서다.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스스로 경쟁력이 떨어져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사업도 접었다. 대표적인 예가 생물공학과 유전공학이었다. 대신 코닝은 유리를 기반으로 한 기술 역량에 따라 특수재료, 소비자 가정용기, 통신산업, 검사서비스를 키우기로 했다. 이른바 코닝의 바퀴모델(Wheel Model)이다.

‘해당 산업의 선두기업으로 오를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한다'는 기본 전략을 실천해 코닝은 유리에서 광섬유와 광케이블을 자연스럽게 키웠다.

 


위기 극복책 2: 그칠 줄 모르는 R&D 지원

하지만 광섬유 산업도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정보기술 버블이 한순간에 꺼지면서 30억 달러라는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당장 기업이 살아나려면 비용을 줄여야 했다. 물러났던 제임스 호튼이 복귀했다. 그는 ‘살기 위해 팔을 자른다'는 말과 함께 전 직원의 절반인 2만 5,000명을 내보냈다. 무려 12개가 넘는 공장을 폐쇄했다.

그리고 어느날,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조지프 밀러를 불렀다. 그는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구나, 연구개발비를 줄이자고 말하겠구나.” 그러나 정반대였다. 호튼은 “연구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다”며 “연구개발(R&D)에 몰두해 달라”고 당부했다. 코닝은 2001년 10.3%였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을 2002년에는 15.3%까지 늘렸다.

코닝은 경영환경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연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R&D 투자도 원칙이 있다. 투자액의 70% 가량은 5~10년 안팎에 결과를 볼 수 있는 단기 연구에, 나머지 30% 가량은 10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에 투자한다. 당장 구조조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연구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전통이 코닝에는 있다.

 

결과는 어떤가? ‘뚝심 있게' 광섬유 분야에 투자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여전히 광섬유의 선도기업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지만 광대역 기술수요가 늘고 있어 코닝의 미래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액정TV용 유리기판 등의 투자도 멈추지 않았기에 현재 50% 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위기국면에서 33억 달러까지 줄었던 매출은 지난해 58억 달러까지 끌어올렸고, 18%대 영업이익률을 올렸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과연 기본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말하자면 ‘Back to the basic'이다. 그런데 과연 기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성공요건으로서의 기본기(basic)를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의 회사가 추구해야 할 기본을 의외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코닝은 기본을 돌아보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 기본은 핵심 기술인 유리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유리에서 파생된 네 가지 분야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코닝의 미래는 앞으로도 어둡지 않을 듯하다. 158년 역사에서 묻어나는 관록만으로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코닝의 R&D 투자가 미래의 희망인 것이 분명하다.

조지프 밀러 CTO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광섬유 개발에 관한 일화도 소개했다. 1979년 처음 영입됐을 때 “이제 곧 광섬유 시장이 열린다”고 말했더니 경영진들은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기초개발에 들어가 40년을 기다렸던 경영진들에게 ‘이제 곧'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의미있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닝은 향후 10년 뒤의 시장을 내다보고 경영을 하기 때문에 굳이 ‘이제 곧' 열릴 사업에만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밀러 CTO는 향후 비전 사업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조명과 3차원(3D) 디스플레이, 후면 광원이 필요한 LCD와는 달리 외부의 빛을 이용해 만드는 리플렉티브(reflective) 디스플레이를 꼽았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에게 위기다. 그래서 구조조정, 파산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도 곧장 언론에 오른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만을 고려하면 장수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어렵다. 코닝은 이 점을 잘 보여 줬다. 코닝의 최고기술책임자가 언급한 차세대 비전사업은 이미 코닝이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분야로 향후 150년의 역사를 이끌어 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