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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7 [아이디어 뱅크를 찾아서 2편]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 / 제품 속에 숨어 있는 ‘모노츠쿠리’ 정신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2. 2008.12.16 [위기 극복 기업 4편] 닌텐도 / 폭력 게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다
2008. 12. 17. 20:15

[아이디어 뱅크를 찾아서 2편]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 / 제품 속에 숨어 있는 ‘모노츠쿠리’ 정신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아이디어 뱅크를 찾아서 2편]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 / 제품 속에 숨어 있는 ‘모노츠쿠리’ 정신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에도 끄덕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10년 불황에도 연구개발 투자비만은 줄이지 않을 만큼 일본 제조업체들은 최고 품질을 추구한다. 거기에 제품에 혼을 담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 ‘모노츠쿠리'도 빼놓을 수 없다. 탄탄한 기초 과학과 기업의 뛰어난 응용 기술의 접목, 조직 결속력과 노사화합의 바탕이 되는 ‘한 식구 의식'도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중요 요인이다.


도요타 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 도요타 자동차의 모태인 도요타자동직기 옛 공장 터에 지어진 이 기념관은 언제 가도 도요타 그룹 계열 회사들의 신입사원들로 북적인다. 도요타 계열의 신입사원들은 연수 중 반드시 이곳을 들러 도요타 그룹 창시자 도요다 사키치가 1906년 발명한 환상형 직기 등을 견학해야 한다. 무라이 코지 산업기술기념관장은 “창업 가문인 도요다가(家)가 100여 년 전에 만들었던 직기를 보여 주면서 도요타의 ‘모노츠쿠리(최고 제품 만들기)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제조 기업을 방문하면 하나 같이 강조하는 말이 ‘모노츠쿠리 정신'이다.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것. ‘장인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들은 10년 불황기에도 다른 건 다 줄여도 연구개발(R&D) 투자비 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R&D를 통한 최고 품질의 추구는 제조회사의 생명선'이란 철학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에도 쇠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도 거기에 숨어 있는 셈이다.


기계 아닌 ‘장인의 손'이 경쟁력

도쿄 인근 오타구공단에 가면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란 중소기업이 있다. 종업원이 2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지만 일본의 모노츠쿠리 파워를 상징하는 곳이다. 1947년 설립된 이 공장은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다. 일상 생활용품에서 항공기, 로켓 부품까지 주문만 들어오면 다 만든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도 로켓 부품의 정밀도를 올리는 최종 마무리 가공은 이 공장에 맡긴다.

 

놀라운 건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 기기가 아닌 기술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 기타지마 가즈토시 사장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기계보다 정확하다”고 말한다. 생산 현장의 근로자가 혼신을 다해 얻은 손재주와 미세한 감각 등의 노하우는 일본 부품·소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LCD(액정표시장치)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첨단 제품도 기초는 현장 근로자의 모노츠쿠리에 있다”(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지적이다.

생산현장에서 모노츠쿠리가 가능한 건 일본 기업들의 끊임없는 R&D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기술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손기술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 그런 점에서 일본 기업들이 불황 때도 R&D 투자를 확대해 온 건 평가받을 만하다. 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R&D 투자를 1~5% 소폭 줄인 것 외엔 지금까지 줄곧 R&D 투자를 늘려 왔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지난해엔 R&D 투자를 더 늘렸다. 불어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나누어 주는 대신 R&D에 쏟아 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요 2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R&D 부문에 전년보다 7.4% 많은 11조 3,304억 엔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은 R&D 확대와 함께 연구원도 크게 늘릴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의 56%에 이르는 기업이 앞으로 5년간 연구원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니와 아오 도쿄대 교수(기술경영학)는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들 사이에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기술 개발'이 필수라는 인식이 다시 퍼져 R&D 투자 경쟁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초 과학과 현장 기술의 만남 - 교토카

일본의 모노츠쿠리가 강한 비결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학협동이다. 대학과 연구소의 탄탄한 기초 과학과 기업의 뛰어난 응용 기술이 접목돼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키는 나라가 일본이다. 최근 교토에서 개발되고 있는 차세대 전기자동차 ‘교토카(Kyoto Car)'가 대표적 사례다.

철저하게 환경친화형 자동차를 지향하는 교토카는 차체에 철판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료도 태양광을 이용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국제 협약인 ‘교토의정서'가 맺어졌던 도시로서 환경친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교토카엔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의 전통 문화도 반영된다. 자동차 차체엔 밋밋한 단색 외장 대신 꽃무늬 등 일본의 전통 문양이 디자인될 예정이다.

