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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12.24 명품계의 이단아 ‘코치’, 매직과 로직으로 소비자와 通하다
2009. 2. 12. 20:46

[위기 극복 기업 11편] 네슬레 /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위기 극복 기업 11편] 네슬레 /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네슬레는 무려 150년 가까이 이어 온 장수기업이다. 장수기업은 ‘반드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위기 상황을 맞곤 한다. 네슬레에게 위기 때마다 힘이 된 것은 바로 창업정신이었다. 죽어가는 유아를 살리자는 공익적 취지는 안전 제일주의 식품 회사로 커 가는 밑바탕이 됐다.

한편, 네슬레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큰 위기를 겪으면서 두 가지 중요한 전략을 세웠다.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다국적 식품 회사로 성장했고, 철저한 글로벌화와 현지화 전략으로 전 세계 80여 개 국가 500여 개 도시에 진출했다.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 현지에서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영향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10년 전쯤 소니(SONY)는 난공불락의 세계적인 IT 기업이었다. 당시 일본의 모 신문사 국장이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을 인터뷰하면서 “소니도 벤치마킹을 하는 기업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많은 기업이 소니를 벤치마킹하는 상황이었지만 소니도 무언가를 닮고 싶은 기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고민하던 이데이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는 유럽의 ABB와 미국의 GE입니다. 제조업은 휴렛팩커드(지금의 HP)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와 시너지 효과는 네슬레를 벤치마킹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식음료 기업 네슬레(Nestle)다. 네슬레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당시 세계 IT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소니도 배우고 싶다고 했을까?


1860년 모유 대체 식품으로 개발
 

네슬레의 탄생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1860년대 당시 숙련된 약사였던 앙리 네슬레는 모유를 먹일 수 없었던 어머니들을 위해 모유 대신 유아의 영향을 보충해 줄 식품을 개발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영양실조로 인한 유아의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는 우유와 밀가루, 설탕 등을 조합하는 다양한 실험을 한 끝에 모유 대신 먹일 수 있는 우유와 비슷한 액체 성분인 ‘페린락테(farine lactee)'를 개발했다. 첫 고객은 모유나 기존 대체 식품을 소화하지 못해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미숙아들이었다. 네슬레의 ‘페린락테'는 성공적이었다. 미숙아는 이 분유를 먹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자랐고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네슬레가 유럽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15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 위기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다. 제 1·2차 세계 대전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1차 세계 대전은 엄청난 유제품 수요를 만들었고, 네슬레는 미국에 있는 공장을 속속 사들여 전쟁이 끝날 무렵 40여 개의 공장을 갖게 됐다. 기회가 되는 듯 했으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소비자들은 신선한 우유를 원하기 시작했고 네슬레는 1921년 첫 번째 손실을 기록했다. 바로 위기가 닥친 것이다.

네슬레는 스위스의 금융전문가인 루이스 데이플을 데려와 공장 가동 효율성을 높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때 사업 다각화를 목적으로 초콜릿 회사 피터 카일러를 사들였다. 이 곳에서 맥아로 된 우유, ‘마일로'라고 불렸던 가루 음료, 유아 음료 등을 개발했고 1938년에는 ‘네스카페'를 출시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이 네스카페 전파

2차 세계 대전도 네슬레에게는 위기처럼 보였다. 회사 이익은 반토막 났고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는 전쟁 기간 동안 유럽에서 고립됐다.

그러나 전쟁이 네슬레에게 위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네슬레의 최신 제품이었던 네스카페가 급속도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추운 전쟁터에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뜨거운 네스카페는 언 몸을 녹이는 최고의 음료였고 세계 각지에 주둔하는 미군의 주요 음료가 됐다.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들은 본토로 돌아가서도 네슬레의 커피를 즐겼다. 1938년에 1억 달러 수준이었던 총 판매액은 1945년 2억 2,5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네슬레 역사상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급격히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분유에서 커피, 화장품 등 사업 다각화
 

네슬레는 전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두 가지 중요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 첫 번째는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초콜릿 회사 피터 카일러를 인수한 것은 분유에서 커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요구르트와 디저트 회사인 프랑스 기업 샴부르시를 인수했고, 1992년에는 생수 회사 페리에, 1998년에는 스필러 패스트푸드를 인수했다. 이런 식으로 네슬레는 생수 회사, 냉동식품 회사, 제약 회사, 화장품 회사를 인수하며 다국적 식품 회사로 성장했다.


UN이 꼽은 세계 최고의 현지화 성공 기업
 

또 하나의 전략은 철저한 글로벌화와 현지화다. 네슬레는 전 세계 80여 개 국가 500여 개 도시에 진출해 있고 종업원 수가 25만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지만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에서의 매출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 현지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다.