 

2010년 개발을 목표로 한 이 교토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일본의 명문 국립대인 교토대의 벤처비즈니스랩(VBL) 마쓰시게 카즈미 부학장. 쟁쟁한 자동차 기업들을 놔두고 대학 교수가 차세대 전기차를 개발한다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쓰시게 부학장에겐 든든한 지원 그룹이 있다. 바로 교토 지역의 혁신적인 벤처·중소기업들이다.

마쓰시게 부학장은 벤처기업 여덟 곳과 교토카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철판을 쓰지 않고 대나무 소재와 탄소섬유를 사용할 차체 개발엔 이 지역 최고의 나노기술 벤처기업이 참여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태양광 전지와 연료전지 등도 지역 벤처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있다. 교세라(정보통신기기), 옴론(전자부품), 덴소(자동차 부품) 등 일본 최고 부품 기업들의 고향인 교토의 기술력이 교토카에 집약된 셈이다.

일본의 기초 과학 수준은 세계 톱 클래스다. 이는 노벨상 실적이 증명해 준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은 모두 일본인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3명 중 1명도 일본인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물리학 7명, 화학 5명, 의학 1명 등 13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배출했다. 2000년 이후로만 화학상 수상자가 4명째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과학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의 기술은 도요타 자동차, 소니, 파나소닉 등 세계적 기업들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산ㆍ학 협동이다.

 


일본식 종신고용과 노사협력도 한몫

현장의 모노츠쿠리가 이어진 요인 중 하나는 종신고용을 바탕으로 한 일본식 경영이란 분석도 있다. 고도켄지 고도경영연구소장은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현장의 기술 전수도 안 된다”며 “그런 점에서 일본의 종신고용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종신고용은 임직원에게 ‘한 식구 의식'을 심어 주므로 조직 결속력과 노사화합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도요타는 노사가 한 식구란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본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임직원이 목제 밥통에서 직접 밥을 퍼먹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이 옛 경영 방식에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캐논은 종신고용이란 일본식 경영에 미국식 성과주의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경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일자리는 보장하지만 승진과 급여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차등을 둬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캐논 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와 현금 흐름 관리, 투명성, 비용 관리 등에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지만 고용과 거래업체와의 유대 관계에서는 일본식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것이 바로 일본 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 차병석 /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


2008. 12. 16. 01:43

[위기 극복 기업 4편] 닌텐도 / 폭력 게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다

[위기 극복 기업 4편] 닌텐도 / 폭력 게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일본의 부호 40명'을 발표했다. 그중 일본 최고의 부호는 닌텐도 창업주의 손자 야마우치 히로시(80, Yamauchi Hiroshi) 고문이었다. 그의 재산은 무려 78억 달러. 지난해보다도 30억 달러(3조 6,000억 원)나 늘었다.

그의 급격한 재산 증가는 ‘닌텐도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굳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닌텐도 역시 위기의 순간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닌텐도 자신이었다. 닌텐도의 창업과 성장, 위기의 순간과 극복 과정을 조명해 본다

일본 교토는 보통 ‘오래된 도시'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일본 기업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종합 전자부품 메이커로 유명한 교세라, 음향용 전자부품 세계 1위 기업인 니치콘 등 작지만 실력 있는 ‘강소 기업'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닌텐도도 교토에 본사를 둔 기업 중 하나이다.


화투 만드는 회사로 시작

야마우치 집안은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889년, 화투를 만드는 기업을 세웠다. 당시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작은 공장 정도의 규모였다. 작은 화투 공장의 본격적인 변신은 일본 최고 부호로 뽑힌 야마우치 히로시가 주도했다.

화투 제작 사업이 잘되면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중퇴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닌텐도 사장에 취임한다. 그 뒤 일본 최초로 얇은 플라스틱을 사용한 트럼프를 개발해 업계를 휩쓸었다.

 

야마우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트럼프와 게임시장을 둘러본 후 트럼프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식품, 택시, 호텔, 교육 등에서 실패를 맛보면서 1960년 도산의 궁지에 몰렸다.

이때가 첫 번째 위기다. 다행스럽게 사업 다각화 실패로 인한 위기는 오히려 닌텐도가 게임 산업에 몰입하는 계기가 됐다.

그 뒤 연구 개발을 거듭한 끝에 1977년 첫 게임기를 출시했으나 조악한 수준에 그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후 1979년 세계 최초의 휴대형 게임기인 ‘게임앤와치(Game & Watch)'를 발매해 대히트를 쳤다.