유엔(UN)이 최고의 현지화 기업을 꼽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첨단 업종이 되리라고 결과를 예상했지만 1위는 바로 네슬레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화에 따라 입맛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식품업체만큼 현지화가 중요한 곳도 없다.

일본이 ‘스시'와 ‘사시미'를 미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식품의 현지화만큼 힘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네슬레는 아주 성공적으로 현지화를 이뤄 냈다. 미국인에게 네슬레가 어느 나라 기업인가 물었을 때 절반 이상이 미국 기업이라고 답변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한국에서도 철저하게 현지화가 이뤄졌다. 이삼휘 한국네슬레 사장은 입맛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 소비자는 맛은 씁쓸해도 향이 풍부한 커피를 좋아합니다. 반면 한국 소비자는 양립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맛과 풍부한 향을 기대합니다. 한국네슬레는 본사의 지시를 최대한 한국 코드에 응용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내놓게 된 겁니다.”


최근 멜라민 파동도 슬기롭게 넘겨

네슬레는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앞세워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식품 회사는 한 번의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로 작용하기도 한다. 2004년 이른바 ‘만두 파동' 때문에 한동안 만두 시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중국 멜라민 파동도 전 식품 업계를 흔들었다. 특히 커피에 멜라민이 들었다는 소문과 함께 네슬레도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네슬레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나자마자 베이징에 1,2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우고 유해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실험기계를 도입하겠다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슬레가 갖고 있는 경영철학과 브랜드다. 네슬레의 로고는 어미새와 아기새 둥지로 이뤄졌는데 이는 안전, 모성애, 자연, 가족 등을 의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식품을 제공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모토는 다양한 환경정책, 사회공헌 등을 통해 투영되며 브랜드에도 그대로 녹아 들게 관리됐다.

네슬레는 전 세계 경영학 교수들이 선호하는 회사라고 한다. 조직과 인사 관리, 자금 운용, 브랜드 마케팅, M&A, 기업 윤리 등 경영학 수업시간 어디에 등장시켜도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네슬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네슬레는 무려 150년 가까이 이어 온 장수기업이다. 장수기업은 ‘반드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위기 상황을 맞곤 한다. 네슬레에게 위기 때마다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창업정신이었다. 죽어가는 유아를 살리자는 공익적 취지는 안전 제일주의 식품 회사로 커 가는 밑바탕이 됐다.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앞으로 100년간 장수할 세계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스페인의 건설사 ‘악시오나', 프랑스 소비재 기업 ‘아코르' 등이 꼽혔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단 한 기업도 선정되지 못했다. <포브스>의 잣대를 비판하기에 앞서 한국 기업에는 장수기업의 DNA가 없는 것인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서 또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더라도 위기 극복의 DNA가 있느냐의 여부는 다른 이야기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2008. 12. 24. 13:55

명품계의 이단아 ‘코치’, 매직과 로직으로 소비자와 通하다

명품계의 이단아 ‘코치’, 매직과 로직으로 소비자와 通하다

미국의 명품 핸드백 시장에서 코치(Coach)는 구찌나 루이비통보다도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코치 핸드백이나 지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우수한 품질을 제공함으로써, 가격 비싼 명품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소비자들을 코치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코치가 미국과 캐나다 여성 소비자들을 조사했더니, 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코치'를 주거나 받고 싶다고 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한 코치의 성공비결을 따라가 보자.


‘코치' 나가신다,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물렀거라!

단단히 짜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도 신화가 일어난다. 난공불락의 거대한 골리앗 기업을 무너뜨리는 다윗 기업은 각 영역마다 있다.

명품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루이비통·불가리·에르메스 등 오랜 전통의 유럽 브랜드가 지배하는 럭셔리 비즈니스 세계에 핸드백으로 유명한 미국의 코치(Coach)는 이단아다. 1941년에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코치라는 브랜드가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려 활동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코치는 빈티지가 중요한 명품의 세계에서 짧은 이력과 비(非)유럽 호적을 달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코치의 신화는 단순히 명품 세계의 경이로 그치지 않는다. 지난 4월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가장 성과 좋은 50대 기업' 순위에서, 코치는 덩치가 20배가 넘는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펩시코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코치는 지난해에도 이 리스트 2위에 올랐다.