1983년에는 패밀리 컴퓨터라는 뜻의 ‘패미콤'을 선보이면서 비디오 게임시장을 열었다. 닌텐도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슈퍼마리오'를 앞세워 전 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을 석권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총 1억 8,000만 카피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시장에 내놓은 제품들마다 성공으로 이어지자 닌텐도 앞에는 ‘게임 기업의 전설, 신화, 파이어니어….'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2년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무차입 근육질 경영, 강력한 시장 지배력, 부동의 소비자 신뢰도 등을 이유로 일본 최고의 우량회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 X-Box 등 강력한 라이벌 등장

하지만 기업에게 기회와 위기의 사이클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닌텐도의 최대 위기는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서가 아니라 바로 게임 업계 경쟁자의 출현이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이들은 화려한 영상으로 게임의 멀티미디어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간단한 그래픽과 스토리에 의존하는 닌텐도가 이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게임 보급으로 영업 기반은 갈수록 위축되었다.

스스로의 문제도 불거졌다. 닌텐도가 너무 잘나가면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한 언론은 “게임시장 발전 속도는 빠르고 소비자들은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는데 닌텐도 회사 분위기는 ‘천하태평'하고 위기 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며 “만들면 몽땅 팔리는 성공 경험으로 인해 영업 조직이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꼬집었다. 닌텐도의 매출은 떨어졌고 ‘닌텐도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성급한 평가도 나왔다.


위기 극복 비결 1: 과감한 선택! 협력업체 직원을 본사 사장에 앉히다

닌텐도에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킨 사람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였다. 그는 작은 화투 제작사에 머무를 뻔했던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 전문회사로 이끈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위기에도 과감하게 대처했다. 2000년 닌텐도의 협력사인 할(HAL) 연구소 소장 이와타를 사장으로 앉혔다. 협력업체 출신이라 본사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상품 개발 능력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와타 사장은 야마우치 히로시를 실망시키지 않고 조용히 혁신을 이끌어 냈다. 그는 닌텐도의 조직을 정비하고 직원들의 마인드를 바꿨다. 급격한 인력과 사업 구조조정을 피했다. 개발 실패로 사내에서 외면 받던 직원들을 모아 사장 직속의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변혁 사례는 최대 라이벌이었던 소프트웨어 메이커 ‘나무코'와 손잡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 전략적 제휴로 닌텐도는 ‘나 홀로 성공했다'는 안이한 자만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세가, 반다이 등 담을 쌓고 적대시했던 소프트웨어 메이커들과도 제휴를 맺으면서 ‘외톨이'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영업도 활발하게 추진했다.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영업사원들이 주말마다 전자 양판점 게임 매장으로 출근해 고객들 앞에서 시범 조작을 보이는 등의 적극성을 보였다.


위기 극복 비결 2: 독창성과 단순함으로 승부하다

닌텐도의 명성을 되찾게 한 제품은 ‘닌텐도 DS'와 ‘위(Wii)'다. 2004년 말에 출시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는 연령과 성별을 떠나 전 세계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초 선보인 닌텐도 DS 라이트는 출시 1년 만에 판매 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서는 등 인기를 끌었다. 2006년 말에 출시된 위(Wii)도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일본에서는 몸을 이용해 즐기는 게임인 ‘위'를 거실에 설치하고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는 전 세계에 2,000만 대 이상 팔렸다.

 

이 두 게임의 특징은 독창성과 단순함에 있다. 이와타 사장도 올해 한국에서 ‘위'를 선보이며 “닌텐도의 기본 철학인 독창성이 성공을 이끌어 냈다”고 자평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실제에 가까운 환상의 세계로 게임을 이끌었다면 닌텐도는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생활의 일부로 게임을 개발했다. 첨단 기술에 집착하지 않고 독창성에 승부를 띄운 것이다.

디자인도 심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성능도 단순해 사용자가 게임을 즐기는 데 부담이 없다. 그동안 IT뿐만 아니라 많은 전자업계가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빠져 있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도 어렵고 굳이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마구 넣은 것이다. 닌텐도는 역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단순한 게임으로 고객의 마음을 끌었다.


위기 극복 비결 3: 고객의 범위를 넓히다

마지막 위기 극복 비결은 고객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었다. 바로 마케팅의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케팅(Marketing, 시장)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 마케팅 행위의 기본은 시장을 넓혀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객 수요층을 확대하는 것이다. 닌텐도는 고객층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충실했다.말 그대로 게임 인구의 저변 확대다.

이와타 사장도 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닌텐도 회생을 위해 연령, 성별, 게임 경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개발을 목표로 했다”며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5세부터 95세까지 게임 인구를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닌텐도는 다른 기업의 귀감이 될 만큼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 난무하는 가운데 닌텐도는 가족 중심의 생활형 게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게임은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야마구치 히로시 고문의 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함께 닌텐도 게임을 즐기는 가정의 모습으로 현실화됐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