 

코치는 지난 3년간 24%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과 61%의 투자자본수익률을 올렸다. 기업의 꿈인 ‘성장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이 성과를 순위로 반영한 것일 뿐이다. 코치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가격 착한 명품으로 성공가도 개척

코치는 기존 명품 브랜드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키워드는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우리말로 풀면 ‘착한 가격의 명품'쯤 된다. 명품을 열망하지만 샤넬이나 루이비통 같은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가격이 너무 높아 좌절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읽고, 좋은 재질과 숙련된 기술로 만든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코치는 명품 반열의 핸드백을 200달러대에 내놓아 젊은 여성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였다. 어포더블 럭셔리는 제품의 질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크기를 줄여 소품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가격을 떨어뜨린다. 명품을 이제 막 구입하는 ‘명품 구입 초년생'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코치의 전략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멋을 내려는 현대 젊은 여성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졌다. 코치가 올 초 실시한 조사 결과, 여성들은 경기침체로 다른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핸드백은 더 구입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재구매율 90%에 이르는 고객 충성도

코치는 북미(北美) 시장에서 고객들의 충성도가 가장 강한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미국 프리미엄 핸드백 시장에서 코치의 시장점유율은 26%로 유럽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이나 구찌·프라다보다 두세 배 높다. 미국 시장에서 코치 제품의 재구매율은 90%에 이른다.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다시 코치 제품을 구입한다는 얘기다.

안드리아 쇼 레스닉 코치 수석부사장은 “코치는 아시아의 역사에서 보면 짧을지 모르지만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오래된 브랜드”라고 말했다. ‘아메리칸 디자인 클래식'이라는 콘셉트가 북미 소비자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치는 1980년대 월가의 여성 뉴요커들이 강하게 보이기 위해 정장 차림에 각진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고 이후에는 보다 여성스런 소품을 찾게 되는 등 유행의 트렌드를 같이 호흡하며 성장했다.

지난해 코치의 조사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여성 소비자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는 질문에 코치 핸드백을 첫 번째로 꼽았다. 나머지 핸드백 브랜드는 5위 안에 이름이 없었다. 대신 다른 명품 보석, 스파 이용권, 아이팟, 평면 TV 등이 선호 상품으로 꼽혔다. 코치는 적어도 북미에서 현대 여성들의 라이프사이클을 붙들고 있다는 얘기다.


매직(Magic)과 로직(Logic)의 결합, 새로운 명품의 탄생

그렇다면 ‘어포더블 럭셔리'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충성도 강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류 프랭크포트 코치 최고경영자(CEO)는 “매직(Magic·마술)과 로직(Logic·논리)의 결합”이라고 공개한다.

‘매직'이란, 트렌드를 이해하고 훌륭한 제품에 대한 감각과 본능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순간에 딱 맞는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다. 코치의 매직은 ‘토미 힐피거'의 디자이너 리드 크래코프를 스카우트하면서 비약했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크래코프의 현대적 감각은 화려한 색상, 도회적이면서도 세련된 코치의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이런 매직은 엄격한 논리로 보완된다. 접근 가능한 모든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 ‘로직'이다. 코치는 소비자의 태도와 만족도를 측정하는 광범한 계량적 방법을 1990년대 후반부터 도입했다. 예를 들어 코치의 단골손님들이 매장을 방문하는 주기를 관찰했더니 대개 3~4주에 한 번꼴로 조사됐다.

코치가 자랑하는 ‘매달 신제품 출시' 전략은 이 단골손님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또 고객 1만 명과 파일럿 시장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주부들이 핸드백을 사기 위해 쓸 각오를 하고 있는 금액이 평균 328달러라는 통계를 가격 전략에 이용했다.

 


코치의 성공신화, 세계적인 불황 속에도 계속될 것인가

코치의 높은 성장과 이익은 강한 성과중시 문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매주 30명의 경영진들은 회의 시작 직전 각종 경영지표를 알리는 음성 메일을 받는다. 회사 주가가 신기록을 갈아 치울 때마다 전 직원에겐 이메일이 발송된다.

코치는 임직원에게 지금까지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을 기준으로 삼아 이보다 좋은 성적을 내도록 목표를 정하고 있다. 직원들의 보너스와 각 매장 매출 목표도 이런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코치의 문화에 대해 “코치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이 이뤄 놓은 성공의 희생자”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성장을 독려하는 코치의 전략은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다. 코치는 북미에 318개의 럭셔리 매장과 103개의 팩토리 아웃렛(제조사가 직영체제로 운영하는 상설할인 매장)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매년 40개씩 점포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경제가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럭셔리 매장의 매출은 줄고 있지만, 팩토리 아웃렛의 매출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코치의 이익은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말에 끝난 1분기 결산에서 코치의 순이익은 5.8% 줄었다. 전체 매출은 11% 늘었지만, 럭셔리 매장의 매출 감소와 할인 폭 증가로 마진이 줄었기 때문이다.

코치는 크리스마스 세일 행사가 끝나는 12월 말 결산에서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0만 달러 가량 늘어난 10억 5,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치의 기적이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불황을 어떻게 돌파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류 프랭크포트 CEO는 지난 11월 20일 코치의 주가가 주당 13달러 93센트로 떨어지자, 자사 주식 5만주를 사 모았다. 적어도 코치의 경영진은 성공신화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박종세 / 조선일보 뉴욕 특파원